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 셔우드 홀
[아무튼, 레터]
1890년 스물다섯 살 미국 의사 겸 선교사가 태평양을 건너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그녀의 이름은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 ‘남자 의사에게 몸을 보이느니 차라리 죽겠다’던 조선 여성들에게 찾아온 천사와 같았다. 그때까지는 로제타도 몰랐다. 이 낯선 땅에서 남편과 딸을 잃게 될 줄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는.
지난 주말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로제타’를 보았다. 극공작소 마방진과 미국 리빙시어터가 합작한 연극. 명배우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등이 거쳐간 리빙시어터는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의 시초가 된 전설적인 극단이다. 이날 둥근 무대 바닥에는 레일과 자갈이 깔려 있었다. 계단형 구조물이 기차처럼 돌고 또 돌면서 장면을 전환했다.
“우리는 전부 로제타입니다! 그녀의 마음이 오늘의 우리입니다!” 미국 배우 3명과 한국 배우 5명이 각자의 언어로 로제타를 연기했다. 모두가 주인공인 셈이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불친절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대사 내용보다는 그 옛날 이 땅에서 절박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민 로제타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음악과 절규가 무대에 일렁였다.
이야기는 로제타가 남긴 일기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그녀가 한글로 삐뚤빼뚤하게 쓴 “어둡고 길 모로니 나를 도와주쇼셔”에서 모든 게 출발했다고 한다. 나이, 계층, 성별, 장애 등 당대의 차별과 선입견에 맞서 싸우며 여성 교육과 의료 봉사에 생애를 바친 로제타가 마주한 ‘순간들’이 무대에 풀려나왔다. 조선 최초 여성병원 설립, 크리스마스 실 도입, 한글 점자 개발…. 감염병으로 남편이 죽고 딸을 또 잃었지만 미국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역경에 굴하지 않았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 배우들은 각자 본명과 함께 “나는 로제타를 연기했습니다” 외치곤 무대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배우들은 빗속에서 춤을 추면서 점점 젖어갔다. 고난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로제타의 삶에 대한 찬사와 같았다. 관객을 향해 ‘당신도 로제타입니다’라고 말하는 연극이었다. 리빙시어터 대표 브래드 버지스는 “미국으로 ‘로제타’를 가져가서 우리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환기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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