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30만원 아끼려 창고살이…매출 150억 사장님 된 '순수한 아줌마'

진도(전남)=김성진 기자 2023. 12. 16.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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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밤 없이 돌아다니던 농기계 영업사원..."백 여사 참 대단해"
사업 실패 後 재기...창고 살며 5년만에 빚 청산
농기계 판매하다가 2016년 자체 이륜차 개발·생산...직접 기계 뜯어봐
엔진, 스크린판 등 기계 구조 꿰뚫어 봐...제품 생산 진두지휘
年매출 2년만에 64% '껑충'...수출도 물꼬
백옥희 대풍이브이자동차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을 "순수한 아줌마"라 일컬었다. 기자의 질문을 받는 게 처음이라며 A4 용지 여러장에 큰 글씨로 하려는 말을 빼곡히 적어왔다. 백 대표의 대풍이브이자동차는 매출이 2020년 95억에서 지난해 156억원으로 빠르게 크고, 있다. 지난해는 네팔에 수출 계약도 맺었다./사진=김성진 기자.

대학도 못 나온 여상(여자상업고등학교) 출신 소녀가 이제는 연 매출 150억 중소기업 사장님이다. 백옥희 대풍이브이자동차 대표(59) 이야기다.

지난 11일 진도에서 열린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의 '2023 전국 여성 CEO 경영연수'에서 만난 백 대표는 스스로를 "순수한 아줌마"라고 소개했지만 그의 회사는 2018년 국내 최초로 2인승 승용형 전기이륜차 환경부 시험에 합격하고 제품을 판매해 2019년 환경부장관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표창,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산업포장을 받았다. 지난해는 네팔의 한 전기자동차 업체와 5년 수출 계약을 맺었다. 총계약 금액은 1000만 달러, 한화로 약 130억원이다.

소녀에서 사장님이 됐다고 하니 인생에 성공만 가득했을 것 같지만, 한때 백 대표의 인생은 벼랑으로 몰렸다. 백 대표는 전남 영암에 태어나 회사 경리, 식당 일 등 안 해본 일 없이 살다가 40대에 남편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농산물 판매 사업을 했다. 그런데 사업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업은 고꾸라졌고, 3년 만에 회사를 접어야 했다. 남은 건 빚밖에 없었다.

억척스럽게 살았다는 말 외에 그 이후의 삶을 표현할 길이 없다. 남편과 연고 없는 전남 고흥에 내려간 백 대표는 예전에 해봤던 농기계 영업 일을 했다. 고추 건조기 등을 팔았다. 처음에는 농부들을 만나도 입이 잘 떼지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익숙해졌다고 한다. 많을 때는 하루에 농기계를 8대씩 팔았다.

새벽 네시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일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데 시골은 식당이 밤 9시면 문을 닫았다. 백 대표는 "주점에 가서 '라면 끓여달라'하고 밥을 먹은 적도 있다"고 했다.

돈을 아끼려 창고 생활을 했다. 당시 백 대표에게는 고등학생 딸이 있었다. 백 대표는 딸을 서울에 뒀고 시골에는 남편과 단둘이 내려와 창고 안에 조립식 주택을 짓고 살았다. 시내에 월세가 30만원 방도 있었지만 돈을 아껴야 빚을 갚겠다는 생각에 고사했다. 창고의 임대료는 1년에 150만원이었다.

전남 영광에 대풍이브이자동차 공장. 직원 40명이 전기 이동수단들을 생산한다./사진제공=대풍이브이자동차.

그렇게 남편과 창고에서 8년 살았다. 치열하게 산 덕에 빚은 5년 만에 청산했다. 농기계를 떼어다 팔다가 2010년부터 전기 고추 건조기를 직접 개발해 판매했다. 창고에 살며 사업 이익 10억원을 모아 전남 영광의 산업단지로 이주했다. 지금은 5000평 1공장 옆에 또 다른 5000평 2공장을 지어 가동하고 있다. 1공장은 내수, 2공장은 수출 제품 생산용이다.

처음에는 농기계만 판매하다가 2016년부터는 전기이륜차, 전기삼륜차 등을 직접 개발해 판매했다. 대기 환경 오염으로 미세먼지가 사회적 이슈가 되며 내연기관 자동차에 오토바이도 원인으로 꼽히자 전기 이동수단 시장이 커질 거라 예상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백 대표는 제품을 개발할 때 직접 기계를 뜯어보고 조립했다. 기계의 구조와 설계를 한번도 교육기관에서 배워본 적은 없지만 농기계 영업일을 하면 수리도 해야 해 분해, 재조립쯤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됐다. 백 대표는 "사업을 하며 내가 별의별 걸 다 해봤다"며 "농기계를 팔다 보면 뭐가 컨버터이고 엔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된다"고 했다. 지금도 제품 개발에 백 대표가 관여하고 공정 관리도 백 대표가 직접 한다.

지금은 전기 이동수단이 대풍이브이자동차의 주력 사업이다. 전기 이동수단을 판매하기 전인 2014년에 매출은 13억원이었는데 2020년 95억원, 2021년 135억원, 지난해 156억원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현재 직원은 40여명 있고, 2017년부터 기업 부설 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한다. 국내 특허 8건, 유럽 특허 1건, 미국 특허 1건을 갖고 있다.

재기한 후의 얘기이지만 이제 백 대표는 팬이 많다고 한다. 어쩌다 농기계 영업을 하던 고흥에 돌아가면 사람들이 "백 여사, 참 대단해"라 칭찬한다. 백 대표는 "창고에 살며 열심히, 부지런히 일 한 걸 사람들도 알고 좋게 대해준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여성으로서 창업하고 싶어 하는 기업인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어유, 하지 마세요"라며 "사업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라 했다. 백 대표는 사업을 하며 딸과 원하는 만큼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 "무척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옛날 같지 않게 여성이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지 않느냐"며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원한다면 도전하라. '두드리는 자 문이 열린다. 안 열리면 발로 차버리겠다'는 정신으로 해라. 그러면 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진도(전남)=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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