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민주당은 어떻게 ‘정치인 한동훈’을 키웠나
票만 따지는
’여의도 사투리’가
법치와 상식을 말하는
보편성의 화법을
당해낼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일선 기자 시절부터 대기업들이 욕하는 소리를 하도 들어 ‘한동훈 검사’는 오랫동안 귀에 익숙한 이름이었다. 재계 사람들은 그가 너무 융통성 없고 과격하게 수사하는 바람에 기업인을 다 죽인다며 치를 떨곤 했다. 그는 재계에서 ‘저승사자’로 불렸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검사로서 그의 자세를 말해주는 증표이기도 했다. 그는 최태원 SK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현직 국세청장 등을 구속시키고 한나라당 차떼기 스캔들 같은 굵직한 사건을 수사했다. 비판도 많았지만 외압에 굴하지 않는 원칙주의 강골 이미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굳어졌다.
‘검사 한동훈’을 키운 것은 자기 실력이겠지만 그에게 전국적 지명도를 안겨준 것은 문재인 정권이었다. 조국 수사를 세게 했다는 이유로 ‘유배지’라는 법무연수원으로 쫓겨가고 세 번의 좌천 인사를 당했다. 채널A 사건을 공모했다는 조작된 혐의까지 받아 형사 피의자에 오르기도 했다. 문 정권의 탄압이 거세질수록 한동훈이란 이름도 유명해졌다. 그의 팬 클럽 활동이 본격화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주도한 전방위 탄압이 그를 윤석열 총장에 버금가는 저항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주었다.
정권이 바뀌어 그는 법무장관에 기용됐고 권력의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됐다. 그가 언제부터 정치를 꿈꾸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본인이 원했든 아니든 그를 정치의 영역으로 밀어낸 일등 공신이 민주당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 장관의 권력 의지도 남다르겠지만, 그에게 일개 장관의 위상을 넘는 체급을 만들어 주고, 정치 공력을 입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계기를 제공한 것이 민주당이다. 싹수를 자르려다 호랑이로 키운 격이었다.
민주당의 자살골 퍼레이드는 법무장관 임명 직후부터 시작됐다. 인사 청문회에서 한 장관 딸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딸의 ‘이모’가 논문 공저자에 올랐고, 기업 명의 노트북을 기증한 ‘한**’이 딸 이름이라고 문제 삼았다. 그러나 ‘이모’는 친척 아닌 ‘이모(某)’ 교수였고,’한**’은 ‘한국3M’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동훈도 자녀 입시 서류를 위조한 조국과 비슷할 것이란 민주당의 착각이 코미디 같은 참사를 낳았다. 민주당 헛발질에 한 장관은 가만히 앉아 자녀 문제에 반칙이 없음을 어필한 셈이 됐다.
음모론 제조기 김의겸 의원은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다. 한 장관이 윤 대통령, 김앤장 변호사들과 함께 첼로 반주로 노래 부르며 심야 술파티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였지만 덕분에 술자리엔 얼씬도 않는다는 한 장관의 철저한 자기 관리 스타일이 세간에 알려졌다. 그 후로도 민주당은 국회 상임위 등에서 틈만 나면 한 장관을 몰아붙였지만 한 번도 재미 본 적이 없다. 기본 팩트부터 밀리는 데다 논리 정연한 한 장관의 반격에 판판이 깨지곤 했다.
민주당은 해외 출장비 문제까지 꺼내 들었지만 이 역시 자승자박으로 돌아왔다. 한 장관 출장비가 전임 박범계 장관의 절반에도 못 미친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박 장관은 6박 8일 미국 출장 때 1억3100만원을 썼지만, 한 장관이 하루 더 긴 7박 9일 일정에 지출한 비용은 4840만원이었다. 항공편부터 박 장관은 일등석을, 한 장관은 비즈니스석을 탔다.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도리어 미담만 만들어주고 말았다.
급기야 86 운동권 출신 송영길 전 대표가 “어린 놈” “건방진 놈” 운운하며 인신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논리로 못 당하자 감정이 폭발한 것인데, 정작 치명상 입은 것은 송 전 대표 쪽이었다. 그가 운동권식 권위주의를 드러내며 꼰대 짓 하는 바람에 한 장관의 젊고 참신함이 더욱 부각되는 결과가 됐다.
민주당이 헛발질할 때마다 한 장관의 인기가 올라갔다. 지난주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한 장관은 16%를 기록해 이재명 대표의 19%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1년 반도 안 돼 강력한 대선급 주자로 부상했다, 국민의힘 안에선 ’한동훈 역할론’이 고조되고 있다. 만일 한 장관이 여권의 중심 주자가 된다면 이 대표와 극적인 대립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 각종 비리·스캔들에 연루된 ‘형사 피의자’와 불법을 추궁하는 ‘사법 소추자(訴追者)’가 대결하는 구도는 민주당으로서 달갑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왜 민주당은 한동훈을 당하지 못할까. 이렇게까지 판판이 깨지는 데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터인데, 한 장관 본인 말에 해답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민주당의 화법을 ‘여의도 사투리’에 비유하며 자신은 ‘5000만 국민의 화법’을 쓰겠다고 했다. 자기 진영만 쳐다보며 오로지 표에 도움 되느냐만 따지는 선거 공학적 논리가 법치와 상식,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보편성의 화법을 이길 수 없음은 당연하다. 문 정권이 본의 아니게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었듯 ‘여의도 논리’에 갇힌 거대 야당의 폭주가 또 어떤 역설적 드라마를 펼쳐낼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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