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14억 제보자 포상금…‘제2 임창정’ 없는 美[최훈길의뒷담화]

최훈길 2023. 12. 1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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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 포상금 韓 1억 vs 美 7914억
전액 국고로 vs 과징금 재원으로 보상
솜방망이 처벌 vs 원스트라이크 아웃
공직 떠나는 인재들 vs 파격 임금 제도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올해 자본시장을 되돌아 보면 1순위 이슈 키워드는 ‘주가조작’이라고 봅니다. 지난 4월 라덕연 일당의 주가조작을 시작으로 6월, 10월까지 세 차례나 주가조작 사건이 터졌습니다. 초유의 일입니다. 지난 4월 당시 나흘 만에 시가총액 8조원이 증발하는 등 주식 투자자들 피해가 잇따랐습니다. 이를 보며 ‘우리나라 정부는 왜 세차례 주가조작을 막지 못했나’, ‘주가조작을 막을 후속 대책은 제대로 만들어졌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동료 기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댔습니다. 언론사를 둘러싼 녹록지 않은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안 공모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지난 6월 응모했고 7월에 취재비 일체를 지원받게 됐습니다. ‘지원하되 콘텐츠는 노터치’라는 언론재단 기조, 이데일리 편집국의 지원 분위기에 눈치 보지 않고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자본시장 선진국에서 인사이트를 얻자’, ‘당장 실현되지 않더라도 대안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생각에 미국(최훈길), 호주(김보겸), 영국(이용성) 출장을 갔다 왔습니다.

3명의 총 출장 기간만 한 달이 넘었고, 기획부터 보도까지 반년 넘게 걸린 기획취재를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저만 해도 인터뷰 섭외를 위해 1000통 넘게 메일을 보냈으니까요, 취재팀 전원이 고군분투 했습니다. ‘올해와 같은 세차례 주가조작 사태가 재발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해외에서 벤치마킹할만한 자본시장 정책을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부·자본시장과 투자자들에게 보탬이 될만한 인사이트를 많이 얻고 왔습니다. 오늘 뒷담화에서는 관련 취재의 뒷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취재하면서 어떤 자본시장 정책이 가장 주목됐나요?

△저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취재를 했는데요. 미국의 자본시장 제도를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습니다. 헤스터 피어스 위원(Hester Pierce SEC commissioner)과 SEC 집무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요. 우리나라에도 도입하면 좋을 매력적인 제도에 대해 얘기를 들었습니다. 피어스 위원은 위원장 포함 5명으로 구성된 SEC의 고위급 위원입니다.

특히 피어스 위원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미국의 제보자 포상금 제도를 설명한 게 인상 깊었습니다. “미국에도 주가조작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미국엔 내부제보(휘슬블로잉·whistleblowing)처럼 이를 규제할 법이 잘 돼 있다. 한국 정부가 이를 도입한다면 정책 조언을 해줄 수 있다”. 휘슬블로잉 즉 내부 제보자(내부 고발자)를 위한 포상금 제도가 미국에 잘 갖춰져 있다는 건데요.

포상금 액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SEC는 올해 5월 SEC에 제보한 내부 고발자 1명에게 2억7900만달러의 포상금을 지급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3700억원에 달합니다. 5월에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지난 8월에도 제보자 7명에게 포상금 1억400만달러(약 1300억원)를 지급했습니다.

SEC가 지난달 펴낸 연례 의회 보고서를 보니, SEC가 제보자 포상금으로 지급한 금액이 올해만 거의 6억달러(7914억원)이라고 합니다. 포상금 지급 건수를 보면 주가조작 등의 제보자에 대한 포상 건수가 제일 많구요. 폰지나 피라미드 사기, 코인, 기업 공시나 재무, 내부자 거래 순이었습니다.

-제보가 늘면 증권범죄 피해를 줄이는 등 여러 긍정적 효과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SEC가 지급한 포상금이 수천억원 규모여서 놀라운 숫자지만, SEC는 이 같은 내부고발로 40억달러 즉 5조원이 넘는 투자자 피해를 막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조치였다고 평가했습니다. 갈수록 증권범죄가 은밀하고 교묘해지면서 당국이 이를 선제적으로 적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피어스 위원은 “포상금을 강화하자 SEC가 접근하기 어려운 내부 정보들을 많이 입수하고 있다”며 이같은 포상금 제도가 선제적 범죄 예방·적발 효과가 크다고 전했습니다. 파격적 포상금 도입 이후 SEC에 접수된 제보는 제도 도입 직전인 2010년 334건에서 올해 1만8354건으로 55배 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포상금을 지급하려면 재정 부담이 크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페어펀드(Fair Fund) 제도라는 미국의 투자자 보호 방안 때문인데요. 미국은 사베인스·옥슬리법(SOX법)에 따라 증권범죄 부당이익환수 금액을 불공정거래 피해자 위한 공적기금(페어 펀드·Fair Fund)에 적립 중입니다. 페어펀드는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에 과징금 등을 부과한 뒤 걷어 들인 제재금을 피해를 본 투자자들에게 반환해주는 구제 목적의 펀드입니다.

이렇게 제보가 늘고 제재금이 늘면 주가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에게도 긍정적입니다. 제재금이 늘수록 피해자들에게 돌아갈 지원금도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피어스 위원은 “미국에서는 누가 피해자인지 모를 경우에만 국고로 환수할뿐, 나머지 대부분은 피해자들에게 돌려준다”고 설명했습니다.

파격적 포상금 도입 이후 SEC에 접수된 제보는 제도 도입 직전인 2010년 334건에서 올해 1만8354건으로 55배 늘었다. 2023년 SEC 연례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가장 많이 접수된 제보는 주가조작 관련 내용이었다.(사진=최훈길 기자, 그래픽=이미나 기자)
-이같은 포상금 제도는 우리나라와 차이가 많지요?

△우리나라 포상금 연간 총액은 재작년 1185만원, 지난해 0원, 올해 1억85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이 액수가 건당이 아니라 한 해 총합산입니다. 미국은 제재부과금의 10~30%를 제보자 포상금으로 지급하니까요, 부과금이 많으면 포상금 한도도 올라가니 어떤 한도나 캡을 씌워놓은 게 아니거든요.

반면 우리나라는 1건당 최대 지급 포상 한도는 20억원으로 제한돼 있습니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익명 제보는 불가능하구요. 미국은 과징금이나 제재금이 재원인데, 우리나라의 포상금 재원은 증권사 등 금융사가 부담하는 감독분담금이기 때문에 재원이 한정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가조작, 불법공매도 등 증권범죄 관련 과징금은 피해 투자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배상금으로 사용되지 않고 국고로 전액 환수됩니다.

한편 금융위는 포상금 최고한도를 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상향, 익명 신고 도입(단 포상금 수령하려면 실명 인증 필요), 포상금 재원을 정부 예산으로 마련하는 등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등을 입법예고(12월14일~내달 8일)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어떻게 이같은 파격적 포상금 제도를 도입하게 됐나요?

△김유니스 전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비리제보자에 대한 포상금’ 연구에 따르면, 1990년대 미국 법무성은 포상금 액수가 200만~300만달러(26억~40억원)를 넘는다면 횡재이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봤습니다. 당시 미국의 포상금은 최대 160만달러(현재 환율로 21억원)로 제한돼 있었습니다. 1988년~2009년 당시 SEC에 접수된 제보는 매월 1~2건에 수준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포상금 한도(건당 20억원), 제보 상황과 비슷한 셈입니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파격적 포상금에 대한 우려는 사그라든 상황입니다. 갈수록 자본시장 범죄가 교묘해지고 있어 내부제보 등이 없이는 정부가 비리를 효과적으로 적발하기 힘든 현실적 상황 때문입니다. 포상금 제도는 정부가 혼자 주가조작을 적발하는 게 아니라, 시장과 시민사회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파격적 포상금은 자본주의 생리를 잘 반영한 제도라고 봅니다.

강석훈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 교수는 이데일리와 만나 “내부 제보를 하면 관련 업계에서 더이상 일을 못하기 때문에, 평생 먹고살 정도의 포상금을 줘야 비리에 대한 내부 제보가 가능하다”며 “배신자 프레임 때문에 미국도 내부 제보가 힘들었지만, 파격적인 제보자 포상금 등 자본시장 생리를 잘 반영한 제도 덕분에 SEC가 증권범죄를 효과적으로 잡아내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헤스터 피어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Hester Pierce SEC commissioner)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SEC 집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했다. 피어스 위원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올해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최훈길 기자, 통역=제레미 서·Jeremy Suh)
-미국은 증권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도 세지요?

△피어스 SEC 위원에게 ‘미국은 증권범죄로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면 시장에서 한 번에 퇴출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가 있습니까’라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피어스 위원은 “상황, 사이즈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위법했을 때 비즈니스에서 퇴출되는 경우도 있다”며 “의도적인 위법의 경우에는 좀 더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앞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에서 다단계 금융 사기극을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는 2009년에 징역 150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종신형인데요, 메이도프는 이렇게 처벌을 받고 감옥에서 일생을 끝냈다고 하는데요. 미국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투자자들 피눈물을 흘리게 범죄에는 일벌백계하는 제도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올해 3차례 주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제재 강화에 나섰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사실 우리나라는 최대 양형 기준이 징역 15년에 불과합니다. 주가조작단이 수백억원, 수천억원 부당이득을 챙겨도 수사당국이 부당이득 산정에 실패하면 최대 5억원 벌금만 내면 되구요. 그러다 보니 증권범죄로 수백억 이득을 챙긴 뒤 몇 년 감옥 갔다 와서, 명함 바꾸고 다시 또 사업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이러다 보니 투자자들 피눈물 흘리게 하고 처벌은 솜방망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도 제재 강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9월 금융위원회·법무부·대검찰청·금융감독원은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시 10년간 자본시장 거래를 제한하고 상장사 임원 선임에서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지난 5월에 이미 발의됐는데, 조금 전 확인해 보니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하더라구요. 지금 국회가 정쟁으로 시끄럽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런 법안은 쟁점 법안이 아닌데도 논의가 안 되고 처리가 무산될 우려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포상금·처벌 관련 법이 잘 갖춰져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올해 4월 주가조작 사건 당시 공모자·피해자 논란을 일었던 임창정씨 사례처럼 ‘제2 임창정’, ‘제3의 임창정’이 계속 반복될 우려가 있는 셈입니다.

-이러다가는 제보자 포상을 상향하는 법안도 폐기될 우려가 있다고 하던데.

△미국 취재 이후 귀국한 뒤 우리나라의 제보자 포상금 제도를 쭉 살펴봤습니다. 그러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군분투 중인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안을 발견했습니다. 해당 법안은 공익신고자에 대한 현행 포상금 한도(30억원)를 없애고, 과징금을 비롯한 제재금의 30%까지 포상금이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입니다.

이용우 의원을 비롯해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안병길 의원, 정부가 발의한 총 4건의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안을 통합한 법안입니다. 제보자에게 파격적인 포상을 하는 미국 제도를 벤치마킹한 이른바 ‘한국판 휘슬블로어(whistleblower)’ 법안입니다. 이용우 의원실 관계자는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안이 처리되면 자본시장법 등 관련법에도 일괄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법정처리 시한을 넘길 정도로 정쟁으로 국회가 공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익성 있는 법안조차도 표류하고 있습니다. 법안의 산파 역할을 한 이용우 의원은 “정쟁으로 파행이 계속되다 보니 법제사법위원회에 법안이 막혀 있다”면서 21대 국회에서 불발될 우려를 표했습니다. 국민적 관심이 필요합니다. 12월27일 법사위가 예정돼 있는데요, 이때 이 법안도 논의될지 주목됩니다.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한국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비교. (자료=각 기관 종합)
-그런데 미국과 우리나라는 금융당국의 조직, 감독 체계도 많이 다르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사실 이번에 출장 가기 전에 여러 금융당국 분들을 만났는데요. 미국의 금융당국 조직, 인원, 체계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더라구요. ‘왜 범인을 못 잡았냐고 뭐라고 하기 전에 범인 잡을 만한 권한을 주고 지원을 해달라’는 얘기인데요. 미국과 우리나라는 법 체계가 다르고, 배심원제에 기반한 집단소송이 활발한 미국 상황, 경제·인구 격차를 고려하면 당연히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봤는데요. 그래도 우리나라가 G7 선진국 반열에 올랐는데, 이런 경제적 위상에 비해선 미국과 자본시장 조직 관련 격차가 상당히 크더라구요.

우선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조사를 하는 인력 규모에서 격차가 큽니다. 금감원의 불공정거래 조사 인력은 70명(작년 말 기준)입니다. 피어스 SEC 위원에게 물어봤는데요. SEC의 불공정거래 조사인력은 약 14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보다 20배 많은 수준입니다.

조직 구성도 차이가 있습니다. SEC는 통합조직인데 우리나라는 금융위, 금감원으로 당국이 분리돼 있고 조사 권한, 범위도 제각각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 4월 라덕연 주가조작 사태 당시에는 금융위의 늑장대응, 금융위·금감원의 엇박자 논란이 불거졌구요. 금감원의 경우엔 워싱턴 D.C. 및 홍콩 사무소가 폐지돼 해외 주요당국과의 원활한 네트워크도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권한도 보면 SEC는 재량에 따른 임의조사, 증인소환 등 강제조사를 할 수 있구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혐의를 받는 계좌에 대한 동결, 증권범죄 일당의 휴대폰 통화 내역 조회도 가능합니다. 이는 한국의 금융당국에는 없는 권한입니다. 그리고 SEC 내에 증권 관련 사건만 전담하는 행정법원도 있어서, 증권 관련 빠른 민사소송을 진행할 경우 SEC 내의 행정법원에서 처리한다고 합니다.

-미국과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임금 결정 과정도 다르다고요?

△척 헤이글 전 국방장관이 미 상원 금융위 증권소위원장을 맡을 당시 정책실장이었던 폴 공 루가센터 선임연구원을 만났는데요. 그는 “미국의 SEC가 처음부터 파워가 센 것은 아니었다”며 “자본시장 불공정거래가 기승을 부리는데 SEC 인재들이 금융사로 떠나자, 파격적 인센티브를 주면서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폴 공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2001년에 미국의 대표적인 에너지 기업인 엔론(Enron)이 분식회계 사기로 파산했습니다. 이에 금융시장 충격이 컸고 투자자들 피해도 잇따랐습니다. ‘엔론 사태’를 겪으면서 국회와 정부는 자본시장을 감독할 기관 즉 SEC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민간으로 인재들이 유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했구요.

이에 미국은 2002년에 임금 관련 법(Pay Parity Act)을 도입했고 SEC는 자체적으로 임금을 결정해 직원들에게 파격적인 급여를 지급했습니다. 오늘날 SEC가 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이같은 인력·조직·예산 지원도 원인 중 하나인 셈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인사혁신처가 일률적으로 인력·조직·예산·임금을 통제하는 구조입니다. 내년도 공무원·공공기관의 임금인상률은 전년대비 2.5%에 불과합니다. 물가 인상률을 밑도는 수준입니다.

이러다 보니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한국의 경제부처 에이스 공무원들이나 금융감독원 인재들이 잇따라 민간 기업으로 떠나게 됩니다. 공무원·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은 엄단해야 하지만, 갈수록 자본시장 규모가 커지고 민생경제가 중요해지는 상황에선 미국처럼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도 검토했으면 합니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미국 취재 전에 영국과 호주도 취재했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정책이 주목됐나요?

△동료 기자들이 취재한 내용을 말씀드릴게요. 영국에서는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관련해 ‘한번 걸리면 끝’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금융당국의 강력한 금전적 제재로 파산에 이르러 재기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금융행위감독청 FCA(Financial conduct authority)는 강제출석 요구 권한, 조사권, 금전적·비금전적 제재, 기소 권한 등 강력한 제재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영국에서 불공정거래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FCA가 관리·감독이 소홀했다는 이유로 FC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당국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관리·감독의 ‘구멍’의 책임이 FCA에 있다고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아, FCA 공무원들은 눈에 불을 켜고 불공정거래를 감시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호주에서 만난 시장 한 시장관계자는 “준법의식은 강한 처벌에서 시작한다는 원칙 때문”이라며 “주식 시장에도 이 같은 원칙이 자리를 잡으며 주가조작 사태에 대한 우려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자료=호주증권투자위원회·ASIC)
-호주에서는 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핀플루언서에 대해서도 당국이 주목하고 있다고요?

△호주에서는 유튜브에서 주식 관련해 영향력이 센 이른바 핀플루언서(금융 분야 인플루언서)에 대해서도 경고음을 켰는데요. 호주는 멀게 느껴질 수 있는 나라일법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 적용할 만한 자본시장 정책이 많은 나라인데요. 우리나라와 호주의 자본시장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규모이고, 영미권 정책을 바로 가져오기는 그렇지만 호주 정책은 우리나라 정책에 바로 적용할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호주에서는 지난 6월 ‘핀플루언서’인 타이슨 슐츠가 법원으로부터 45만6286호주달러(약 3억8326만원)의 벌금을 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주가가 크게 변동할 수 있는 시가총액이 작은 회사들을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에 언급해 주가를 끌어올리고, 자격증 없이 주식에 대해 조언했다는 혐의인데요. 법원은 그가 값비싼 슈퍼카의 사진을 게시한 것이 주식 거래 수익으로 인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처럼 호주는 주가 또는 투자자에게 영향을 미칠 ‘부 과시’ 행위도 처벌 대상일 만큼 시장교란 행위에 대해 철저히 규제하고 있는데요. 최근 금감원도 불법 혐의를 받는 핀플루언서 조사 내용을 밝혔습니다. 우리나라도 호주처럼 핀플루언서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독이 본격화되는 양상입니다.

※이슈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추적해 전합니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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