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127년 전 파리 오페라 ‘파우스트’ 리뷰 쓴 윤치호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3. 12. 16.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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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속 모던 경성]1896년 파리 가르니에 극장서 관람, ‘과학과 예술의 접목이 만든 경이’에 감탄
윤치호는 1896년 11월13일 저녁 파리 가르니에극장에서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관람했다. 그는 '과학과 예술이 만들어낸 경이'라며 감탄했다.

‘과학과 예술의 접목으로 만들어낸 경이로움’.

좌옹 윤치호(1865~1945)는 프랑스 작곡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보고 이렇게 썼다. 지금부터 127년전, 1896년11월13일 저녁 8시 파리 가르니에 극장(Palais Garnier)을 찾았다. 윤치호는 그해 5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니콜라이2세 대관식에 특사 민영환을 수행한 뒤, 파리로 건너왔던 참이었다.

윤치호는 먼저 이 극장의 화려함에 압도당한 것같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극장 가운데 하나라는 그 극장은 희귀한 대리석으로 조성된 매우 훌륭한 건물이었다. 146만 파운드를 들여 지었는데 외부는 당당해 보이고 내부는 화려하다. 거울처럼 빛나는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기둥, 네군데에 알제리 양식의 손잡이가 있는 웅장한 계단. 기하학적 도형과 기호로 된 우아한 장식, 여러 가지 색채에다 총체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황금빛과 자주색깔을 풍부하게 드리운 이 모든 것은 환희와 함께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국역 윤치호 영문일기 3, 297~298쪽)

1890년 무렵의 파리 가르니에 극장. 1875년 개관한 이 극장은 지금도 파리 오페라발레단 전용극장으로 활용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발상지이기도 하다. /퍼블릭 도메인

◇'노쇠한 파우스트 박사의 모험’

윤치호는 그날 일기에 오페라 ‘파우스트’ 줄거리를 요약했다. ‘노쇠해 향락을 누릴 수 없게 되고 삶에 지친 파우스트 박사는 자살을 감행하는 비극으로 치달았다. 악마 메피스토펠레는 그에게 다가와서 젊음과 젊음의 모든 기쁨을 제안하는데 그 조건은 박사가 그에게 지하세계에서 자신에게 봉사하라는 것이었다. 이 노인은 주저했지만 아름다운 마가렛의 모습과 그녀와 기쁨을 누릴 생각에 악마의 편을 들어주었다. 계약은 서명되었고, 파우스트는 젊음과 활력이 충만하게 되었다. 악마는 그를 도와 열정의 대상인 마가렛을 얻도록 해준다. 그녀의 오빠인 발렌틴은 그 유혹자와 결투하지만 살해당한다. 그녀는 유아 살해로 감옥에 내던져진다. 악마와 파우스트는 그녀를 감옥에서 빠져 나오도록 하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죄를 후회하면서 신의 용서를 받고 죽는다. 박사는? 악마가 그를 거두어갔다.’

윤치호의 설명은 요즘의 오페라 해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르니에 극장 내부 계단. 화려한 장식과 조명으로 관람객들의 사진 촬영 명소이다. 윤치호는 가르니에 극장의 화려한 인테리어에 상당히 놀랐던 모양이다. /위키피디아

◇무대에 압도당한 윤치호

윤치호에게 오페라 아리아나 오케스트라 연주는 소음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무대에 더 관심을 쏟았다. ‘나는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지만 무대의 장면 설정은 매우 훌륭했다. 이 무대는 조용한 밤의 어두움에 눈쌀을 찌푸리며 지금 막 산 너머로 사라져가는 태양의 애무를 받아 붉게 물든 라일락과 장미로 장식된 정원이다. 이제 활기에 넘친 거리는 돛단배가 군데군데 떠있는 강을 따라 펼쳐져 있고, 교회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고요하다. 대궁전은 압도하는 듯 웅장한 장면을 보이고 있고, 지금 천국의 계곡은 석양의 부드러움과 아침 햇살의 신선함, 그리고 정오의 찬란함이 어울려 조화를 이룬 빛 아래서 미소를 짓는 듯하다.’ 그는 ‘단 한번의 연출로 보여준 과학과 예술의 경이로움이라니!’라며 감탄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발상지

1875년 개관한 가르니에 극장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원작인 가스통 러루의 1910년 작(作) 동명 소설로도 유명하다. 마침 윤치호가 방문하기 직전인 1896년 5월20일 극장 천장의 대형 샹들리에가 추락해 직원 1명이 숨졌다. 러루는 샹들리에 추락 사건을 소재삼아 ‘오페라의 유령’을 썼다. 1979석 극장 가르니에는 바스티유 오페라극장과 함께 파리 국립오페라발레단의 양대 공연장으로 쓰인다. 규모가 작은 오페라나 발레 작품이 많이 오른다.

◇볼쇼이극장 글린카 오페라 ‘황제를 위한 삶’

사실 윤치호는 6개월 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오페라를 본 적 있다. 1896년 5월29일 오후 8시였다.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사절로 간 역관 김득련과 함께 궁내부 초청을 받았다. 대표격인 특사 민영환은 빠졌는데, 명성황후 장례 기간이라 공연을 볼 수없다며 거절했다. 윤치호와 김득련은 볼쇼이 극장에 들어간 최초의 한국인이었을 것이다. 오페라와 발레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이었다. ‘음악은 아주 훌륭했다. 러시아 역사의 한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나서 훌륭한 발레가 이어졌다. 발레는 아름답고 우아한 청춘의 향연이었다. 그러나 귀여운 10대 소녀들이 나체에 가까운 모습으로 춤췄다.’(국역 윤치호 영문일기 3, 183쪽)

두 사람이 본 작품은 글린카 오페라 ‘황제를 위한 삶’이었다. 1836년 11월27일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가 참석한 가운데 볼쇼이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17세기 초 폴란드의 침략에 맞서 싸운 농부 이반 수사닌을 주인공으로 한 국민 오페라다. 이어진 발레는 드리고의 ‘진주’였다. 드리고는 마린스키 극장 발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겸 작곡자였다. 윤치호에게 발레복 차림의 여성 무용수 공연은 망측한 일이었을 것이다.

1883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 13년 뒤 윤치호, 김득련이 글린카 오페라 '황제를 위한 삶'을 관람했을 때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퍼블릭 도메인

◇'둥근 집에 수만명을 수용할 수있어…'

김득련은 한시(漢詩)로 된 감상문을 남겼다. ‘둥근 집에 수만 명을 수용할 수있어/황제가 친히 임하여 새벽까지 연극을 즐기네/옛일을 공연하는 데 마치 참모습같아/순식간에 변하고 홀리니 다채롭고도 새롭구나’ 두 사람은 다음날인 5월30일 오후 모스크바 궁전 근처 야외 무대에서 열린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도 관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치호는 일기에 남기진 않았다.

민영환은 명성황후 장례기간이라며 극장 구경을 거절했지만, 수행원들은 관람하도록 허락했다. 민영환 여행기 ‘해천추범’에도 이날 오페라, 발레 공연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온다. 서구 근대 문명을 관찰하는 기회로 생각했을 것이다.

윤치호가 글린카와 구노 오페라를 관람한 51년 후, 조선 땅에서 첫 전막 오페라 공연이 이뤄졌다. 1937년 5월26~27일 경성 부민관에서 올린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이었다. 일본인 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가 초초상을, 조선인 테너 김영길과 조영은이 남자 상대역 핀커튼을 불렀다. 하지만 연출, 지휘는 물론 오케스트라(동경중앙교향악단)와 합창단(미우라 다마키 합창단)까지 일본 프로덕션이었다. 한국인에 의한 전막 오페라는 해방을 기다려야했다. 1948년 1월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10회 연속으로 공연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였다. ‘이 땅에 오페라 시대의 문을 열어놓은 역사적 사건’(음악평론가 한상우)이었다.

◇참고자료

김영수, 100년 전의 세계 일주, EBS북스, 2020

국사편찬위원회 편, 국역 윤치호 영문일기 3, 2015

이유선, 한국양악백년사, 음악춘추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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