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에 직접 만든 로켓 쏘아올리는 고교생
지난 9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재미있는 펀딩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제목은 ‘상공 30km 목표 아마추어 고체 추진 관측 로켓 개발’. 아마추어 로켓 개발을 위한 자금을 모으는 펀딩이었습니다.
이 펀딩을 기획한 단체 ‘오버페이스(Overpace)는 자신들을 “우주와 로켓을 사랑하는 고등학생 4명”이라고 소개합니다. 단지 화염을 뿜고 멋지게 올라가는 로켓의 모습에 매료돼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는 서울 숭문고 2학년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보통 골 때리는 친구들이 아닌데?’
‘상공 30km 목표 아마추어 고체 추진 관측 로켓 개발’이란 제목의 텀블벅 펀딩 프로젝트를 보자마자 한 생각입니다. 텀블벅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입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졌지만 이를 실현시킬 자금이 부족한 이들이 온라인을 통해 자신의 프로젝트를 후원해 줄 소액 투자자들을 찾는 방식이 바로 크라우드 펀딩인데요.
이런 속성 덕에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모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로켓을 개발하고자 하니 자금을 투자해 주기 바란다는 프로젝트가 등장하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오버페이스라는 이름의 로켓 개발팀입니다. 이들은 오버페이스를 “대한민국의 민간 우주로켓 개발 연구소”라고 소개했습니다. 오버페이스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공 30km까지 자체 개발한 관측 로켓을 발사해 대기 중 오존의 분포를 파악하기,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300만 원을 모으기. 고등학생들의 프로젝트라기엔 규모가 조금 큽니다.
프로젝트 소개도 그렇습니다. 로켓 연료를 만들고 시험발사를 진행하기까지의 고군분투를 쭉 적었는데 그 내용이 논문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구체적이었습니다
오버페이스, 어떤 사람들인지 얼굴을 꼭 보고 싶어졌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 10월 26일 오후 숭문고 화학실에서 오버페이스 팀원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법인 회사에서 만든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 엄청난 굉음과 함께 39.2N의 추력이 발생하기까지
Q. 명함이 무척 멋져요. 직함도 대표이사, 엔지니어 등 구체적으로 나뉘어 있는 것 같은데 여기 계신 네 분이 각자 맡고 있는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A(정승호). "저는 오버페이스의 공동 대표 정승호라고 합니다. 대표라고 뭘 많이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전체적인 기획과 프로그래밍, 영상편집 등을 맡고 있습니다."
A(김영우). "프로그래밍을 맡고 있는 김영우 엔지니어입니다."
A(박현우). "앞의 두 친구는 프로그래밍을 한다고 했는데, 저는 코딩보단 로켓 설계와 발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박현우라고 합니다."
A(정승호). "(현우가). 유일한 기계공학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공동 대표를 맡고 있어요."
A(윤수연). "저는 세 친구들보다는 늦게 합류했어요. 로켓 제작 전반에 아이디어를 보태고 있는 윤수연 엔지니어입니다."
Q. 팀의 밸런스가 좋은데요. 텀블벅에 올려 둔 프로젝트 설명을 보고 여러분이 무척 궁금했어요. 오버페이스 여러분이 어떻게 만나서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들려주세요.
A(정승호). "저희는 모두 숭문고 인공지능(AI). 중점과정 2학년 학생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로켓은 작년 3월 입학하고 나서 어떤 연구를 해볼지 생각해 보다가 떠올렸습니다.
원래 별을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별로 향하는 로켓도 좋아하게 됐어요. 그런데 물로켓이나 에어로켓은 시시했고 진짜 연료를 태워서 나는 로켓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때 반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현우를 비롯해 지금은 여기 없는 두 친구와 팀을 꾸렸습니다. 처음 연료를 만든 곳이 여기 화학실이었어요."
Q. 로켓 연료 ‘레시피’가 교과서에 써 있지는 않잖아요?
A(정승호). "로켓 연료를 만들 때 어떤 물질이 필요한지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KNSB 연료는 질산칼륨과 소르비톨을 섞어 만들어요. 소르비톨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품첨가물이고 단맛이 나요. 그래서 이 연료를 ‘로켓 캔디’라고 불러요.
소르비톨은 실질적으로 연소하는 물질입니다. 질산칼륨은 소르비톨의 연소를 돕는 산화제로 쓰여요. 인터넷에선 비료로 팔죠. 그런데 질산칼륨 비료 구매 후기를 보면 “실험할 때 잘 쓰겠다”는 댓글이 많아요. 아무도 비료로 쓰지 않는 모양이에요.
저흰 소르비톨과 질산칼륨의 배합을 바꿔가며 연료로 사용하기에 제일 좋은 배합을 찾았어요. 실험하다 연료가 터진 적도 있는데, 저기 있는 공기청정기의 수치가 990까지 올라가는 걸 목격했죠. 그 뒤론 위험한 실험이란 걸 깨닫고 더 조심하고 있어요.
다음 과제는 노즐이었어요. 로켓 연료가 연소하면서 엔진에 난 작은 구멍으로 가스가 분출되면 반작용으로 로켓이 추진력을 얻잖아요. 그 구멍이 노즐입니다. 처음엔 현우가 인터넷에 올라온 노즐의 모습을 보고 설계했죠."
A(박현우). "그냥 연료통에 작은 구멍을 내면 추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A(정승호). "그런데 첫 번째 실험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연기만 나고 추력은 조금도 발생하지 않았죠. 실패 원인을 파악하다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같은 팀 친구가 인터넷에서 물리 계산 프로그램을 찾아왔어요.
노즐의 모양에 따라 추력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등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그걸로 계산해 봤더니 지금까지 저희가 노즐 구멍 크기를 너무 크게 만들었단 걸 알 수 있었어요.
2022년 7월 다시 실험을 진행했어요. 연료에 불을 붙이고 잠시 뒤 자동차 열 대의 타이어가 한 번에 펑크 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발생한 추력은 39.2N(뉴턴).이었어요. 실험을 촬영한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장에서 들었던 소리와 느꼈던 희열을 다시 경험하고 싶었거든요."
A(박현우). "프로그램대로 될까 의문이 가장 컸습니다. 점화기도 말썽이라 현장에서 계속 고쳐야 할 정도였거든요. 로켓 엔진을 추력테스트 장치에 연결하고 점화기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연기와 함께 큰 소리가 났어요.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우지끈’ ‘펑’ ‘우당탕탕’ 로켓 발사 실패기
Q. 연료와 노즐을 완성했으니 엔진 개발이 끝난 건가요.
A(정승호). "아니죠. 이후로 실패를 무척 많이 했어요. 우선 노즐의 재료가 문제였습니다. 처음엔 노즐을 3차원(3D). 프린터로 만들었어요. 플라스틱이 열을 만나니 당연히 녹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는 추력이 100N이 나와야 하는데 계속 30N 언저리인 거예요. 딱딱하고, 불에 잘 타지 않고 모양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다른 재료를 찾아야 했죠. 결국 시멘트로 노즐을 만들었습니다.
2022년 저희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진행한 발사는 세 번 모두 ‘돌았’습니다. 처음엔 종이 지관을 몸통으로 삼은 로켓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엔진을 끼우고 인천 영종도에서 발사 실험을 했죠.
불은 붙었고 날아는 갔어요. 그런데 희한한 게, 로켓이 10m 정도 상승하다가 갑자기 눕더라고요. 그때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댓글 창에 친구들이 “너희가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못 하는 일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순항미사일을 만든 셈이죠. 허허. 고도 500m에 도달할 거라고 예상했던 로켓이 불조차 안 붙은 적도 있어요.
종이보다 더 강한 소재가 필요했어요. 아크릴 통으로 로켓의 몸통을 만들어서 202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발사 시험을 했습니다. 그때가 더 최악이었어요. 엔진이 처음부터 휘어져서 고정됐거든요.
실패를 겪으면서 느낀 점은 시멘트로 노즐을 만들더라도 강한 힘을 받으니 갈라지고 부서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진짜 로켓에서 사용하는 탄소강 합금까진 아니더라도 스테인리스로 엔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202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진행한 모든 실험이 실패한 건 아니었어요. 그때 스테인리스 엔진의 추력 시험도 함께 진행했거든요. 이때 발생한 추력이 952N이었습니다. (952N은 약 97kgf이니). 100kg인 사람도 들어 올릴 수 있는 정도의 힘을 냈다고 보면 돼요. 추력을 측정하는 장치가 부서질 정도의 괴력이었죠.
이렇게 찾은 방식으로 2022년 겨울방학 내내 새로운 로켓을 완성시켰어요. 겨울방학을 지나며 기존 팀원 두 명이 빠지고 여기 있는 새로운 엔지니어 두 명이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개학 이후로 3월, 4월 한 달에 한 번씩 추력시험을 계속했습니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추력이 나왔어요. 로켓 설계도 점점 더 과학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A(박현우). "날개나 노즈콘(로켓 앞머리의 뾰족한 부분).의 모양을 조절해 가며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설계를 찾았어요. 5월 추력시험을 통해 저희 로켓이 대략 186N의 추력을 안정적으로 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 정도 추력으론 로켓의 설계를 최적화했을 때 고도 500m까지 날 수 있겠다는 목표가 섰어요. 7월 29일, 고도 500m를 목표로 로켓을 발사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연료가 발목을 또 잡았어요."
● 7월 29일, 상공 500m에 닿다
Q. 정리를 한번 해 볼게요. 텀블벅 프로젝트 설명에 의하면 여러분이 7월 29일 발사한 로켓 ‘Faist_V.1.0’의 목표는 상공 500m에 도달하는 거였어요. 엔진은 스테인리스, 몸통은 아크릴이고요. 데이터 수집기와 카메라, 낙하산을 장착한 로켓이니 처음 종이로켓에 비하면 무척 발전했네요. 그런데 왜 1년 전 시점에 해결된 연료 문제가 발사를 방해한 건가요.
A(정승호). "습도 때문에 그래요. 장마철이어서 공기 중 습도가 무척 높았는데 습도가 높으면 연료가 잘 타지 않거든요. 게다가 연료의 연소를 돕기 위해 연료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야 합니다. 이걸 연료 성형 작업이라고 하는데 이 구멍이 잘 뚫리지 않았어요. 발사 하루 전 저희 집에서 로켓 캔디를 만드느라 무척 고생을 했죠."
A(윤수연). "저에겐 팀에 합류하고 함께한 첫 발사였어요. 승호네 집에서 로켓 캔디를 성형하는데 가운데 구멍 모양이 제대로 안 나와서 무척 힘들었어요. 궁여지책으로 망치로 구멍을 뚫으면서 팀원들끼리 '잘 안돼도 실망하지 말자' 이야기했죠."
A(정승호). "진짜 기대 하나도 안 하고 있었어요. 일을 벌여 놨으니 발사는 해야 한다는 마음이었죠. 7월 29일, 오송의 초경량 비행장치 이착륙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국토교통부 항공교통본부에 발사 공문도 보내놨고 학교 1학년 학생들도 몇몇 참관하러 내려온 상황이었어요. 날은 무척 덥고 습했고요.
준비를 끝내고 로켓에서 100m 떨어져서 발사 카운팅을 하는데, 힘이 빠져서 3, 2, 1에서 ‘1’을 부를 때엔 제 목소리가 거의 안들리더라고요. 발사 이후는 기억도 안나요. 너무 힘들어서."
A(박현우). "저는 로켓에 점화를 하는 역할을 맡았었죠. 늘 그랬듯. 원래는 점화할 때 제 손에 모든 게 달려있으니 손이 막 떨리는데, 그날은 손이 안 흔들렸어요."
A(김영우). "지관으로 만든 로켓은 옆으로 날아가기라도 했잖아요? 저는 그때 그냥 돌지 말고 날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카운트다운 후 점화를 한 다음 로켓이 날기 전까지의 정적이 너무 길게 느껴졌어요. 0.5초 안되는 시간이었는데도요."
A(박현우). "그런데 1초 만에 로켓이 시야를 벗어나곤 안 내려오더라고요."
A(김영우). "너무 기뻤어요.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
A(정승호). "우지끈 소리가 나서 보니까 로켓이 근처 나무로 떨어지면서 가지를 쪼갰더라고요. 로켓은 산산조각 나 있었고요. 로켓 올라가는 거 보니까 힘듦이 사라졌어요. 나중에 데이터를 보니까 로켓이 상공 약 500m에 닿았을 거란 결론이 나왔어요. 생각하면 500m는 엄청 긴 거리죠. 우사인 볼트도 1분은 걸려야 가는 거리잖아요."
● 12월 24일, 30km 목표로 또 한 번 도전
Q. 여러분 모두 엄청 대단한 일을 했네요. 그런데 이쯤 되면 드는 의문이 있어요. 여러분이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올렸을 땐 ‘로켓을 발사해 오존 분포를 파악하겠다’고 했는데 사실 여러분 기상 관측엔 별 관심이 없는 거 같은데요?
A(정승호). "맞게 보셨네요. 하하. 저흰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게 로켓 발사인 거죠. 오버페이스라는 법인 회사를 낸 것도 법인 이름으로 발사 허가를 요청하면 항공교통본부에서 허가를 잘 내려줄까 싶어서 그런 겁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주변에서 저희 프로젝트에 대한 좋은 반응을 많이 보내주고 계세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전국 각지의 학교에서 로켓 개발과 관련한 질문을 해오기도 하고요.
텀블벅 펀딩도 오늘(10월 26일). 보니까 310만 원 정도가 모였더라고요. 그중 절반은 저희 팀원들 가족이나 선생님들이 내주셨습니다. 그런데 남은 150만 원 정도는 정말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내주신 거예요. 그게 큰 응원이 됩니다. 펀딩을 통해 모은 돈은 로켓 제작비와 3D 프린터 수리비 등으로 사용하려고요."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A(박현우). "원래는 그냥 기계를 좋아하던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로켓을 만드는 게 꿈이 됐습니다. 저희가 지금 하는 활동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만든 로켓에 탑승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 정도는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A(윤수연). "이 팀에 들어오게 된 이유도 제가 메이커 활동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었어요. 미래엔 위성을 날려보고 싶네요."
A(김영우). "저는 프로그래머가 되는 게 꿈입니다. 사실 저희의 궁극적 목표는 로켓을 통해 데이터 수집을 해서 로켓의 고도, 온도, 습도, 비행 각도 등을 분석하는 거예요. 다음 발사를 통해 빅데이터 분석을 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A(정승호). "저는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 같아요. 지금 목표는 저희 로켓이 고도 30km까지 올라가는 겁니다. 데이터 수집도 완벽하게 하고 낙하산도 잘 펼쳐서 아무도 다치지 않게 발사가 잘 마무리되면 좋겠습니다."
● 크리스마스 이브 한반도 하늘에 산타와 로켓이
수없는 실패를 경험한 오버페이스 팀원들의 낙천적인 모습은 어디서 온 걸까요. 윤수연 학생은 “실패를 하면서 아닌 길을 지워갔다”면서 “그렇게 점점 성공에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박현우 학생도 “수연이 말에 동의한다”면서 “모두 최선을 다하니까, 서로 믿고 의지하며 지금까지 이어온 부분도 있다”고 했습니다. 서로가 있었기에, 실패를 통한 배움이 있었기에 오버페이스의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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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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