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흑역사, 세탁해선 안 된다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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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1997년 5월 남총련(광주ㆍ전남대학총학생회연합) 간부들은 당시 전남대 학생 행세를 하던 25세의 이종권씨를 경찰 프락치로 의심해 이를 자백하라며 쇠 파이프 등으로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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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민주유공자법도 강행 처리
국민 공감대 넓히는 게 우선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997년 5월 남총련(광주ㆍ전남대학총학생회연합) 간부들은 당시 전남대 학생 행세를 하던 25세의 이종권씨를 경찰 프락치로 의심해 이를 자백하라며 쇠 파이프 등으로 때렸다. 구타 도중 강제로 먹인 소화제가 기도를 막아 이씨는 질식사했다. 그를 숨지게 한 이들은 시신을 버린 뒤 “취객이 쓰러져 있다”며 허위신고까지 했다.
이씨 치사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출범식 장소였던 한양대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한총련 간부들이 캠퍼스를 배회하던 선반기능공 이석씨를 경찰 프락치로 몰아 구타해 숨지게 했다. 군사독재정권이 자행하던 고문을 운동권 학생들이 그대로 답습해 사람 목숨까지 앗아가고 죄의식 없이 이를 은폐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나마 1984년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에선 피해자들이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프락치 의심자를 구타하고 고문하는 데 대해 운동권 내에서 어떤 반성도 없었던 셈이다.
학생 운동권의 흑역사를 새삼 들춘 것은 14일 전해진 두 가지 소식 때문이다. 이종권씨 치사 사건에 가담한 이들 중 한 명이 당시 조선대 학생회장이자 남총련 의장이던 정의찬씨다. 상해치사죄로 5년의 실형을 산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직선거후보자 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아 논란에 휩싸였다.
같은 날 민주당은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했다. 4ㆍ19 혁명과 5ㆍ18 민주화 운동 외에 다른 시기 민주화에 헌신했던 이들도 유공자로 예우하는 법으로 1987년 6월 항쟁의 상징인 박종철ㆍ이한열 열사 등이 대표적 사례라는 게 민주당의 설명이다.
민주화는 산업화와 더불어 우리 현대사의 위대하고 숭고한 성취다. 이에 헌신했던 이들을 예우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민주유공자법이 오랫동안 논란을 끌었던 것은 민주화 인사만이 아니라, 반국가적이고 폭력적인 세력들이 민주유공자로 신분 세탁해 혜택을 누리는 길을 여는 게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었다. 실제 기존의 민주화 보상법에 따라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이들 중에는 반국가단체 사건이나 경찰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의대 사건 관련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단이 공개되지 않은 탓에 깜깜이 또는 끼리끼리 심사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았다. 민주당이 논란이 불거진 뒤 철회하긴 했지만 이종권씨 치사 사건 가담자를 내년 총선 후보자로 적격 판정한 것을 보면 앞으로 고문 치사 사건에 연루된 한총련 인사들이 민주유공자로 포장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민주유공자법의 취지는 환영하지만 이 같은 의구심을 걸러내지 못한다면 민주유공자의 의미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이 법은 그 이름에 걸맞게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초당파적으로 추진하는 게 마땅하다. 늦게 가더라도 이런저런 미심쩍은 대목을 해소해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는 게 우선이다.
민주당이 이 법을 끝내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다면 민주화의 상징성이 국민 통합이 아니라 국민 분열을 낳는 결과로 이어질 게 뻔하다. 보편적 유산으로 계승해야 할 민주화의 상징 자산이 당파적으로 활용돼 결국 그 가치마저 소진될 수 있다. 민주유공자법을 둘러싼 논란은 민주당의 이런 태도에서 비롯된 측면도 크다. 정말 민주유공자를 예우하고자 한다면, 이 법 자체가 국민들에게 예우받도록 해야 한다.
송용창 뉴스1부문장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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