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로당에선 78세 할머니가 막내랍니다

박광온 기자 2023. 12.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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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인구 비중 2022년 17.4%→2072년 47.7%
경로당도 고령화 추세 영향…80대가 대부분
60~70대 노인, 동네 미용실·목욕탕 모여 담소
"경로당에선 70대 노인도 막내 취급 당해"
[서울=뉴시스] 박광온 기자 =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동네 미용실. 할머니 6명이 둥그렇게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2023.12.15. lighton@newsis.com


[서울=뉴시스]박광온 오정우 기자 =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동네 미용실. 할머니 6명이 둥그렇게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내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지 할머니들은 한 차례 크게 웃으며 무릎을 쳤다.

김모(74) 할머니는 "여기 모여 남편 욕도 하고, 자식·손자 이야기도 한다"며 "보통 한 주에 3~4번은 여기 할머니들이랑 이 미용실에 모여 논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이모(68) 할머니도 "노인네들 어디 갈 데 없으니까 여기로 오는 것"이라며 "요새는 경로당에 워낙 나이 드신 분들이 많고 놀만한 것도 없어서 우리 나이대 사람들은 이런 미용실로 놀러 온다"고 전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2025년 1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고령화는 노인들의 만나 교류하는 사교 공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전통적인 모임 장소인 경로당에는 80대 이상 고령층이 몰린다면, 상대적으로 정정한 60~70대 노인들은 동네 미용실이나 목욕탕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다.

16일 뉴시스 취재 결과, 서울 도심에 있는 경로당 5곳을 이용하는 노인들의 평균 연령은 대체로 80대 초중반에 집중됐다.

전날(15일) 취재진이 찾은 서울 마포구의 한 경로당엔 9명의 할아버지가 모여 카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 중 7명은 80대였고, 2명만 70대였다. 그나마 나이가 가장 어린 분도 78세였다.

80대 박모 할아버지는 "보통 여기 오는 사람들은 80대 초중반이 가장 많고, 그나마 어린 축에 속하는 게 70대 후반 정도다. 90대도 좀 있다"고 말했다.

인근 경로당에도 14명이 모여 있었는데, 이 중 1명이 90대였고 13명이 80대였다. 70대 이하는 없었다. 이 경로당에 있던 김영선(80) 할머니는 "워낙 나이 드신 노인네들이 여기에 많다 보니까 70대가 끼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나이가 80대 초반인데도 막내 취급을 당한다"라며 웃어보였다.

다른 지역 경로당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울 동작구의 한 경로당에서도 20명의 할머니가 모여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80~90대였다. 최고령자는 98세였고, 가장 막내도 76세였다.

[서울=뉴시스] 박광온 기자 =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경로당엔 9명의 할아버지가 모여 카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 중 7명은 80대였고, 2명만 70대였다. 그나마 나이가 가장 어린 분도 78세였다. 2023.12.15 lighton@newsis.com


이는 최근 고령인구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는 세태를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7.4%였던 고령인구 비중은 2025년엔 20%, 2036년 30%, 2050년 4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2072년에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인 1727만명(47.7%)에 이를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전국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898만1133명으로 10년 전인 2012년(576만6729명)보다 55.7% 늘어난 상황이다. 고령인구는 지난해 대비 2030년엔 1.4배(1298만명), 2072년엔 1.9배(1727만명)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80대 이상 초고령층이 주로 모인 경로당에 가기 뭐한 60~70대 노인들은 동네 미용실이나 목욕탕에서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리는 분위기다.

마포구의 한 동네 미용실에선 70대 할머니들 5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 미용실에 있던 70대 박모 할머니는 "워낙 경로당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아서 70대라도 막내 취급을 당하기 일쑤라 섞여들기 힘들기도 하다"라며 "미장원 같은 곳에 가면 우리 나이대 할머니들 천지다"라고 말했다.

또 경로당 내 고령화 추세에 더해, 경로당 증가율이 고령인구 증가율에 한참 못 미치는 점도 60~70대 노인들의 경로당 유입을 막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기존 경로당엔 이미 자리 잡은 노인들이 있어, 섞여 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기 평택시의 한 목욕탕에서 동네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담소를 나눈다는 70대 이모 할머니는 "경로당에 가면 워낙 있는 사람들만 있으니까 쉽게 끼기가 어렵다"라며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모임을 가질 수 있다면 갈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목욕탕에서 모임을 갖는 면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노인여가복지시설은 6만4077개에서 6만9786로 8.9%만 늘어났는데, 같은 기간 고령 인구가 55.7% 늘어난 데 비해선 한참 못 미치는 증가율을 보였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경로당 내 고령화 추세가 더욱 빨라지다 보니 60~70대 노인들은 경로당을 기피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경로당이 사회적 활동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다양한 연령대가 섞일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lighton@newsis.com, frien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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