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어진 느낌” 우울한 워킹맘…일찍 일어나면 달라집니다 [워킹맘의 생존육아]
엄마로, 직장인으로 살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의 등원 준비를 하고 헐레벌떡 출근을 해서 업무를 하고 나면 퇴근 시간이 된다. 시터님에게 두 아이를 인계 받고 나서 열심히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저녁은 아주 간단히 떼운다.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을 아이들과 조금 더 함께 하고 싶은 나의 마음 반, 엄마에게 달라 붙어 ‘같이 놀자’며 아이들이 식사를 열심히 방해하는 상황이 반이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씻기고 숙제를 봐주면 어느덧 밤이 온다. 침대에서 책을 읽다 같이 잠이 든다. 아이를 재우고 ‘운이 좋게’ 다시 눈을 뜨면 남편과 맥주를 한 잔 하거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지만 그 시간은 어찌나 짧은지. 그나마도 최근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쉽지 않아졌다.
언제부턴가 아이들과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가 즐거운 휴식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억지로 몸을 깨우면 다시 잠이 들기가 어려워졌다.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지니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절감된다. 두 시간 자유를 즐기자고 침대를 박차고 일어난 후 깊은 새벽까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상황이 반복되자 자유 시간을 포기하게 됐다. 그야말로 ‘나의 시간’은 사라져버렸다. 나만의 시간이 사라지니 나 자신도 없어진 느낌이 들었다.
회사에서 숙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지난해 어느 날의 새벽, 피곤한 몸을 이끌고 터덜대면서 귀가하던 중 한 건물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동네에 있는 청소년수련원에 등록을 하기 위한 줄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년간 문이 닫혀있던 수련원에서 수영과 헬스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하필 한 달에 한 번 꼴이던 숙직 다음날이 첫 수강신청일이었던 것이다. 홀리듯 줄을 서고 종이에 프린트 된 시간표를 살폈다. 직장인이자 워킹맘인 내가 들을 수 있는 수업은 ‘새벽요가’였다. 늦은 저녁에도 수업도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회식이나 저녁 미팅, 야근이 잦기 때문에 수업에 자주 빠질 공산도 컸다. 어느덧 줄이 줄어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그날로 생전 처음 새벽요가를 등록했다.
사실 이전까지 ‘아침형 인간’이어본 적은 없었다. 그저 우연히 온 기회에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능한 선택지가 ‘새벽수업’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새벽 6시 30분, 주 3회의 요가 수업은 나에게 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줬다. 새벽에 눈을 뜨기는 쉽지 않았지만 정기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가지니 컨디션이 꽤나 좋아졌다. 무엇보다 ‘나를 위한 시간’이 생겼다는 게 정서적으로 큰 안정감을 가져다줬다. 요가를 하는 시간 만큼은 오롯이 내가 나를 위해 쓸 수 있었다. 아이를 돌보지도, 회사 일을 생각하지도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새벽에 눈을 떠 본 경험은 다른 부분에서도 큰 도움이 됐다. 최근 토익 점수가 필요해져 무려 16년만에 다시 토익 공부를 해 단기간에 고득점을 맞아야 했는데,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보니 공부를 할 짬이 나지 않았다. 밤에 아이를 재우고 공부하자는 결심은 번번히 수포로 돌아갔다.
밤에 공부하는 대신 일찍 알람을 맞춰놓고 새벽에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 두 시간, 두 달만에 원하는 점수를 받았다. 절실해서 했던 일이기도 하고, 억지로 시간을 내기 위해 새벽에 눈을 뜬 덕분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나의 하루는 새벽 4시 30분에 시작된다’의 저자이자 미국 변호사인 김유진 작가는 책에서 새벽을 ‘내가 주도하는 시간’, 나머지 시간을 ‘운명에 맡기는 시간’이라 표현했다. 일찍 일어나 생긴 시간에는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으니 계획한 일을 실천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내가 아무리 미리 계획을 세워도 예상치 못하게 일정이 변경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전히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다. 새벽 공부를 이어간다면 더 큰 발전이 있겠지만(!) 점수를 달성한 후에는 ‘나도 할 수 있구나’하는 뿌듯함을 남기고 그만 두었다. 하지만 가급적 요가는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알람 시간에 맞춰 눈을 뜨기가 힘이 들고, 뻣뻣하고 유연성이 없는 몸도 변함이 없지만 이렇게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다. 나를 위해 보낸 짧은 시간이 하루를, 일주일을 살아내는데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는 것을 알아버려서다.
이미 꽉 채워져버린 버거운 워킹맘의 하루에서 또 무언가를 해내고 싶거나 해내야만 한다면, 그런데 도저히 시간이 없어서 그것을 포기할까 싶다면 고요한 새벽 시간을 한번 이용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부디 내일 아침 알람을 꺼버리지 않기를. 춥다는 핑계로 이불 속에서 조금 더 뒹구는 대신 눈을 번쩍 뜨고 꼭 나를 찾으러 떠나는 길(ㅎㅎ)로 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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