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은의 고전 노트] ‘불행’은 우리의 가장 위대한 선생
‘인간극’은 발자크 소설 전체를 가리키는 총칭(總稱)으로, 1835년 ‘고리오 영감’을 발표할 무렵 발자크 스스로 정했다. 구상된 작품 수는 137편이고, 그중 87편이 완성되었으며, 미완성으로 남은 몇 편이 더 있다. 발자크는 놀라운 정력과 속도로 1828년부터 1850년까지 22년 동안 그 많은 작품을 썼다. 더 경이로운 사실은, 그것들이 각기 독립된 소설인 동시에, ‘19세기 말 프랑스’라는 거대한 그림 퍼즐을 이루는 낱낱의 조각들로, 작가에 의해 철저히 계획되었다는 점이다.
1799년에 태어나 1850년에 죽은 발자크는 프랑스의 정치, 법률, 경제, 산업, 문화, 상식과 통념까지 모든 것이, 맨 꼭대기에서 맨 밑바닥까지 전부 다 뒤집혔던 극심한 혼란기를 살았다. 그래서 발자크의 ‘인간극’은 서로 얽히고설켜 모략과 배신과 야망과 복수의 드라마를 펼치는 ‘시대의 인간’들의 전시장이다. 그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대상은 사랑, 신분 상승, 권력 그리고 부와 같이,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으로 추구 되는 가치들이다.
그중에서도 ‘돈’은 대부분 사람이 자기 삶의 행불행이 그것에 달려 있다고 믿는, “사회라는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혈액” 같은 것이다. ‘곱세크’는 발자크의 ‘인간극’에 수시로 언급되는 고리대금업자다. 최상층 귀족이건 지방 출신 소부르주아건, 파리에서 욕망을 실현하려는 자는 누구나 그의 도움을 빌린다. 그리고 대다수가 그에게 빌린 돈 때문에 파멸한다. 발자크는 이 무시무시한 유대인에게도 ‘인간극’의 자리 하나를 마련해 준다.
‘인간극’의 출발점이자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고리오 영감’은 부모 등골 빼먹기를 권리인 양 행사하는 패륜 자식들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아버지의 불운을 그린 소설로, 읽는 내내 부아가 치미는 일종의 악인 서사다. 하지만 중편 소설 ‘곱세크’에서 독자는 이기적인 애인의 마음을 얻으려고 고리대금업자에게 막대한 채무를 지고 만 고리오의 맏딸 아나스타지 드 레스토 백작부인의 더없이 비참한 최후를 보게 된다. ‘곱세크’는 속이 후련해지는 인과응보 서사가 아니다. 발자크는 다만, 악독한 딸과 악마 같은 고리대금업자의 대결을 통해 “불행이 우리의 가장 위대한 선생”인 이유를 간담이 서늘하도록 알려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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