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

김황식 전 국무총리 2023. 12. 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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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일러스트=김영석

인류의 역사는 도시의 발달과 함께 발전하였습니다. 도시는 인간 생존의 터전이었고, 인류가 더 잘 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었습니다. 특히 중세 이후 유럽에서 자치권을 가진 도시가 형성되면서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경제적 부를 축적하였고, 이런 도시들의 탄생과 발전은 상업과 자본주의, 더 나아가 민주주의 발전의 환경과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도시가 존재합니다. 저는 어떠한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도시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가끔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던 차 2012년 케냐 나이로비를 방문하여 그곳에 본부를 둔 유엔 산하 기구인 ‘인간정주위원회(Commission on Human Settlement)’ 사무총장을 만났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도시가 가장 이상적일까 하는 호기심에서, 현존하는 세계의 도시들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도시는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무총장은 뉴욕 맨해튼과 싱가포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저는 과밀한 도시가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정적 요소를 생각하면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무총장은 바람직한 도시 형태는 일하며, 쉬며, 자며, 즐기는 문화생활이 좁은 공간 영역 안에서 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야 이동 거리를 줄이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삶의 질을 높이고, 자원을 절약하고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직장과 멀리 떨어진 교외에서 차를 운전하여 장시간에 걸쳐 출퇴근하는 것은 피로를 증가시키고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것입니다.

콤팩트한 도시 환경의 장점을 짚는 것이어서 공감이 되었습니다. 은퇴한 분들이 가까운 곳에 병원, 백화점, 극장 등이 밀집된 도시를 떠나지 않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밀집된 도시 환경은 해결해야 할 난제를 많이 야기하고, 특히 최근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보니 밀집한 환경이 가져오는 부정적 요인도 결코 적은 것은 아닙니다. 결국은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그 대도시 안에서 자급적 생활 여건이 갖추어진 소규모 지역을 다수 만든다면 대도시가 갖는 부정적 요소를 배제하고 쾌적하면서 편리한 도시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논의되는 것이 프랑스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주창한 ‘15분 도시’의 개념입니다. 즉 도보로 15분 거리 안에서 기본적 생활 수요가 다 해결되도록 도시를 만드는 것입니다. 대도시라도 생활 권역으로 나누어 가까운 거리 안에서 생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합니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부산의 미래 도시 비전으로 ‘15분 도시’ 개념을 도입하고 부산 전역을 60여 개의 생활 권역으로 나누어 가까운 거리 안에서 생활 수요를 충족시키도록 하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한다고 들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일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 핵심 도시를 중심으로 일일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능적으로 연결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인구 1000만 명 이상의 거대 도시인 메가시티를 만들고자 하는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고민은 15분 도시와 같은 소도시와 메가시티와 같은 대도시의 장점을 두루 갖춘 도시를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 것인가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앞서 도시가 우선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청정한 도시(Clean city)입니다. 대기, 물, 땅, 강, 바다가 청정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행정적, 기술적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합니다. 둘째, 기후변화와 도시 난개발에 따른 재해로부터 안전하며 범죄 등 사회 불안 요소로부터도 안전한 도시(Safe city)입니다. 셋째, 첨단 정보통신기술(ICT)로 다양한 유형의 전자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센서를 사용해 정보를 취득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도시 생활 속에서 유발되는 교통 문제, 환경 문제, 안전 문제, 주거 문제, 교육 보건 복지 서비스, 시설 효율성 확대 등을 해결하는 스마트한 도시(Smart city)입니다. 이러한 요소를 두루 갖춘다면 소도시와 대도시의 장점을 겸비한, 우리가 살고 싶은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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