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사도 된다는 책이 가장 많이 팔린 역설[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이호재 기자 2023. 12. 16.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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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의 가르침' 열풍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격도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전자책(e북)을 무료로 배포하면서 팬덤을 만들었고, 결국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e북을 무료로 먼저 배포하는 출판계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한 출판사 관계자의 말처럼 올해 '세이노의 가르침' 열풍이 내년 출판계에 영향을 끼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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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e북 배포하며 팬덤 형성
내년 출판 트렌드에 영향 줄까
◇세이노의 가르침/세이노 지음/736쪽·7200원·데이원
“‘세이노의 가르침’ 열풍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격도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전자책(e북)을 무료로 배포하면서 팬덤을 만들었고, 결국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최근 만난 한 출판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 출판계를 뒤흔든 자기계발서 ‘세이노의 가르침’의 인기의 이유를 가격으로 분석한 것이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세상의 통념에 ‘세이, 노(Say, no)’ 하라는 의미로 세이노란 필명을 쓰는 작가가 삶의 태도에 대해 거침없이 직설적으로 조언한 자기계발서다. 1000억 원대 자산가라고 밝혔을 뿐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저자가 20년간 발표한 칼럼을 엮었다. 올 3월 출간된 뒤 입소문을 타며 70만 부 이상 팔렸고 교보문고, 예스24가 최근 발표한 연간 베스트셀러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판매량과 화제성에서 이른바 ‘올해의 책’이 됐다.

이호재 기자
‘세이노의 가르침’ 열풍은 최근 자기계발서 열풍의 연장선에 있다. 교보문고가 4일 내놓은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및 결산’에 따르면 종합 10위 중 자기계발서가 4종에 달한다. ‘세이노의 가르침’과 게리 켈러의 ‘원씽’(2위), 자청의 ‘역행자’(3위), ‘김미경의 마흔수업’(7위)이다. 지난해 종합 10위 중 ‘역행자’(5위)만 포함된 것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 자기계발서 전체 판매량도 지난해보다 20.8% 증가했다. 예전에는 교수, 종교인 등 저명인사가 인생 멘토로서 조언해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나 최근에는 얼굴 없는 작가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 경향도 담겼다.

e북을 공짜로 배포하면서 팬덤을 만든 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온라인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세이노의 가르침’을 소개한 글이 많다. 이 중 e북으로 읽는 법을 소개한 글도 적지 않은데, 이들은 e북 내용을 불법으로 캡처해 올리지 않는다. “다른 이에게 지식을 나누는 데 의미를 두고, 인세를 버는 데 큰 목적이 없다”고 밝힌 저자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블로거도 적지 않다.

낮은 종이책 가격은 대중을 끌어모았다. 종이책은 736쪽에 7200원에 불과하다. 온라인 서점에서 10% 할인받아 사면 6480원이다. 1쪽에 10원도 되지 않는 셈이다. 보통 비슷한 분량의 ‘벽돌책’이 3만∼4만 원 안팎인 것에 비하면 많이 저렴하다. 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최근 종이값, 인건비가 오르면서 전체적으로 책값이 올랐다. 그런데 ‘세이노의 가르침’은 종이책 가격이 획기적으로 저렴해 독자가 살 때 전혀 망설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세이노의 가르침’의 성공은 이례적인 사례다. 출판사와 저자 입장에선 e북을 무료로 배포하는 건 수익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e북을 무료 배포한 건 아직 e북보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출판계에 마케팅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 “e북을 무료로 먼저 배포하는 출판계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한 출판사 관계자의 말처럼 올해 ‘세이노의 가르침’ 열풍이 내년 출판계에 영향을 끼칠지 궁금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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