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 혼란 속 잉태된 ‘연기 혁명’… 할리우드 역사까지 영원히 바꿨다
메소드
아이작 버틀러 지음 | 윤철희 옮김 | 에포크 | 704쪽 | 4만원
소포클레스의 비극 ‘엘렉트라’에 출연한 아테네인 폴루스는 엘렉트라가 죽은 남동생 오레스테스의 유해가 담긴 유골함을 들고 통곡하는 장면을 진짜처럼 연기하고 싶었다. 그는 무대 위에 죽은 자신의 친아들의 유해가 담긴 유골함을 들고 올라갔고, 껴안고 울었다. 극장은 모방된 슬픔이 아니라 꾸밈없는 비탄과 애통함으로 가득 찼다. 플루타르코스가 남긴 기록이다.
로버트 드니로는 권투 챔피언 제이크 라모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분노의 주먹’(1980)에 출연하기 전, 그의 말과 행동 습관을 포크 잡는 법까지 체화하고 그의 이를 부러뜨릴 만큼 권투 실력을 키웠다. 근육량을 6.8㎏ 늘리고 닮은 얼굴을 만들기 위해 얼굴에 보철물을 착용했다. 촬영장에서는 모두 드니로를 제이크라고 불러야 했다. 은퇴 뒤 나이트클럽 코미디언이 된 라모타를 연기하기 위해 체중을 27㎏ 불려 고혈압에 걸렸다. 영화는 드니로의 연기와 함께 전설이 됐다.
거의 2000년의 간격이 있지만, 고대 아테네인과 현대 미국 배우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배우 모두 배역의 실체에 깊게 연결되어, 캐릭터가 처한 상상의 현실에 철저하게 녹아듦으로써 캐릭터가 느끼는 것을 느끼고 어쩌면 심지어 캐릭터가 생각하는 바를 생각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활동했던 배우·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1863~1938)는 당시 유행하던 관습적 감정 표현과 웅변 위주의 연기를 버리고 ‘페레지바니예’를 통한 연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험하기’ 혹은 ‘재경험하기’로 불리는 이 용어를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역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렇게 그가 만들어낸 연기론 ‘시스템’은 미국으로 건너와 정형화된 멜로드라마에 지쳐가던 대공황기의 브로드웨이의 선구자들을 통해 ‘메소드’라는 연기 테크닉으로 발전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 테크닉을 체화한 배우들이 유성영화 시대가 열린 할리우드로 넘어갔다. 러시아 혁명의 혼란 속에 잉태되고 성장한 연기론이 바다를 건너와 미국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영원히 변화시킨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메소드 연기 교육을 받고 무대에 서며 정신적 공황을 경험했고, 연출로 전향한 연출가이자 평론가. 그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메소드’라고 부르는 연기론은 깡패 연기를 위해 깡패처럼 행동하거나,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줄 아는 배우의 방법론 같은 것이 아니다. ‘메소드’는 무조(無調)음악과 모더니즘 건축, 추상미술처럼 현대의 예술운동이자 위대한 사상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메소드’라는 연기론을 주인공으로 한 모험담 같은 책.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은 러시아, 파리,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을 거치며 성장한다. 예술사에 남은 수많은 걸작 연극과 영화들, 엘리아 카잔, 말런 브랜도,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제임스 딘, 프랜시스 맥도먼드 등 메소드의 영향을 받았거나 체화해 새로운 스타일로 발전했던 배우들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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