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선이 어디 초선인가? ‘딸랑딸랑 직장인’이지[김영상의 오지랖]
일각 “여야 모두 권력자 홍위병 전락”
국힘초선, 특정 중진 성토가 대표사례
‘김기현 사퇴’ 놓고 눈치보기 민낯 보여
민주당선 진작 ‘이재명 방탄초선’ 뒷말
“정치 아닌 직업하기 때문” 목소리도
“요즘 초선들이 어디 초선인가요? ‘정치’ 아닌 ‘직업’하는 사람들이죠. 여당에서도, 야당에서도 똑같아요. ‘딸랑딸랑’하는 직장인 같아요.”
최근에 만난 중진의원 입에서 나온 여야의 초선의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랬다. 초선들에 대한 실망감이 역력하다. 화도 묻어나온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여당이 됐든 야당이 됐든 초선들 기개가 사라졌단다. 최고 권력자에 입바른 소리도 하고 구태 타파 혁신 목소리도 내면서 당내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줘야 하는데, 도대체 결기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홍위병’ 역할만 한단다. “그러니까 요즘 초선들이 딸랑딸랑만 하는 4년계약직 직장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죠.” 연장계약을 바라는 직장인처럼 4년연장 도장(재공천)에 목을 매는 초선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정치환경이 이렇게 타락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사실 ‘소장파’의 전유물이었던 패기와 기백이 실종됐다는 얘기가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교사가 선생님이 아니라 직장인이 됐다는 말처럼, 정치 역시 직업이 됐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21대 국회 초선의원들의 행보를 보면 그냥 직장인이 아니라 ‘눈치보기 직장인’으로 전락했다는 곱잖은 시각이 뒤따른다. 여당이나 야당을 불문하고 말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사퇴를 둘러싼 최근 국힘 초선의원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뒷말이 많았던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과 뒤이은 김 대표의 ‘대표직 사퇴’ 등으로 여당의 정치지형이 급변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부 초선의 ‘권력 영합’ 기미의 행보에 따가운 눈총이 쏟아진 것이다.
지난 11일 당소속 의원 111명 전원이 모인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국힘 초선의원 10여명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특정인은 부산 5선의 서병수 의원, 부산 3선의 하태경 의원이었다. 둘다 비윤중진으로, 위기의 여당 앞에서의 김 대표 리더십에 회의를 표하며 사퇴를 강하게 압박해온 이다. 초선들은 서, 하 의원을 겨냥해 ‘자살특공대’, ‘진짜X맨’, ‘내부총질’이란 원색적인 단어까지 동원하며 각을 세웠다. “진정 용퇴를 해야 할 의원”이라며 몰아세우기도 했다. 초선들이 똘똘뭉쳐 내세운 깃발은 김 대표에 대한 옹호였다. 나중엔 ‘김기현 수호결사대’였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일각에선 서 의원과 하 의원에 대한 초선들의 불만이 작지 않다고 봤다. 서 의원은 부산이라는 비교적 안정적 텃밭에서 5선 경력을 가진 중진이고, 하 의원은 부산에서 내리 3선을 한 이다. 특히 하 의원은 험지 출마를 선언했는데, 하필 출마하겠다는 곳이 종로여서 과욕을 드러냈다는 뒷말을 낳았다. 이런 두 사람을 향한 초선의원들의 불신은 대단했고, 앞서 ‘두 사람이 오히려 혁신 대상이 아닌가’하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집단공세를 취했다는 것이다.
다른 시각은 초선의원들이 ‘재공천’ 앞에서 일렬대오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 체제 하에서 내년 공천이 유리하다는 판단 속에 ‘김기현 옹호론’ 총대를 자임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장 의원의 불출마, 김 대표의 사퇴 직후엔 정작 깊은 침묵에 빠지면서 당 지형도 ‘행간읽기’에 돌입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초선들 행보는 원외 인사까지 강하게 지적하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일부 초선조차도 완장 차고 날뛸 정도로 당이 망가져버렸다”(홍준표 대구시장), “일부 초선들의 김 대표 홍위병 노릇도 가관”(김태흠 충남지사) 등의 발언이 뒤따랐다. 위기에 빠진 당의 모습에 혁신 목소리를 내긴 커녕 자기 안위에 집착하는 듯한 행태에 대한 쓴소리였다.
이들 초선 대부분은 ‘나경원 연판장’ 당사자들이었다. 지난 1월 국힘 초선의원 48명은 당 대표에 출마하려던 나경원 전 의원을 비판하는 연판장을 돌렸고, 결국 나 전 의원은 불출마를 택했다. 당시 여론조사 상에서는 나 전 의원이 유력했는데, 초선들의 집단반발(?)로 당 대표 출마를 포기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전당대회에선 김기현 대표가 선출됐다. 이를두고 김 대표 쪽을 향한 ‘윤심’을 간파한 초선들이 ‘김기현 옹립’ 성과를 냈다는 시각이 많았다. 이때부터 친윤 초선들은 힘이 세졌고, 두 사람을 향해 ‘제2 나경원 연판장’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흘러나온 것이다. 어쨌든 이들에 초선답지 않게 권력과 지나치게 영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향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런 분위기는 여당만의 일은 아니다. ‘권력에 대한 영합’ 비판에선 민주당 초선의원들도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친(親)이재명계로 당내 초선 강경파 모임인 ‘처럼회’가 그 사례로 거론된다. 처럼회는 최강욱 전 의원이 2020년 검찰의 ‘민주적’ 개혁을 표방하며 검찰개혁 등 권력기관 개혁 문제를 공부하겠다며 출발한 모임이다. 스타트는 어디까지나 공부모임으로 끊었지만, 갈수록 중진 못잖은 민주당 실세 그룹으로 부상했다.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파상적인 대여 공세를 주도했다. 이들이 주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은 야당 내에서도 최대 성과로 꼽히기도 했다. 당내에서도 처럼회 활동을 응원하는 이가 많아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럼회는 그 초심을 잃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 앞에 놓인 여러가지 리스크에 대한 병풍 역할에 과도하게 몰입했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외부(대여공세)엔 거침없이 말하지만, 당내 근본 문제에는 침묵하면서 ‘이재명 방탄’에만 주력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여당 관계자는 “초선모임인 처럼회는 당내 궂은 일을 도맡으며 많은 일을 했고 성과도 냈다”며 “다만 일치된 강경 스타일로 달리다보니 다른 초선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고, 다양한 초선 의견을 수렴하는데는 일종의 장애물이 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잘 나가던’ 이 모임은 최근엔 처럼회 핵심 멤버들이 잇따라 물의를 일으키며 정치권 중심에서 멀어졌고, 그러다보니 막강했던 파워는 예전보다는 못해졌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지금 21대 국회가 저는 진짜 최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그렇고 민주당도 그렇고…. 소신파 의원은 온데간데 없고 무슨 초선들이 홍위병 노릇을 하고 있어요. 무슨 연판장을 해가지고 저격하질 않나. 무슨 저기(민주당)는 방탄해 가지고 처럼회 같은 걸 만들지를 않나. 진짜 ○판…”(천하람 국힘 당협위원장)이라며 싸잡아 비난한 것을 보면 양당 초선에 대한 일부 시각이 이미 곱잖았음을 반영한다.
주목되는 것은 정치권 일각에선 권력 눈치보기 행동을 보이는 초선들 역시 중진 못잖은 혁신 대상이라는 것을 화두로 올렸다는 점이다. 초선들 역시 기득권에 안주하는 세력이 됐는데, 왜 중진만 불출마하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중진들만 왜 개혁 대상이 돼야 하는지 그건 인정할 수 없다며 완장 찬 초선들 역시 불출마 타깃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국회 초선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2020년 총선(21대 국회)에서 당선된 초선의원 비율은 50.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151명)다. 비례위성정당까지 포함한 지금의 야당(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초선의원은 85명, 지금의 여당(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초선의원은 58명이다. 300석 중 과반이 넘는 151석이 초선의 몫으로 돌아갔다. 초선 비율은 18대 국회(44.8%), 19대(49.3%), 20대(42.3%)로, 늘다 줄었다가 21대에서 다시 급증했다. 각 당의 초선 비중이 높아지면서 정가의 긍정기류는 형성됐었다. 이들이 혁신 목소리를 내놓으면서 고착화된 정치구조 타파의 선봉대에 설 것으로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많은 초선이 되레 기득권 세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21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옛날엔 조금 달랐다. 소장파의 기백은 남달랐다. 2000년 남경필 전 경기지사,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정병국 전 장관을 뜻하는 ‘남원정 트리오’가 대표적이다. 16대 국회에서 이들은 ‘미래연대’를 주도했다. 그때는 이회창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 위세가 대단했는데, 이 총재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차떼기 파동’으로 당이 수렁에 빠졌을때, 강력하게 세대교체를 요구하면서 당의 개혁적 방향 전환에 일조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앞서 1990년대 민주당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유인태 전 의원 등이 개혁 소장파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엄청났었는데, 이들의 거침없는 직언에는 DJ조차 혀를 내둘렀다는 등의 스토리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십수년전, 국회 출입때 모 초선의원과 저녁을 함께 한 적 있다. 입이 거칠기로 소문난 의원이었다. 뭔가 일이 틀어졌는지, 사람을 앞에 두고도 계속 통화를 한다. 격한 말도 내뱉고 침 튀기며 씩씩 거린다. 상스러운 말도 수시로 튀어나온다. 상대방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데, 당황한 듯 하다. 통화가 끝나자 물어봤다. “누군데 그래요?”. “우리 대표 아닙니까”. “대표한테 그렇게 통화해도 돼요?”. “뭐 어때요. 난 초선인데…. 대표가 내 말 안듣잖아요. 수 틀리면 받아버리면 되죠. 초선 특권 아닙니까?”
예전 초선은 그랬나 보다. 요즘 초선들보다 최소한 패기는 더 있었다.
김영상 논설실장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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