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는 달라도… 디자인 시작은 종이 위 연필 스케치부터”
父子 車디자이너 박종서·박찬휘
“저 사진 언제 찍었니? 난 기억 안 나는데….”
아들의 책을 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연필을 들고 스케치하는 손이 표지에 그려져 있었다. 예전에 찍어 둔 아버지의 손 사진을 표지에 넣은 아들을 보며 아버지가 덧붙였다. “저는 오른손잡이고 얘는 왼손잡이예요. 어릴 땐 제가 스케치를 하고 있으면 어느새 곁에 와서 자기 팔을 쑥 집어넣어요. 그렇게 팔짱을 끼듯 한 종이에 같이 그림을 그리곤 했었죠.”
경기 고양시 포마(FOMA) 자동차디자인미술관에서 최근 만난 박종서(76)·박찬휘(46)씨는 부자(父子) 자동차 디자이너다. 미술관을 세워 관장을 맡고 있는 아버지는 현대·기아자동차 디자인연구소 부사장을 지내며 쏘나타·싼타페 등 대표 모델 디자인을 이끌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아들은 벤츠·아우디 등을 거쳐 지금은 전기차 회사 니오(NIO)의 디자이너다. 이달 초 나란히 디자인 에세이집을 펴냈다. 아들의 ‘종이 위의 직관주의자’가 먼저 나왔고 일주일 뒤 아버지의 ‘꼴, 좋다!’가 출간됐다.
손은 부자가 공유하는 추억의 상징이자 디자이너로서 생각이 만나는 접점이다. 아버지는 창의성이 손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요즘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그려보라면 동그라미 두 개만 그려 놓고 어쩔 줄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스마트폰만 보니까 손으로 그리고, 만들고, 기억할 기회가 없죠.” 아들은 “꼭 손으로 잘 그려야 좋은 디자이너인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머릿속의 생각이 종이 위에 스케치로 구현될 때 디자인이 시작된다”고 했다. 세대가 달라도 디자이너는 결국 종이 위에 손을 움직여 꼴을 짓는 사람들이다.
부자간이지만 디자이너로서 서로 양보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요즘 자동차 디자인을 보면 장식이 기능을 해치는 경우가 있다”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예컨대 범퍼 하단은 번호판이 있는 끝 쪽이 바퀴 쪽보다 살짝 올라가도록 경사를 줘야 바닥의 턱에 걸리지 않는데 차별화를 위해 수평에 가깝게 디자인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아들은 “그건 공기 저항을 낮추기 위한 공학적 디자인”이라며 “잘못됐다고 할 게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생각은 ‘자연’이라는 키워드에서 다시 만났다. 박종서씨는 “울산에 근무하던 시절 TV에 일본 방송이 잡힐 때가 있었다”면서 “거기서 우연히 본 고래의 모습에서 착안해 티뷰론과 싼타페를 디자인했다”고 했다. 미술관에도 소라의 나선 구조를 표현한 조각이나 곤충 표본처럼 자연과 관련된 전시물이 많다. 박찬휘씨는 “자연에서 배워야 할 것은 특정한 형태보다도 자연스러움 자체”라고 했다. “아무리 예쁘게 디자인해도 자연스럽지 않으면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으니까요.” 두 디자이너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생각은 닮아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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