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伊는 제3국과 난민 이송 합의… EU도 추방 기준 완화 [글로벌 포커스]
불법 입국 지난해보다 17% 늘어… 난민 몸살 앓던 유럽 전반에 영향
‘反이민’ 가치 건 극우정당 돌풍… “망명-이민 쓰나미 종식시킬 것”
英, 2300억원 들여 ‘난민 르완다행’… 伊, 알바니아에 ‘난민센터’ 설립
이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2021년 아프가니스탄 수니파 무장단체 탈레반의 재집권,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올해 초 튀르키예(터키) 남부와 시리아 북부의 강진, 9월 모로코 강진 등으로 10년 넘게 이들 나라의 난민이 속속 유럽으로 몰려드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올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선제 공격을 단행해 민간인을 납치하고 학살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행보 또한 유럽 전반의 반난민, 반이슬람 기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와중에 유럽연합(EU) 최대 경제대국 독일이 최근 연거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다른 국가의 경제 상황 또한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난민을 바라보는 유럽 전반의 시선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난민을 둘러싼 사회 갈등도 심각하다. 성장을 중시하는 우파 진영은 “난민으로 유럽 전체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하나 인권과 연대에 무게를 두는 좌파는 “난민을 소포처럼 처리해선 안 된다”고 맞선다. 주제프 보렐 EU 외교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가디언에 “난민을 둘러싼 논란이 EU를 해체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反이민’ 기치 내건 극우 정당 돌풍
올 4월 핀란드 총선에서도 극우 핀란드인당이 2015년 의회 입성 8년 만에 원내 2당 자리에 올랐다. 핀란드인당은 중도 우파 국민연합당이 이끄는 연정에 참여했다. “길거리 갱단과 젊은 범죄자 대부분이 이민자”라고 주장하는 리카 푸라 핀란드인당 대표는 현 연정에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맡고 있다. 현 연정은 연간 1050명인 난민 수용 규모를 500명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 ‘죽음의 바다’ 오명 쓴 지중해
이들 난민을 태우고 유럽으로 오는 배는 불법 밀수업자가 운영하기에 안전장치가 없다. 수용 인원도 지켜지지 않아 침몰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난민들이 유럽으로 오는 주요 통로인 지중해에 ‘죽음의 바다’ ‘유럽 최대 공동묘지’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은 이유다.
올 6월에는 약 750명의 난민을 태우고 이탈리아로 가던 낡은 난민선 ‘아드리아나’호가 그리스 바다에서 침몰했다. 생존자는 100여 명에 불과했다. 특히 그리스 해안경비대가 침몰 사실을 인지하고도 구조 작업을 펼치지 않아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생존자 증언, 이 배의 항로 등을 분석한 결과 침몰 13시간 전부터 아드리아나호가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그리스 당국이 무시했다며 “모두가 침몰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도 돕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유럽의 정치 지형이 우경화하면서 주요국이 난민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 것 또한 대규모 피해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 英-伊 “난민을 제3국으로”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는 자국 난민을 제3국으로 보내는 시도가 한창이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6일 아프리카 르완다에 일부 불법 입국자를 보내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영국은 지난해 4월부터 불법으로 온 이주민을 6400km 떨어진 르완다로 보내는 대신 총 1억4000만 파운드(약 2300억 원)를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주민을 다 수용하기도 어렵고 비인도적으로 내쫓기도 어렵우니 강대국 원조가 시급한 저개발국을 끌어들여 고안한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이 합의에 따라 르완다로 간 불법 이민자들은 현지 수용소에서 난민 심사를 받는다. 그곳에서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제3국에 망명 신청을 할 수 있다. 르완다 입장에선 안 쓰는 땅에 난민 수용소를 지어 큰돈을 벌 수 있으니 마다할 필요가 없다.
지난달 대법원은 “르완다가 안전하지 않다”며 이 계획에 일시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수낵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 난민의 아프리카행을 관철시키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영국의 발표 후 덴마크, 오스트리아 또한 르완다와 비슷한 협정을 맺으려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의 인도적 난민 수용을 주도해온 독일마저 다르지 않다. 2015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는 100만 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메르켈 전 총리가 속한 중도우파 기독민주당에서는 최근 “이탈리아처럼 제3국에 망명 접수 센터를 만들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곳곳에서 극우파가 약진하자 중도우파 정당까지 경쟁적으로 나서서 이민 강경책을 펴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EU 또한 내년 4월까지 ‘신규 이주·난민 협정’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중동 및 아프리카와 가까운 그리스, 이탈리아에 도착한 망명 신청자를 회원국이 경제 및 인구 규모에 따라 나눠 수용하고 수용하기 싫으면 난민 1인당 2만 유로(약 2800만 원)의 기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한 망명을 거부당한 이민자를 ‘안전한 제3국’으로 추방하되 안전한 국가에 대한 판단은 회원국이 개별적으로 내리도록 했다. 난민 추방 기준을 느슨하게 만들어 추방을 쉽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난민 떠넘기기’도 한창
각국이 난민 수용을 서로 떠넘기는 모습도 역력하다. 중도좌파 성향인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올 9월 “지중해의 난민을 구조하는 각종 비정부기구(NGO)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멜로니 총리는 즉각 “이탈리아와 상의 없이 불법 구조 활동을 지원하기로 한 사실에 경악했다”며 발끈했다. 지중해와 면한 이탈리아가 난민으로 인한 온갖 피해를 다 떠안는데, 독일은 국제사회에 자국 이미지를 좋게 포장하기에 바쁘다는 의미다.
영국과 프랑스 또한 영불해협에서 밀항선 전복 사고로 여성과 어린이들이 잇따라 사망하자 날 선 책임 공방을 벌여 왔다. 한때 자국 영해에서 상대국의 조업권을 제한할 정도로 관계가 악화 일로를 달렸지만 올 3월 수낵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겨우 협력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시적 화해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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