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달콤살벌한 ‘효율적 가속주의’
최근 미국에서 상영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며 유독 눈길이 가는 장면이 있었다. 앵무새 대왕이 ‘DUCH’(이탈리아어로 ‘두목’)라고 쓴 팻말을 든 무리의 환호와 환송을 받으며 비장하게 길을 나선다. 세상의 주인에게 문제를 따지러 가는 참이다. 작중 앵무새 무리는 파시즘 등 전체주의 사상에 매도된 군중. 최근 실리콘밸리 테크계를 휩쓸고 있는 ‘효율적 가속주의(Effective Accelerationism)’를 목도한 탓일까. 앵무새들을 보는 내내 ‘E/acc’라고도 불리는 이 개념의 부상과 이에 열광하는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E/acc는 AI의 느리고 안전한 개발을 주장하는 ‘효율적 이타주의’의 반대 개념이다. X에서 기술 규제와 AI 안전론자를 비판하는 비주류 온라인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최근 오픈AI의 쿠데타 및 역쿠데타 사태 이후 추종자가 급격하게 늘었다. E/acc의 핵심은 ‘모든 첨단 기술은 세상에 이로우며, 기술의 고속 발전을 위해 모든 규제와 안전장치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파괴적일지언정 극단적 개혁만이 사회 진보를 이룬다고 보는 가속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기술이 빈부격차·온난화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기술 낙관주의의 끝판왕이다.
문제는 E/acc의 논리가 지극히 배타적인 데다, 실제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E/acc의 창시자인 물리학자 기욤 베르동(31·X 활동명 ‘베프 제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패러디)은 포브스 인터뷰에서 “엔지니어와 서비스 개발자, 그리고 영웅들을 위한 이념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기술자를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과 동일시하는 동시에,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개하다는 식의 논리로 기술의 규제 없는 개발을 정당화한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한 빅테크 개발자는 “기술이 야기할 위협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E/acc의 논리에 허점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들 그 달콤한 말에 기꺼이 속아 넘어가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현지에선 E/acc 바람이 뜨겁다. 베프 제이조스가 X에서 거느리고 있는 약 7만명의 팔로어 중에는 머스크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 등 테크계 거물도 많다. 실리콘밸리 최고 벤처투자사로 꼽히는 ‘안데르센홀로위츠’의 공동 창업자인 마크 안데르센은 지난 10월 ‘기술 낙천주의 선언’을 발표하며 베프 제이조스를 ‘수호성인’으로 칭하기도 했다. E/acc가 기술과 재력을 모두 갖춘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의 ‘규제 철폐 운동’과 기술 난개발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앵무새 대왕의 돌발 행동은 결국 세상을 무너지게 하는 재앙적 결과를 낳았다. E/acc가 이대로 실리콘밸리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 잡는다면, 그 결말은 과연 영화와 크게 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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