낯설지만 자꾸 끌리는…자연이 선물한 향
“아로마테라피는 누적된 감정적·심리적 노폐물을 빼내도록 돕는 작용을 합니다. 특정 감정에 작용하는 에센셜 오일을 매개로 감정의 자연스러운 해소를 돕는 거죠. 이렇게 향을 맡음으로써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로마테라피의 효과입니다.”
2005년부터 아로마테라피스트로 활동해온 강수민(45) 쉼표아로마 대표의 말이다. 지난 1일 서울 광진구에 있는 쉼표아로마가게에서 열린 강 대표의 힐링 아로마오일 향수 일대일 클래스에 참여했다. 식물에서 추출한 휘발성 기름인 ‘에센셜 오일’ 45개 중 3개의 각각 다른 향을 골라 배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쉼표아로마가 구비하고 있는 에센셜 오일은 80종인데 일반적인 클래스에선 10~20개 정도가 제공된다. 강 대표는 “내 취향보다는 다소 낯설어도 계속 맡게 되는 향을 택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재 직면한 감정과 심리적 문제를 해결할 열쇠일 수 있다는 게 강 대표의 설명이었다.
45종 중 3개 골라 배합
나는 45개 향을 거듭 맡으면서 가장 끌리는 오일 3개(미르·베티베르·타임)를 골랐다. 강 대표는 이 3개에서 순위를 정해보라고 한 뒤, 오일 선택이 의미하는 심리·감정 상태를 설명했다. 미르에 끌렸다는 것은 ‘영감’이, 타임에 끌렸다는 것은 ‘용기와 추진력’이, 베티베르(베티버)에 끌렸다는 것은 ‘자양과 회복’이 필요한 상태라고 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미르는 과도한 생각과 불안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 타임은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베티베르는 과하게 각성된 정신을 이완시키고 피로 회복을 돕는다. 나에겐 미르가 1순위였고, 나머지 둘은 비슷했다.
강 대표는 기본 향수 30㎖가 들어 있는 푸른색 병에 미르 5방울, 나머지 두 오일을 각 1방울씩 넣으라고 했다. 나무 수지(진액)에서 추출된 미르는 유독 점성이 커 5방울 떨어뜨리는 데 10분 넘게 걸렸다. 비율대로 넣은 뒤 뚜껑을 닫고 흔들었다. “3일 정도 숙성시키면 향이 서로 어우러져요. 오일을 손바닥에 뿌려 비빈 뒤, 3초 정도 공중에 알코올을 날리고 양손으로 코를 감싸고 향을 흡입하세요. 향을 맡으면서 그 향에 해당하는 감정을 마주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됩니다. 자주 뿌려서 두달 안팎으로 다 사용하는 게 효과적이에요.”
‘향기 치료’인 아로마테라피는, 에센셜 오일을 사용해 몸과 마음, 정신의 건강을 돌보고 가꾸는 요법을 뜻한다. 한때 미신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으나 인류는 오래전부터 향을 가진 식물을 질병 치료 등에 사용했다. 식물을 이용한 치료법 850가지가 담긴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문헌의 작성 시기는 기원전 15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의학에서는 아로마테라피를 대체보완요법의 하나로 활용하는 추세다. 요가나 명상 등 이완이 필요한 수련과도 뗄 수 없는 관계다. 최근 국내에서는 연극, 음악명상 프로그램, 전시 등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향을 결합하는 아로마테라피의 확장도 시도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경기 안산문화재단 보노마루에서 처음 상연돼 경기공연예술페스타 ‘베스트 콜렉션’에 선정된 연극 ‘림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림보’는 엄마를 잃은 중학생 소녀가 친구를 잃은 길가메시의 슬픔에 공감하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떠올리고, 애도를 통해 치유된다는 내용의 ‘관객 참여형 연극’으로 극의 곳곳에 아로마테라피가 활용됐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번아웃과 상실을 경험했어요. 저 자신도 일으킬 힘이 없는 상황에서 관객이 뭘 체험하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공연을 보는 2시간 동안 오롯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길 바랐죠.”
‘림보’를 연출한 이태린(40)씨는 기획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연극에 향을 결합한 이유에 대해 그는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여정을 떠난 주인공이 박하숲에 이르는 장면을 보고는 “문득 향기로도 이야기 속 공간을 구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하(페퍼민트)는 ‘정신을 깨우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향기’라고 하더라고요. 이야기 흐름상 필연이었던 거죠. 서서히 스며드는 후각을 써야겠다 싶었습니다.”
이 연극에서는 배우가 관객들 손에 에센셜 오일을 직접 발라주는 ‘테라피 타임’도 있다. 연극에 참여한 아로마테라피스트 정지영(41)씨는 이 부분에서 “스트레스와 피로 해소, 차분함, 열린 마음과 같은 상태를 유도하려 했다”며 “레몬, 베티베르, 파촐리, 일랑일랑, 레몬그라스 오일 등을 혼합한 향을 사용했다”고 했다. 연극을 관람한 임유진(20)씨는 “오일을 손등이나 목덜미에 바르고 나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고 현장에서의 감각을 떠올렸다.
‘엘리멘탈’이 향기와 만난다면
아로마테라피는 음악과 애니메이션 대사와 접목돼 관객을 명상의 세계로 이끌기도 한다. 지난달 15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는 음악명상 프로그램 ‘세이프 앤드 사운드’(Safe And Sound)가 열렸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명상음악그룹 ‘마고사운드’의 권민체(43) 대표는 “향에는 계절, 비, 엄마의 스카프 향기 등 특정한 기억을 떠올리고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명상 효과가 있다”며 “향은 향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각각의 치유 기능이 있는데 이 둘을 접목시켜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진행된 프로그램에 아로마 전문가로 참여한 강수민 대표는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에서 인상적인 대사를 골라, 이와 짝지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에센셜 오일로 표현했다. 공연에 사용된 대사와 에센셜 오일은 4쌍이었다. 에센셜 오일 4개는 각각 솜에 묻혀 지퍼백에 담아 공연 시작 전에 미리 관객들에게 제공했다. 스크린에 ‘엘리멘탈’의 한 장면과 함께 “왜 남이 정한 대로 살려고 해?”라는 대사가 떴다. 웨이드(물 원소)로부터 이 말을 들은 앰버(불 원소)가 부모에게 인정받고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마음만 있었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주체적으로 고민해보지 않은 것을 깨닫는 장면이다. 이때 강 대표가 4개의 향 중 로즈메리 향을 꺼내보라고 말한다. “눈을 감은 채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쉽니다. 타인이 바라보는 내가 아닌 진정 내가 원하는 인생을 찾는 데 집중해봅니다.”
명상과 피아노, 베이스, 바이올린의 라이브 연주가 이어지고, 다시 강 대표의 설명이 이어진다. “로즈메리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두뇌를 활성화해, 감정이나 생각을 창의롭게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로즈메리는 ‘창의적으로 변하려면 똑같은 일상과 고정관념에서 모험을 떠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이런 방식으로 대사 “마음의 소리를 못 들으니까 화가 나는 거야”와 베르가모트 향(분노감·좌절감 해소), 대사 “정말 대단하네요”와 메이창 향(우울·스트레스 감소), 대사 “영원한 빛은 없으니 빛날 때까지 만끽하자”와 재스민 향(열정·창조성 강화) 짝과 관련한 명상 프로그램이 70분간 이어졌다.
에센셜 오일의 활용은 미술관으로도 확장됐다. 전시기획업체 디디알디(DDRD) 고준영(50) 대표는 서울 성동구에 있는 ‘트리하우스 성수’에서 ‘자연과 식물’을 주제로 이혜영(40) 피토테일(아로마테라피 매장) 대표와 협업해 아로마테라피를 활용한 전시를 두차례 열었다. 지난달 7~19일 열린 슈무 작가의 ‘원 앤 온리’(ONE & ONLY)전에서는 코알라 등 멸종위기동물과 이들의 안식처가 소재였다. 이 대표는 “단순한 향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작품 속 세계와 연결점을 만들려 했다”며 “코알라가 먹는 유칼립투스와 오스트레일리아산 티트리 오일, 수달과 악어의 서식지를 연상시키는 팔마로사 오일 등을 블렌딩해 이들의 서식지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월21일~12월10일 열린 김덕한 작가의 ‘루킹 인투 타임’(Looking into time)전에서는 “나무 수액인 옻이 작품의 주 소재였기에 에센셜 오일 중에서도 나무 수지에서 추출된 것들만 사용했다”며 재료 간 연관성을 강조했다. 고 대표는 “사람은 공감각적 경험을 통해 감동하고 치유된다. 아로마테라피를 통해 후각을 자극하여, 시각적 경험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일으키고 싶었다”고 했다. ‘루킹 인투 타임’전을 본 허유리(27)씨는 “수액 향이 진해 작품 속 나무 이미지가 잘 어우러졌다”며 “향을 함께 맡으며 전시물을 관람하니 작가의 의도가 더 명확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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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불면증 치료…이완 효과 극대화
아로마테라피는 환자들에 대한 보조 치료 용도로도 활용되고 있다. 활동 초기부터 호스피스와 암 병동을 오가며 마사지를 겸한 향기 치료를 실시한 강수민 대표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무척 까칠했던 한 환자는 유일한 취미가 등산이었는데, 어느 날 향을 맡더니 “숲에 온 것 같다”며 반겼다고 한다. 그는 이후 향이 바뀔 때마다 “이건 무슨 향 같다”며 감상을 즐겨 나누게 됐다고 한다. 또 딸을 간병인으로 둔 다른 환자의 경우, 라일락 오일 향을 맡으며 과거 딸과 함께 떠났던 소풍 추억을 즐겁게 떠올렸다고 한다. 강 대표는 “오일은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대화가 어려운 공간에서 기분과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고 했다.
아로마테라피는 두통, 어지러움, 불면증 등을 유발하는 스트레스성 자율신경기능이상 환자들을 위해서도 활용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오상신경외과의 오민철 원장은 “두통·불면증 등에 대해 주사 치료를 하고 있는데, 이런 환자분들은 병원에서의 치료 못지않게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습관이 더욱 중요하다”며 치료와 병행해 보조적으로 아로마테라피를 권하고 있다. 향을 맡거나 피부에 발라 흡수된 오일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신경 치료와 병행하면 “성분에 따라 식욕과 의욕 자극, 항염증 작용, 통증 조절 등에 도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오 원장은 설명한다.
일상에서 아로마테라피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완과 편안함을 느꼈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 용인에서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일하는 윤여원(27)씨는 “밤에 라벤더 오일과 밸런스 오일을 섞어서 발에 바르면 잠이 잘 온다”고 했다. 20년째 요가 수련 중인 경기 성남시의 주부 김로마(55)씨는 에센셜 오일이 요가의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했다. “마무리 이완 단계에서 누워 있으면 선생님이 승모근이나 인중에 오일을 발라주시는데요. 서서히 사라지는 향을 쫓아 호흡하다 보면 잡념과 소음도 함께 사라지고 어느새 깊은 이완에 듭니다. 두통이 나은 적도 있어요.”
그러나 향기로운 냄새에 끌려 에센셜 오일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원액을 직접 피부에 바르거나 먹는 것, 그리고 임신 5개월 전까지의 오일 사용은 권장되지 않는다. 오 원장은 “불안 증상이 있는 경우에 페퍼민트 오일은 빈맥이나 부정맥을 유발할 수도 있기에 성분별 효능을 잘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또 “아로마의 효능에 대한 연구와 실험이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은 대체의학의 범주에서 고려된다”며 “현대의학에서의 약물이나 치료법처럼 특정 증상이나 질환의 치료로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많다”고 오남용을 경계했다.
적정 농도로 희석된 에센셜 오일은 다양한 방식으로 몸에 들어와, 성분에 따른 효과를 낸다. 귀 뒤나 손목에 바르거나 혈점을 중심으로 마사지하기, 무향 로션에 섞어 바르기, 디퓨저 사용 등이 일반적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목욕할 때 욕조에 4~6방울(성인 기준)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강수민 대표는 “오일은 지용성이라 물에 떨어뜨리면 둥둥 뜬다. 그래서 오일의 2배 분량의 우유와 먼저 섞어 목욕물에 넣으면 잘 섞인다”고 귀띔했다.
※참고 자료: ‘마음을 치유하는 아로마테라피’(군자출판사)
유해강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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