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학생증'에 속은 죄?…술 팔았다가 벌금 2천만원 낸 업주
"미성년자였던 학생은 훈방되고 저는 벌금 2000만원 물었죠."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한 유명 체인 호프집 사장 20대 김모씨는 올해 초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다가 경찰에 신고당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김씨의 가게에 단골인 A씨가 방문했다. A씨 테이블에는 B씨도 합류했는데 당시 B씨는 신분증 대신 대학교 학생증을 제시했다. 김씨는 B씨의 학생증을 확인한 뒤 술을 줬으나 알고 보니 B씨는 대학교에 일찍 입학한 미성년자였다. B씨의 지인이 김씨 가게에 있던 B씨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이 사실이 밝혀졌다.
현행법상 미성년자에게 술과 담배를 판매할 경우 업주가 제재를 받는다는 점을 악용해 술·담배를 구매하는 미성년자들로 업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미성년자들이 위·변조된 신분증을 활용하거나 무전취식 등을 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업주들도 영업 정지 등 제재를 받는다.
지난 1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16만2700원이 찍힌 영수증 사진이 올라왔다. 영수증에는 하이볼과 소주, 맥주 등 여러 종류의 주류가 찍혀 있었다. 게시물을 올린 누리꾼은 한 장의 사진을 더 게재했는데 영수증 뒤편에 "저희 미성년자예요. 신분증 확인 안 하셨어요. 신고하면 영업 정지인데 그냥 갈게요"라는 메모가 적혀 있어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현행법에 따르면 식품접객업자는 청소년에게 술을 판매할 수 없다. 1차로 위반할 경우 최소 2개월 영업 정지를 당하고 2차 위반 시에는 3개월 영업 정지당한다. 3번째로 적발되는 경우 영업허가 취소나 영업소 폐쇄 행정 처분받게 된다.
담배도 마찬가지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한 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업주가 아닌 아르바이트생이 판매하더라도 처벌받는다. 서울 종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C씨는 "요즘엔 업주만 책임지는 게 아니라 판매자인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책임을 지게 돼 있다"며 "아르바이트생이 대부분 대학생인데 그 아이들이 돈이 어디 있겠냐. 아르바이트생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주들은 미성년자들이 위조된 신분증을 사용하거나 단체로 방문할 경우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대구 달서구의 한 대학가 앞에서 3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장 모씨는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사진은 실물과 다른 경우가 많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꽤 있다"며 "작정하고 속이면 업주들은 속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미성년자들이 신분증을 위·변조해 술과 담배를 구매할 경우 면책 규정이 적용돼 업주가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법이 일부 개정됐지만 CCTV(폐쇄회로TV) 등 증거자료를 제출해야 해 면책 적용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한국외식업중앙회와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등은 미성년 구매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계상혁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장은 "청소년보호법은 실질적으로 청소년방임법"이라며 "미성년자가 고의로 잘못을 저지른 경우 업주만 처벌받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큰 업소의 경우 직원들이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할 수 있지만 영세 업장의 경우에는 쉽지 않다"며 "미성년 구매자들 역시 책임을 지도록 법이 강화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제처는 업주들의 면책 특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령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법제처 관계자는 "만 나이 통일법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관련 규정을 정비하면서 사업주 부담 완화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며 "지금은 업종마다 다른 면책 규정이 적용되고 있어 여러 업종이 동일한 면책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업주가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했을 때 따르지 않을 경우 업소 출입을 막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업주의 부담을 낮춰주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이지현 기자 jihyunn@mt.co.kr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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