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뮌머리' 윤증, 뒷머리 끌어와 상투 틀어…5300년 전 알프스 미라 '외치'도 남성형 탈모 진행

김홍준 2023. 12. 1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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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인 1000만, 겨울이 더 시린 사람들
‘여덟 시 통근 길에 대머리 총각/오늘도 만나려나 떨리는 마음/시원한 대머리에 나이가 들어/행여나 장가갔나 근심하였죠 ….’

가수 김상희가 1967년 내놓은 노래 ‘대머리 총각’ 일부다. 낭랑한 음색으로 부른 이 노래에 대해 김씨는 “당시 우울한 시기를 벗어나려는 사회상을 반영했다”고 훗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국내 한 조사에 따르면 ‘탈모 때문에 받는 최대 스트레스가 무엇이냐’는 질문(복수 응답)을 했더니, ‘조롱·연민·비웃음 등 남들의 시선(277명)’이라는 응답이 1위였다. 이어 ‘자신감·자존감 저하 등 심리적 위축(206명)’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외모(44명)’ 순이었다. 탈모로 시원하게 벗어진 머리로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노랫말 속 그 총각은, 정말로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탈모는 동서고금,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고민의 대상이었다.

명재 윤증 초상화. 뒷머리를 끌어와 상투를 튼 것으로 보인다. [중앙포토]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에서 확인 가능한 탈모 치료의 역사는 기원전 1550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의 의학 문서인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는 탈모증 치료법도 있다. 하마·악어·수고양이 등의 지방을 섞어 머리에 바르라는 것. 현재 피나스테라이드·두타스테라이드를 이용한 탈모약의 원조쯤 되겠다.

기원전 400년 무렵 히포크라테스는 탈모증을 치료하기 위해 겨자무, 비둘기 배설물, 고추 등의 재료를 섞어 약을 만들었다.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탈모를 가리려고 월계관을 썼다고 한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연인 카이사르를 위해 불에 태운 생쥐, 곰의 기름, 사슴의 골수 등을 탈모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곰의 기름을 탈모약으로 쓴 건 『동의보감(1610)』에도 나온다. ‘머리털이 노랗게 시들어갈 때는 곰의 기름을 발라주고 빠질 때는 곰의 골수로 기름을 내어 발라준다’고 적혀 있다.

이보다 앞서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1168~1241)가 자신의 탈모를 한탄했다. 그는 『동국이상국집』 제18권 ‘대머리를 자조함(頭童自嘲)’에 ‘털이 빠져 머리 홀랑 벗어지니/꼭 나무 없는 민둥산이라/모자를 벗어도 부끄럽지 않지만/빗질할 생각은 벌써 없어졌네’라고 남겼다. 그런데, 이규보는 ‘민둥산’을 한자 ‘禿山(독산)’으로 적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대머리’는 19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나 현재까지 이어진다. ‘대’의 의미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머리’와 같은 뜻인 ‘민머리’의 17세 표현이 ‘믠머리’(禿子)와 ‘고되(ㄷ+아래아+ㅣ)머리(禿頭)’인 것으로 보건대, ‘대머리’는 ‘고되(ㄷ+아래아+)머리’에서 변화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1991년 발견된 미이라 ‘외치.’ 최근 과학자들은 5300년 된 ‘외치’가 안드로겐 탈모를 겪었다고 밝혀냈다. [중앙포토]
그 17세기에 살았던 명재 윤증(1629~1714)도 ‘뮌머리’였다. 그의 초상화를 보면 당시 탈모인이 상투를 틀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알 수 있다. 탕건을 쓴 부위로 탈모가 보이는데, 뒷머리에 남은 머리카락을 모아 상투를 튼 것으로 보인다. 영조(1694~1776)도 탈모였다. 그런데 73세에 머리가 나자, 뛸 듯이 기뻐했다고 조선왕조실록이 전한다.

‘대머리’를 소재로 한 책도 꽤 있다. 『아홉살 대머리』는 학업 스트레스로 대머리가 될 위기에 놓인 소년 경수를 그린 동화다. 스즈키 다쿠야의 『아직은 대머리가 될 수 없다』는 탈모에서 벗어나려는 자신의 역경을 담았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탈모인은? 5300여 년 된 미이라 ‘외치(Ötzi)’는 1991년 알프스에서 발견됐는데, 최신 유전자기법을 동원한 과학자들은 지난 8월 “외치는 생전 남성형 탈모가 진행 중이었다” 밝혔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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