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먹방” 말하는 세계인...“X라 맛있다” 비속어도 따라한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프랑스 프로 축구단 파리 생제르맹(PSG)의 홈구장인 파르크 데 프랭스(Parc Des Princes). PSG와 낭트의 경기가 시작되자, 그라운드를 빙 둘러싼 광고판에 ‘안녕! 파리바게뜨’라는 한글 문구가 LED 불빛으로 떴다. 국내 제빵 브랜드 파리바게뜨가 PSG 홈경기에 한글 광고를 내보낸 것이다. 이날 경기장을 메운 관람객은 약 4만여 명. 해당 경기는 전 세계 72개 채널에서 생중계됐다. 또 지난 3일엔 ‘하키미’ ‘음바페’ ‘뎀벨레’ ‘솔레르’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유한 PSG 구단은 르아브르와의 원정 경기 때 한글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혀 내보냈다. SPC와 PSG 구단이 한글 마케팅에 나선 것은 비단 이 팀에 한국 선수 이강인이 있어서가 아니다. PSG 구단 관계자는 “이강인 선수 영입 후 늘어난 한국 팬을 위한 것도 있지만, 한국 이외 글로벌 팬들도 더 이상 한국어를 낯설어하지 않는다”며 “한글 이름 유니폼에 대해 프랑스 팬 사이에서 ‘재미있고 색다르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K팝을 앞세운 한류(韓流) 문화와 한국 기업 제품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덩달아 한글이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안녕’ ‘오빠’ ‘대박’ 같은 우리말을 이제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 동남아는 물론이고 미국·유럽·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까지 자연스럽게 말하고 쓴다. 구찌·루이비통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도 한글 자체를 제품 디자인에 활용하고 있다. 한글이 이제 어느 곳에서나 자연스럽게 쓰이는 ‘K알파벳’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돌을 추종하는 일부 극성 팬만 한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소셜미디어 발달은 한글의 글로벌 확산 속도에 불을 붙였다. 2021년 한류 콘텐츠와 관련해서 작성된 X(옛 트위터) 콘텐츠만 78억건이다. K팝, K드라마 팬들이 “오빠 멋져” “언니 이뻐” 같은 말을 한글로 직접 덧붙여 글을 쓰고 댓글을 달았다. 팬들끼리도 “대박” “헐” 정도는 한글로 주고 받는 것은 일상이 됐다.
이용자가 5억명에 달하는 언어 학습 앱 ‘듀오링고’에 따르면 한국어는 전 세계에서 다섯째로 인기가 많은 외국어다. 15일 구글트렌드에 따르면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이 구글에서 한글로 검색하는 총량은 최근 5년 동안 3배가량 늘어났다.
요즘 유럽에서 한글 간판이나 한글 메뉴판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영국 쇼디치 골목에 있는 퓨전 한식당 ‘온 더 밥’. 메뉴판에 떡볶이, 군만두, 김말이 같은 이름은 모두 한글로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현지 외국인이 읽고 발음할 수 있도록 ‘Toppoki(토포키)’ ‘Kunmandu(쿤만두)’ ‘Gimmari(김마리)’처럼 한글 발음을 그대로 할 수 있는 알파벳 표기를 붙여 놓았다. ‘온 더 밥’의 이선정 대표는 “예전엔 외국인이 음식을 이해할 수 있게 떡을 ‘라이스 케이크’, 만두를 ‘덤플링’이라고 썼다”며 “하지만 이젠 외국 손님들이 한글 그대로 이름을 알고 싶어하고, 어지간한 메뉴는 풀어서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 알고 온다”고 말했다.
◇'덤플링’ 대신 ‘만두’… “스스로 원해서 배우는 외국어 된 한국어”
한글은 예전엔 외국인에겐 넘기 힘든 언어 장벽이었다. 어순과 표기법이 알파벳과는 완전히 다른 데다, 오로지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한국에 이주하길 원하거나 삼성, LG, 현대 같은 우리 대기업에 취업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흐름을 바꾼 것은 한국의 대중문화다.
2010년대 들어 K팝이 유행하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가사를 이해하려는 일부 팬이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뒤로 한국의 영화와 음식, 기업 제품까지 글로벌 무대에서 인기를 끌자, 전 세계 곳곳에서 한국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한글을 익히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한국어·언어학과 조지은 교수는 “한글은 이제 전 세계인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해서(self-motivated) 배우는 언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도 해외 마케팅에 한글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달 말 영국 런던 중심가 쇼디치에서 열렸던 CJ제일제당의 비비고 팝업스토어. 냉동 김밥과 김치 스프링롤 등을 팔았다. 점심 시간이면 런던 현지 소비자 200~300여 명이 몰려 200㎡ 남짓한 매장을 꽉 채운다. 매장 벽면에 걸린 포스터엔 ‘주먹밥’ ‘만두’ ‘치맥’ 등 한글이 적혀 있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이젠 간단한 제품 이름은 영어 대신 한글로 표기할 때 오히려 소비자 반응도 더 좋다”고 했다.
◇'큰 손님’ 한글 애호가
해외 수출용 제품에 한글을 그대로 사용하는 국내 기업들도 늘고 있다. 농심은 신라면·너구리·짜파게티 같은 내수 주력 제품의 한글 이름을 해외에도 그대로 적어 수출한다. 농심 관계자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음하기 어렵다는 불평을 듣기도 했지만 최근엔 한국 제품이란 이미지를 알리면 매출이 더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주류 업체 하이트진로 역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소주를 수출하면서 ‘참이슬’ 같은 제품의 한글명을 그대로 둔 채 ‘Jinro(진로)’를 병기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개X맛” “진차우마이”…한국말 인기에 비속어까지 따라해
한류 문화가 빠르게 인기를 얻으면서 일본과 동남아시아 일부 나라의 10~20대 사이에선 우리말 비속어와 신조어를 따라 하는 유행마저 생겨나고 있다. 유튜브로 한국말을 배우다 보니 “X라 맛있다” 같은 말을 쓰는 이들도 있다.
일본 10~20대 사이에선 일본어와 한국어를 결합한 믹스어가 유행이다. 한국어 ‘진짜’와 맛있다는 뜻의 일본어 ‘우마이(うまい)’를 합친 ‘진차우마이(チンチャうまい)’가 대표적이다. 한국 음식이나 문화를 주제로 콘텐츠를 만드는 일본인 유튜버들의 영상에는 이런 표현이 수시로 등장한다. ‘꾸미지 않은 듯 꾸몄다’는 뜻의 ‘꾸안꾸’ 등이다. 정보 전달 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한국의 신조어가 일본 MZ세대 사이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쓰이고 있다.
정제되지 못한 우리말까지 여과 없이 사용되면서 ‘황당한 사건’도 생겨났다. 지난 10월 일본 식품 제조사 덴마사마쓰시타는 한국인 인플루언서와 함께 포장 김치를 출시했는데,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개X맛’이란 표현을 제품명에 넣었다. 비속어 논란이 확산하자, 제조사 측은 사과문을 내고 제품명까지 변경하기도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법원, 사적제재 논란 부른 ‘음주운전 헌터’ 유튜버 구속영장 기각
- 예금 보호 한도 ’5000만→1억' 상향… 여야 6개 민생법안 처리 합의
- 경찰,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수사 착수... 서울청 반부패수사대 배당
- ‘여성 폭행’ 황철순, 항소심서 징역 9개월로 감형... 이유는?
- 문다혜 제주서 불법 숙박업 인정...이번주 불구속 송치
- 오타니와 저지, MVP에 앞서 실버슬러거상 받았다
- Experience essence of late autumn on Seongmodo’s stunning trail
-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이사회 의장직 내려놓을 것”
- 동료 여경에게 ‘음란 사진’ 보낸 스토킹 경찰관 징역 2년6개월
- “물병에 소변보고 스태프에게 치우라고…” 드웨인 존슨, 갑질 논란에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