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쌈 싸 먹는 법? 한식은 먹는 사람이 완성하니까요”
영국 파이돈 첫 한식 요리책
저자 박정현·최정윤 셰프
구글이 지난 12일 발표한 ‘올해의 검색어’에서 비빔밥이 레시피 부문 1위에 올랐다. 세계인들이 비빔밥으로 대표되는 한국 음식을 알고 싶어 한다는 증거다. 영국 유명 출판사 ‘파이돈(Phaidon)’이 지난 10월 펴낸 ‘코리안 쿡북(The Korean Cookbook)’은 세계적으로 고조된 한식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영문 요리책이다.
‘코리안 쿡북’은 요리책 분야에서 으뜸인 파이돈의 첫 한식 요리책이다. 메주를 쑤어 장을 담그는 법부터 김치, 장아찌, 젓갈 등 전통 음식은 물론이고 제육볶음, 짜장면, 카레라이스, 치킨까지 21세기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는 음식을 총망라했다. 레시피 350개와 함께 음식마다 특징과 유래, 먹는 법을 496쪽에 걸쳐 꼼꼼히 소개한다. 이 방대한 분량의 요리책에 대해 미국 음식 전문지 ‘보나페티(Bon Appetit)’는 “한국 가정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해 왔는지 잘 연구한 연대기”라고 평가했고, 프랑스 요리 거장 에릭 리퍼트는 “한식을 이해하고픈 이들을 위한 필수 도구”라는 찬사를 보냈다.
공동 저자인 박정현씨와 최정윤씨는 20여 년간 알고 지낸 선후배 요리사다. 뉴욕에서 4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박 셰프는 현재 세계 미식계에서 주목받는 인물로 꼽힌다. 그가 2018년 문 연 모던 한식 레스토랑 ‘아토믹스’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2개를 받았고, 올해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8위에 올랐다. 국내외 유명 호텔과 스페인 요리과학연구소 ‘알리시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최 셰프는 샘표 ‘우리맛연구중심’에서 한식 세계화를 위한 연구를 해왔다. 두 저자는 “한식이 골든타임(golden time)을 맞았다”며 “이 기회에 프랑스·일본 음식처럼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서는 데 기여하는 마음으로 요리책을 썼다”고 했다.
◇메주 띄우기부터 치킨 레시피까지
-파이돈이 낸 첫 한식 요리책이다.
박정현(이하 박): “애초 파이돈은 ‘아토믹스책을 내자’고 제안했다. 내가 ‘아토믹스 대신 한식 요리책을 쓰면 어떻겠냐’고 역제안했다.”
-파이돈에서 요리책을 내는 건 셰프로서 큰 영광인데 마다한 이유는.
박: “파이돈에서 연락받은 게 2019년이다. 아토믹스 오픈하고 2년밖에 안 됐을 때다. 우리만의 색깔이랄까 철학을 만들어가는 단계이지, 아직 요리책을 낼 만큼 완성된 레스토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토믹스의 뿌리인 한식에 대한 책을 쓰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았다. 파이돈 측에서도 ‘우리도 한식 요리책을 몇 번 기획했지만 실현하지 못했다. 당신이 써준다면 정말 좋겠다’고 반색해 진행하게 됐다.”
1923년 설립된 파이돈은 본래 아트북(art book)으로 유명한 출판사다. 1950년 미술 전공자들의 필독서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라는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냈고, 이후 미술·건축·사진·디자인·패션 등 시각예술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다. 파이돈은 아트북으로 쌓은 기획과 디자인 실력으로 요리책 분야도 점령했다. 2005년 출간한 이탈리아 요리 바이블 ‘실버 스푼’은 이탈리아 요리 붐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됐고, 스페인 레스토랑 ‘엘 불리(El Bulli)’의 페란 아드리아 등 당대 최고 셰프들과 요리책을 펴내고 있다.
-최 셰프는 어떻게 저자로 참여하게 됐나.
박: 한식을 꾸준히 공부해 왔지만, 한식 요리책을 쓰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최 셰프에게 같이 쓰자고 제안했다. 최 셰프는 샘표 우리맛연구중심에서 식재료부터 양념, 요리법, 식문화 등 우리 맛의 모든 과정과 요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10년 넘게 해왔다. 한식 요리책을 쓸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어떤 독자층을 겨냥했나.
최정윤(이하 최): 한식에 관심 있지만 잘 모르는 해외 일반 대중이 타깃이었다. 파이돈에서도 ‘이 책은 홈쿠킹북’이라고 했다. 전문 요리사가 아닌 가정에서 한식을 해 먹어보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썼다.”
-일반 독자를 위한 요리책이라기엔 전문적인 내용도 많다. 콩을 삶아 메주 만드는 법과 메주로 간장과 된장을 담그는 법까지 나온다.
최: “반드시 장을 담그란 게 아니다. 한식의 기본은 장이다. 한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장을 소개했다. 물론 직접 담가보고 싶어하는 해외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한식에 대해 그 정도로 호기심을 가진 이들이 해외에 상당히 많다.”
-동시에 떡볶이, 치킨, 쫄면, 호떡 등 국내 한식 요리책에서 흔히 다루지 않는 요즘 음식들도 소개했다.
최: “21세기 현재의 한국인이 먹는 음식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알려주는 게 목표였다. 최고의 한식이 아닌, 가장 흔하고 일상적인 오늘 우리의 먹거리와 밥상을 보여주려 했다.”
◇쌈 싸 먹는 법까지 알려주는 이유
‘코리안 쿡북’은 메주부터 치킨까지 방대한 레시피뿐 아니라 구성이나 표기법까지 기존 요리책과 다른 게 많다. 예를 들면 ‘한국인처럼 먹는 법’이란 장에서 삼겹살과 생선회 식사법을 소개했다. 두 저자는 ‘삼겹살은 1)소금에 이어 쌈장·고추장·멸치젓 등을 찍어 먹은 다음 2)나물·장아찌 등 다른 반찬과 함께 맛보고 3)마지막으로 상추·깻잎 같은 쌈채소에 쌈장·김치 등과 함께 얹어 쌈 싸 먹으라’고 알려준다. 생선회는 ‘회를 뜨고 남은 생선 대가리와 꼬리 등뼈로 끓인 매운탕이 나오면 밥이나 국수와 함께 먹으며 식사를 마무리한다’고 안내한다.
-삼겹살·생선회 쌈 싸 먹는 법까지 시시콜콜 알려줄 필요가 있나.
박: “한국식 밥상을 처음 받은 외국인들은 너무나 많은 반찬에 놀란다. 무엇부터 어떻게 먹어야 할지 혼란에 빠져 당황한다. 한식의 매력은 같은 밥상에 함께 앉더라도 사람마다 어떤 순서와 조합으로 반찬을 먹느냐에 따라 식사 경험이 차별화된다는 데 있다. 삼겹살과 먹는 김치와 밥과 먹는 김치는 맛과 식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최: “양식은 요리사 손끝에서 완성된다. 요리사가 원하는 순서대로 하나씩 주어진다. 한식은 먹는 사람의 입안에서 완전해진다. 취향대로 맛의 조합을 창조해 먹을 때마다 맛이 달라지는 게 한국 밥상이다. 요리사가 아니라 먹는 사람이 자기만의 코스를 만든다. 한식의 매력을 제대로 경험하려면 한국 밥상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가이드’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뿐 아니라 먹는 법도 소개한 이유다.”
-’Gukbap(국밥)’ ‘Muchim(무침)’ ‘Twigim(튀김)’ 등 음식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알파벳으로 옮겼다.
박: “미국뿐 아니라 세계 유명 레스토랑에 가면 아시아 식재료를 일본어 발음으로 적거나 영어로 번역해 놓았다. 그게 안타까웠다. 일본어 발음이 해외에서 대중화된 건 정부와 요리사, 레스토랑들이 합심해 꾸준히 알렸기 때문이다. 한국어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요리책에 식재료와 조리법을 한국말로 소리 나는 대로 쓴 이유다. 식당(아토믹스)에서도 식재료와 조리법을 한글 발음 그대로 적었다. 외국인 손님들이 ‘이게 뭐지’ 궁금해할 때 종업원들이 설명해주면서 자연스럽게 한식과 관련된 대화로 이어진다.”
◇골든타임 맞은 한식… 기회 놓치지 말아야
“한국 셰프들이 뉴욕 고급 레스토랑을 석권하며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프랑스 요리의 패권을 끝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한국 레스토랑이 뉴욕의 파인다이닝(고급 외식)을 재창조한 방법’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한 면 전체에 실었다. 한식은 세계 미식을 선도하는 첨단 트렌드로 미국에 안착했다. 지난 10월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뉴욕’에서 별을 받은 식당 72곳 중 9곳이 박 셰프의 아토믹스(2스타)를 비롯한 한식당이었다. 프랑스 식당은 7곳으로 더 적었다.
-NYT 기사가 과장은 아닌가.
박: “지금 뉴욕에서 가장 ‘핫한 요리’는 한식이다. 이렇게 관심이 뜨거울 때 한식을 정리해 놓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관심만 있고 단순히 자극적인 콘텐츠로만 소비되면 이해는 배제된 채 일시적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한식 요리책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다. 아직까지 한식은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음식처럼 일상식이 되길 바라는 기대도 있었다.”
최: “한식 글로벌 브랜딩을 위해 ‘난로회’라는 모임을 지난해 결성했다. 조선 후기 겨울이면 숯불 지핀 화로에 번철을 올려 고기를 구워 먹던 세시풍속 난로회(煖爐會)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당대 최고 풍류인들의 모임이었다. 박지원, 정약용 같은 실학자들이 산수를 보며 그림 그리고, 시를 읊고, 화롯가에 고기를 구워 술잔을 기울였다. 선조들의 풍류를 오늘날로 불러오고 싶었다. 금돼지식당, 몽탄, 산청숯불가든 등 줄 서서 먹는 유명 고깃집 사장들을 비롯한 외식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디자인·브랜딩·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모였다. 한식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세계화에 성공하기를 바라며 돕겠다는 마음들이다.”
-난로회에서 불고기, 갈비 등 ‘K-BBQ’를 주제로 연구와 토론 모임을 열심히 하고 있다.
최: “해외에 가장 널리 알려졌고 대중적으로 인기 높은 K-BBQ가 한식 세계화를 이끌 주역으로 적합하다고 보았다. 일본 스시가 성공한 것은 어려운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단순한 조합, 동시에 가격 스펙트럼은 10달러짜리 마트 스시부터 1500달러 오마카세까지 폭이 넓다. ‘대중적이면서 고급화가 가능한 한국 음식이 뭘까?’ ‘제일 비싼 한식 외식 메뉴가 뭘까?’ 답은 한우, K-BBQ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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