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차리랴 청소하랴… 푸바오와 함께라 행복했다

용인/이혜운 기자 2023. 12.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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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에버랜드 판다 사육사
아르바이트 해보니
지난 7일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 판다 월드에서 아빠 판다 러바오가 대나무를 맛있게 먹고 있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러바오(아빠 판다)가 깨어났습니다. 점심 준비해 주세요.”

지난 7일 오후 1시, 무전기로 현장 보고가 들어왔다. 판다는 하루의 반을 먹고 잔다. 자고 일어났을 때는 공복으로 배고픔이 극대화되는 시점. 대나무 10kg을 안고 강철원 사육사를 따라나섰다.

이곳은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판다 월드. 매일 8000여 명이 판다를 보러 오기 때문에, 5분 단위로 관람 시간을 제한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5분 안에 판다를 내실로 옮기고, 대나무와 워토우(옥수수 가루와 콩가루 등을 계란과 버무려 구워낸 빵)를 놓고, 배설물을 치워야 한다는 뜻이다. 방사장 양쪽에 내실이 있다. 먼저 건너편 내실을 열었다. 러바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리 쪽 내실을 열었더니 그곳으로 들어왔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러바오를 마주했다. 두툼한 목과 어깨, 내 얼굴만 한 손에 날카로운 발톱이 움직인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판다는 식육목(食肉目) 곰과의 맹수다.

◇5분 안에 임무 완수

감상할 시간이 없다. 방사장에 들어가 대나무를 놓고, 워토우를 잎에 발랐다. 고양이에게 사료를 줄 때 간식을 섞는 것과 비슷했다. 배설물 청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러바오는 물에만 똥을 눈다. 푸바오는 땅에 눈다. 어릴수록 똥을 숨기고, 나이가 들수록 당당히 내놓는다고 한다.

푸바오/이혜운 기자

방사장 내 연못에는 쑥떡 같은 똥이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냄새도 미세한 녹차 향. 강 사육사는 “판다는 대나무만 주로 먹고 소화도 거의 못 시키기 때문에 똥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주변을 정리하고 퇴장한 후, 다시 러바오를 내실에서 방사장으로 이동시켰다. 판다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하루에 1~1.5km밖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먹이를 본 러바오는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에버랜드 푸바오,러바오 사육사 체험

등을 의자에 기대고 앉아 워토우부터 배에 가루를 흘려가며 먹는다. 그다음엔 대나무 줄기를 잡고 마음에 드는 것만 고른 후 이빨로 잎만 모아 한 번에 씹어 먹는다. 판다에게는 대나무를 쉽게 잡을 수 있도록 근육으로 된 가짜 엄지가 있다. 이빨은 칼날 모양이라 질긴 대나무잎도 한 번에 절단한다. 단소 모양의 줄기는 수수깡처럼 부숴 먹는다. 죽순도 좋아하지만, 지금은 철이 아니다. 이렇게 먹는 모습을 3분간 바라본 것이 이날 판다 사육사 아르바이트 체험을 하며 가장 오랫동안 판다를 마주한 순간이다.

이 대나무는 이날 판다 사육사 아르바이트 체험을 한 기자(오른쪽 사진 왼쪽)가 강철원(오른쪽) 사육사와 함께 깨끗이 씻고 다듬은 것이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2평짜리 대나무 저장실

대부분의 시간은 은색 철문 안, 2평 남짓한 대나무 저장실에서 보냈다. 판다는 ‘대나무를 먹는 곰’이라는 뜻. 한 마리당 하루에 50kg씩 먹는다. 판다 월드에는 아빠 ‘러바오’와 엄마 ‘아이바오’, 국내 최초로 자연분만으로 태어나 사랑받는 큰딸 ‘푸바오’, 쌍둥이 ‘루이바오’와 ‘후이바오’ 등 다섯 식구와 친척인 레서판다가 있다.

에버랜드 푸바오,러바오 사육사 체험

이곳 판다들이 먹는 대나무는 경남 하동에서 올라온다. 어떤 이물질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 호스를 살짝 구부려 센 물줄기로 씻는다. 그다음에는 분류를 한다. 판다들이 좋아하는 대나무는 1~2년산. 줄기가 반질반질 윤이 난다. 보랏빛을 띠는 설죽은 가장 좋아하는 특식이다. 강 사육사는 “설죽잎을 먹으면 단맛이 난다”고 했다. 살짝 씹어 봤는데 쓴맛만 가득했다. 원래 육식동물이던 판다는 기후변화 등으로 사냥이 어려워지고 주변 육식동물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대나무를 먹게 됐다고 한다.

에버랜드 푸바오,러바오 사육사 체험

판다는 대나무 외에도 당근과 사과, 그리고 곡물로 만든 빵 ‘워토우‘를 먹는다. 대나무만으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함이다. 살짝 올라오는 고소한 인절미 향. 어떤 맛일지 궁금했지만 판다를 위해 참았다.

◇아침엔 건강검진

사육사의 하루는 오전 8시에 시작된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신발을 소독하고 사육사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초록색 셔츠와 갈색 바지, 진회색 조끼. 원래는 갈색 점퍼도 주어지지만 입을 일은 없다. 판다 월드는 판다가 가장 좋아하는 영상 25도에 맞춰져 따뜻하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야 해 오히려 땀이 날 정도다. 판다는 장이 짧고 굵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먹고 싸고 잔다. 하루에 한 마리당 20kg을 배설한다. 옆에서 나는 끊임없이 대나무를 씻고 나르고 똥을 치운다.

에버랜드 푸바오,러바오 사육사 체험

그러니 지금부터 하는 말은 강 사육사의 일과이다. 그는 오전 8시에 출근해 판다 가족과 인사하며 변과 털 상태를 체크한다. 오전 8시 30분부터는 건강검진 시간이다. 구강 상태를 체크한 후 영양제를 먹이고, 체온을 재고, 채혈을 한다. 함께 운동하는 ‘헬스 트레이닝’ 시간도 갖는다. 그다음에는 방사장에 대나무 등 먹이를 세팅하고, 러바오와 푸바오를 내실에서 방사장으로 옮긴다. 관람객을 맞이해야 하는 ‘출근’이다.

그래픽=송윤혜

◇쌍둥이 육아 일기

이제 강 사육사는 엄마 아이바오와 쌍둥이가 있는 내실로 들어간다. 판다를 위한 산후조리원이다. 쌍둥이를 위한 분유를 타고, 아이바오를 위한 먹이를 챙긴다. 아이바오가 대나무를 먹는 동안 강 사육사는 쌍둥이와 놀아준다. 백일이 지나 기어다니기 시작하는 쌍둥이, 위험한 시기는 지났지만 정신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손을 많이 탄다.

쌍둥이와 푸바오의 차이라면, 외동이었던 푸바오는 엄마 껌딱지로 아이바오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쌍둥이는 엄마가 밥 먹는 동안 자기들끼리 논다. 그러는 동안 강 사육사는 주변을 청소한다. 이렇게 산모와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벌써 오후 1시. 러바오와 푸바오의 점심을 챙겨줘야 할 시간이다.

에버랜드 푸바오,러바오 사육사 체험

현재 판다 월드 사육사는 세 명이다. 3교대로 점심을 먹고, 판다 월드를 청소하고, 방사장을 정비하고, 관람객 안전 관리를 한다. 판다들은 눈[雪]을 좋아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가끔 제설기로 눈을 뿌려준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어두워지는 오후 5시 20분. 판다들이 내실로 들어갈 시간이다. 사람 손에 자라 사람을 좋아하는 푸바오는 ‘퇴근’을 싫어한다. 하지만 안전상 어쩔 수 없다. 내실로 들여보내고, 방사장을 청소한다. 판다들은 밤 11시와 새벽 2시에 야식을 먹기 때문에, 대나무 야식을 미리 장만해 놓는다. 판다들은 야식을 포함해 하루 다섯 끼를 먹는다.

◇기러기 아빠 러바오

판다 월드에 종일 있었지만, 판다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대나무와 강 사육사의 뒤통수. 그나마 푸바오보다 러바오를 더 많이 봤다. 흙이 묻어 갈색 털을 가진 것이 푸바오, 새하얀 것이 러바오다. 직원들은 “아빠 러바오에게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고 했다. 엄마는 임신하고 출산을 한 후 아이들과 18~24개월 함께 지내지만, 아빠는 자식의 얼굴조차 볼 수 없다. 판다는 독립적인 개체로 아빠는 육아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푸바오,러바오 사육사 체험

이렇게 부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지만, 푸바오는 영락없는 러바오 딸이다. 누워서 밥 먹는 습관, 납작하고 귀여운 코, 사람을 좋아하는 외향적 성격까지. 러바오도 아빠가 된 걸 아는 듯했다고 한다. 어릴 때는 장난기도 많고 놀아달라고 칭얼거리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태어난 후엔 묵묵히 방사장 중앙으로 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가족을 위해 멀리서 일하는 ‘기러기 아빠’처럼.

에버랜드 푸바오,러바오 사육사 체험

출근하기 전, 유튜브에서 본 강 사육사처럼 ‘푸바오가 내게 매달려 안 떨어지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그러나 정작 푸바오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강 사육사는 “이렇게 다른 사육사의 냄새를 맡게 해주는 것도 곧 떠날 푸바오의 분리 훈련”이라고 했다. 모든 판다는 언젠가 소유권을 가진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년 꽃이 피기 전에 푸바오는 짝을 찾으러 고향으로 떠난다. 헤어지는 연습을 해야 하는 시기다. 떠나는 쪽보다 남겨진 쪽이 더 힘든 법. 푸바오의 환송식도 준비돼 있다. 2020년 197g으로 태어난 푸바오는 지금 98.8kg이다.

에버랜드 푸바오,러바오 사육사 체험

퇴근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강 사육사에게 인사드리는 길. “별로 한 일이 없는 것 같아 죄송하다”고 하자 그가 말했다. “막내 사육사들이 하는 일과 비슷해요. 보통 사육사를 지원할 땐 아기 판다와 노는 모습을 상상하죠. 그러나 저는 36년 차예요. 맹수들과 살갑게 지내려면 허드렛일을 하며 희생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덧 동물들이 곁을 허락하는 순간이 옵니다.”

다음번에 만났을 땐 판다들과 좀 더 가까워지길 바라면서, 집에 가는 길에 아빠에게 전화 한 통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에버랜드 푸바오,러바오 사육사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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