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금지' 56년만에 헌법불합치…계속되는 논란[세상을 바꾼 법정]㉙
국회·법원·대통령 관저 앞 집회 금지 ;헌법불합치'…헌재 "기본권 침해"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때론 나아 가야할 방향을 담고 있어서다. 우리 사회는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차례 격변기를 거쳤다. 이 때문에 1년 전에는 옳다고 믿었던 시대정신이 오늘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과거와 정반대의 판결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판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짚어봤다.
(서울=뉴스1) 황두현 기자 = 2011년 11월3일 오후 3시20분 서울 여의도. 이태호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현 운영위원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국회의사당 북문(한강 둔치 인근) 앞에 섰다.
그는 3000여명의 다른 참가자들과 40분여간 "한미 FTA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국회 담장 근처까지 행진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결국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국회의사당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집시법 11조 1항)는 규정에 따라 당시 이 위원장의 집회는 불법이었다.
집회금지 구역을 설정한 집시법 11조는 1962년 5·16 군사정변의 여파로 '주요 국가기관의 역할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제정됐다. 하지만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국회와 총리공관, 2022년 대통령 관저 등 차례로 집회를 금지한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경찰이 집회시위 제한구역을 설정할 수 있어 집회금지 구역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 헌재 "허용가능한 집회도 전면 금지…기본권 침해 "집시법 11조 헌법불합치 결정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2013년 8월 벌금형을 선고받고 항소, 상고를 거듭했지만 이듬해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그는 집회 금지 구역을 설정한 집시법이 헌법에 반한다며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했으나 법원은 "국회 인근 집회 금지는 국회 기능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기각했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사건을 접수한 헌재는 5년여의 심리 끝에 2018년 5월31일 집시법 11조 '국회의사당' 부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국회는 법률 제·개정과 행정부 통제권한을 행사하는 등 국가정책결정의 주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집회금지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면서도 "입법취지를 감안하면 입법자로서는 국회 기능을 저해할 가능성이 없는 소규모 집회, 공휴일이나 휴회기 집회 등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가능성이 완화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대규모 집회가 이뤄지는 경우 국회 기능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행위는 범죄행위로 처벌된다"며 "해당 조항은 입법목적 달성에 최소한도의 범위를 넘어 규제가 불필요하거나 예외적으로 허용가능한 집회까지도 일률적·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또 "국회 기능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집회를 금지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평화적이고 정당한 집회까지 전면적으로 제한해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상충하는 법익간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집시법 11조를 2019년 12월31일까지 개선하라는 의견을 내놨다.
앞서 2009년 같은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이 내려진 지 9년여만에 정반대 결론이 나온 셈이다. 헌재는 당시 국회 기능을 두고 "특별하고 충분히 보호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 국회 이어 총리공관·법원·대통령 관저 잇따라 헌법 불합치…"위헌 선언해야"
집시법은 5·16 군사 정변의 세력인 국가재건최고회의가 1962년 제정했다. 당시 집시법은 주요 국가기관으로부터 200미터 이내를 집회금지 장소로 지정했다.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등이 대상이었다. 이후 법 개정으로 금지구역이 100미터 이내로 줄긴 했지만 집회금지 장소의 틀은 유지됐다.
그러나 2018년 헌재 결정은 집시법 11조 개정 신호탄이 됐다. 헌재는 같은해 7월 법원·국무총리 공관으로부터 100미터 이내 시위 금지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22년 12월에는 대통령 관저, 올해 3월 국회의장 공관에 대해서도 잇따라 같은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대통령 관저를 두고 "대통령 관저 일대를 광범위하게 집회금지장소로 설정해 금지될 필요가 없는 장소까지도 포함되게 한다"며 "소규모 집회는 직접적인 위험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데 예외 없이 금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집회가 금지됐던 '성역'이 하나둘 풀리고 있는 셈이다.
현행 집시법은 국회의사당·법원 앞 집회를 '기관의 활동 방해 또는 대규모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허용한다. 다만 대통령 관저는 법 개정 미비로 2024년 5월까지 한시적으로 기존 규정이 적용된다.
◇ 집시법 11조 폐지에도 경찰 시행령 통치…집시법 논란 불씨 여전
집시법 개정 논란은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우선 집회금지 장소를 규정한 집시법 11조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헌재도 앞서 결정문에서 "현행법 조항에 대해서도 위헌을 선언할 필요가 있지만 법적 공백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경찰의 여전한 집회 제한도 논란거리다. 집시법 12조는 교통 방해가 우려될 경우 주요 간선도로의 집회·시위를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지난 10월 관할 서장 재량으로 집회시위 제한구역에 대통령실 앞 도로인 이태원로와 법원·검찰청 사거리 등을 포함시켰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 개정이 어려우니 시행령을 통해서 간선도로를 제한하는 편법을 쓰는 것"이라며 "헌법상 교통의 편의보다는 집회의 자유가 우선하는 권리"라고 비판했다.
이어 "경찰이 집회를 금지하면 현행법상 법원에 집회 금지 통고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하는 방법 외에는 뚜렷한 방안이 없다"며 현실적인 한계도 지적했다.
ausur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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