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차 피디의 맘대로 시상식! 정국·뉴진스·아이브…
한 해가 끝나가는 이맘때면 곳곳에서 순위가 매겨진다. 올해의 인물, 올해의 10대 사건, 올해 최고의 영화 7편 등등. 나도 가요계 순위를 매겨볼까 한다. 기준은 23년차 라디오 피디의 감이라고 해두고 재미로 봐주시길.
먼저 올해의 노래는 뉴진스의 ‘슈퍼 샤이’를 꼽아본다. 방탄소년단(BTS)이 완전체 활동을 멈추고, 블랙핑크도 재계약 관련으로 주춤했던 사이 아이브, 르세라핌 등 신진 걸그룹이 기세 좋게 치고 올라온 한 해였다. 그중에서도 뉴진스의 존재감은 가장 돋보였고 ‘슈퍼 샤이’는 올해 케이(K)팝의 흐름을 집약해서 보여줬다. 다만, 내 취향은 아니어서 즐겨 듣진 않았다.
올해의 앨범은 아이브의 ‘아이브 아이브’로 선정했다. 골고루 나눠주려는 의도는 절대로 아니다. 뉴진스가 아직 정규 앨범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11곡에 달하는 아이브의 첫 앨범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칠 힘이 있어 보인다. 멤버 장원영과 안유진은 3곡의 작사에 참여했는데 공동 작사가 아닌 단독 작사로 팬들에게 내면을 드러내 보였다. 방탄소년단이 세계시장으로 나서며 내세웠던 메시지가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라’였다면 이 앨범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너 자신을 믿고 나가라’는 응원이다. 특히 ‘아이엠’은 올해 내가 가장 자주 들은 노래. 마흔을 훌쩍 넘은 아저씨인 나도 그들의 선언에 울컥하는 걸 보면 또래 아이들이 느낄 에너지는 훨씬 더 클 것이다.
올해의 가수는 정국이다. 방탄소년단 다른 멤버들도 솔로 활동을 했고 꽤 성공적이었지만, 정국처럼 반짝이고 높이 치솟은 별은 없었다. 정국의 솔로 활동에 대해선 예전 글에서 상세히 다루었으니 생략하고, ‘골든’을 올해의 앨범으로 꼽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까 한다. 수록곡이나 성과를 보면 넉넉히 타이틀을 차지하고도 남겠지만, 이 앨범을 가요 앨범으로 분류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케이팝이 아니라 그냥 팝이다. 예전 글에서 제일 먼저 나온 ‘세븐’보다 다음 타이틀 ‘스리디’(3D)가 더 좋다고 썼는데, 앨범이 발표된 후 최애곡이 또 바뀌었다. ‘스탠딩 넥스트 유’. 유일한 걱정은 혼자서도 너무 잘나가는 정국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선정 결과가 너무 심심하다면 이건 어떨까? 올해 가장 소란스러웠던 노래로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를 선정한다. 국내에서도 생소했던 신인 걸그룹 노래가 해외에서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은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었고, 혹시 걸그룹 버전의 방탄소년단이 탄생하는 걸까 기대했던 팬들도 있었다. 그러나 성공의 과실이 무르익기도 전에 촉발된 소속사와 멤버들의 진흙탕 싸움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2023년 가요계의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이 와중에도 ‘큐피드’의 인기는 엄청났는데, 틱톡은 이 노래가 올해 가장 많이 사용된 ‘최고의 틱톡 송’이라고 밝혔고, 빌보드 싱글 차트를 비롯한 여러 해외 차트에서도 우리 걸그룹 노래 중 가장 오래 차트에 머문 기록을 세웠다. 잘못을 반성하며 홀로 원래 기획사 어트랙트로 돌아온 멤버 키나와 그를 받아준 전홍준 대표의 건승을 기원한다.
올해 가장 널리 불린 노래는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노래방 반주기 업체의 발표에 따르면 박재정의 ‘헤어지자 말해요’가 1위라고 한다. 2위는 디케이(DK)의 노래 ‘심’(心), 3위는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순이다. 혼자 부르기 어렵고 안무를 동반해야 맛이 사는 케이팝은 아무래도 노래방에서 부르기에 무리여서일까? 블랙핑크의 노래를 코인노래방에서 열창했던 내 모습이 괜히 부끄러워진다.
이 글을 쓰면서 듣고 있는 앨범은 자이언티의 새 앨범 ‘집’(zip)이다. 피디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좋아했던 앨범으로 소개한다. 하드록과 블루스 정도를 제외하면 대중음악의 전 장르가 가장 간결한 형태로 녹아 있다. 장르 불문의 작곡 편곡뿐만 아니라 주제의식 또한 다채롭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하찮음을 노래한 노래 ‘모르는 사람’과 눈물겨운 존재의 소중함을 노래한 ‘불 꺼진 방 안에서’가 사이좋게 한 앨범에 있다는 사실은 자이언티의 품이 얼마나 넓고 깊어졌는지를 보여준다. 마침 마지막 노래 제목이 연말에 적절한 ‘해피엔딩’. 잠깐 노랫말을 보자.
‘문장과 문장 사이의 거리/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거리지만/ 나는 여기까지 오는 데/ 몇 달이나 걸렸지’
노랫말을 대하는 그의 경건한 태도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올해도 얼마나 많은 문장을 고민 없이 내갈겼던가. 내년에는 좀 더 정성 들여 글을 써보겠다고 독자님들께 약속드립니다. 올 한 해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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