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에겐 그들만의 ‘정의의 법정’이 따로 있었다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조선공산당 돈줄 된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패전 이후 미군 진주 직전까지 총독부와 조선은행은 엄청난 양의 조선은행권을 찍어댔다. 조선은행권 인쇄를 전담하던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만으로는 감당이 안 돼 일본인 지카자와(近澤) 가문이 경영하던 ‘지카자와인쇄소’에도 일부 물량을 할당했다. 비슷한 시기 지카자와 가문은 귀국을 준비하며 지카자와 빌딩과 인쇄소를 헐값에 내놓았다. 조선공산당(이하 조공)은 20만원의 자금을 ‘조달’해 이를 인수했다.
소공동에 있는 지상 5층, 지하 1층의 ‘근택(지카자와)빌딩’은 당시 서울 시내에서 손꼽히는 고층 빌딩이었다. 건물을 매입한 조공은 1층 지카자와인쇄소를 ‘조선정판사(이하 정판사)’로 간판을 바꿔 달고 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와 공산당 관련 문서, 책자, ‘삐라’ 등을 인쇄했다. 2층이 조공 본부였고, 3층이 해방일보 사무실이었다. 해방 한 달이 되기도 전에 근택빌딩은 도심 한복판에 구축된 거대한 ‘공산당 아지트’로 탈바꿈했다.
미군 진주 후 조선은행권의 추가 인쇄가 취소되면서 조선은행은 지카자와인쇄소에 100원권 인쇄용 평판 4조 12매를 반환하라고 지시했다. 반환 과정에서 평판 3조 9매가 분실되었다. 범인은 지카자와인쇄소 직공으로 100원권 인쇄에 참여했다가 ‘정판사 평판과장’으로 고용 승계된 공산당원 김창선이었다.
1946년 5월 초 김창선을 검거한 본정경찰서는 무장 경관을 동원해 근택빌딩을 압수 수색하고, 피의자 10여 명을 검거했다. 5월 15일 미군정청 공보부 ‘특별 발표’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조공 재정·총무부장 이관술, 중앙집행위원 겸 해방일보사 사장 권오직은 김창선이 절취한 100원권 평판과 정판사 인쇄기를 이용해 6회에 걸쳐 1200만원의 위조지폐를 인쇄해 조공의 자금으로 사용했다.”
제1관구 경찰청장 장택상은 수배 중인 이관술, 권오직 등 조공 고위 간부 2명과 검거된 정판사에 근무하는 조공 당원 14명 명단을 공개하고, 위폐 제작 경위와 과정, 인천 부두에서 도난당한 일본산 지폐 용지, 평판, 염료, 잉크 등을 증거물로 제시했다. 조공 중앙위원회는 즉각 “이관술·권오직은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체포된 정판사 직원 14명은 당원이 아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휴회한 틈을 타서 조공의 위신을 떨어뜨리려는 미군정 당국의 비열한 음모”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군정청을 항의 방문한 박헌영에게 경무부장 고문 맥그린 대령은 “이번 사건은 공산당에 대한 정치 탄압이 아니라 국가 경제를 교란시킨 경제 범죄 수사에 불과하다”며 ‘경제 범죄’를 ‘정쟁화’하는 공산당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조공은 2차례 더 “공산당 탄압을 중지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좌익 신문들은 ‘정판사 사건’은 미군정과 ‘친일 경찰’이 날조한 사건이며, “정판사는 위조지폐를 인쇄할 능력이 없다”고 조공을 옹호하는 기사를 연일 쏟아냈다. 하지만 5월 28일 정판사에서 맥그린 대령, CIC 브루스 대위, 조병옥 경무부장, 장택상 경찰청장, 김홍섭 검사 등이 입회한 가운데 실시된 위조지폐 시험 인쇄에서 압수된 지폐와 동일한 위조지폐가 인쇄되었다. 6월 6일, 도주 중이던 조공 재정·총무부장 이관술이 ‘경성미장원’과 ‘해방서점’을 경영하던 ‘제2부인’ 박선숙의 집에서 검거되었다. 해방일보 사장 권오직은 수배 직후 38선을 넘어 월북했다.
7월 29일 경성지방법원 4호 법정에서 조선정판사 사장 박낙종 외 8명의 제1회 공판이 열렸다. 통행금지가 해제된 5시부터 법원 주위에는 방청권을 얻으려는 긴 줄이 늘어섰다. 4호 법정의 수용 인원은 140여 명에 불과했지만, 7시를 지나자 수천 군중이 남대문통, 정동예배당, 덕수궁 대한문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8시 군중 사이에서 ‘해방의 노래’ ‘적기가’ ‘혁명가’가 흘러나왔고, ‘삐라’ 수천 장이 살포되었다. “20여 년 동안 왜적의 총칼 아래서 갖은 학대와 고문을 받아 가며 싸워온 공산당이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니,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이것은 모략이다” “옳소!” “인민재판 실시하라!”는 구호가 이어졌다. 9시 10분 피고인들을 태운 트럭이 법정 안으로 들어서자 “조선공산당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군중이 힘으로 밀어붙여 법원의 정문과 후문이 뚫렸다. 법원 구내로 밀려든 군중이 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다. “법원을 때려 부숴라” “판검사를 죽여라” 열서너 살 됨직한 소녀가 “여러분, 우리 노동자가 사랑하는 당, 조선 인민이 가장 신뢰하는 당, 공산당을 거꾸러뜨려야만 저들이 또다시 인민을 착취하고 압박할 수 있는 겁니다”라고 외쳤다.
“탕!” 9시 30분 무장 경찰이 위협사격을 개시했다. 저항하는 군중을 총신으로 구타하고, 군홧발로 짓밟았다. 그 과정에서 무장 경찰이 공중을 향해 쏜 유탄을 얼굴에 맞아 경동중학교 3학년생 전해련이 사망했다. 8월 2일 ‘민주주의민족전선 산하단체 연합장’으로 거행된 장례식에서 조공은 전해련을 당원과 조선민주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으로 추서했다. ‘공판 소요 사건’으로 50명이 치안 교란, 사법재판 집행 방해, 경찰 공무 집행 방해 등 ‘맥아더 포고령 제2호’ 위반으로 미군정 재판에 회부되었다. 알레산드로니 군정 재판관은 무죄 1명을 제외한 49명에게 징역 3개월에서 5년까지 실형을 선고했다.
공판은 정오가 지나서야 개정했다. 오전의 소요 탓에 양원일 재판장은 피고인 9명에게 수갑을 채운 채 재판을 진행했다. 피고인 사이에 간수 한 명씩 앉혔고, 그 뒷줄에 무장 경관 10여 명을 배치했다. 강중인, 백석황 등 내로라하는 좌익 변호사 9명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은 “공판정에 무장 경관, 간수 수십 명을 채우면 피고인들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없다”며 항의했다. 재판장은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게 질서를 유지해 준다면 나 역시 이러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의 경계는 이만함이 마땅하다”고 변호인의 요구를 일축했다. 피고인 박낙종은 “30분간의 ‘피고 회의’를 허락해 달라”며, 옆에 앉은 피고인들을 향해 “공산주의자는 무슨 일이든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터이니 피고 회의를 여는 데 찬성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말했다. 피고인들이 수갑을 찬 손을 들었다. 그러나 그 역시 재판장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다. 변호인단은 ‘편파적인 재판’ 진행을 항의하며 ‘재판장 기피신청’을 하고 퇴정했다.
이후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은 물증과 자백을 근거로 ‘미군정 사법부’에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조공은 증거 조작과 고문으로 엮은 정치 탄압이라는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 공산당에는 그들만의 법과 법정, 그들만의 정의와 진실이 따로 있었다.
<참고문헌>
김두식, ‘법률가들’, 창비, 2018
임성욱,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 신서원, 2019
고지훈, ‘정판사 사건 재심청구를 위한 석명서’, 역사문제연구 제20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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