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감축 풍선효과, 대체재 늘어 쓰레기만 더 쌓여

신수민 2023. 12. 1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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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일회용품 규제책
일회용품 규제 시행과 번복을 반복하는 동안 일회용품 소비량은 11년 새 2.6배 늘었다. [뉴스1]
비닐봉지 발명가의 의도는 완벽히 빗나갔다. 1인당 연간 533장 사용하고, 25분 내로 버려지는 비닐봉지는 사실 환경보호를 위한 발명품이었다. 스웨덴 공학자 스텐 구스타프 툴린은 오래 가는 봉지를 오래 쓰라고 만들었다. 나무를 베어 만든 종이 봉투는 금방 찢어지고 많이 버려져 산림파괴에 주범이 된다 생각했다. 그런 종이봉투 대체재였던 비닐봉지가 지금은 폐기량이 종이봉투를 넘어서면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종이든 비닐이든 소비부터 줄여야 했는데 이를 망각한 결과는 뒤바뀐 결과를 낳았다.

‘일회용품 규제 완화’ 한 달째다. 13일 찾은 중구의 A카페 카운터엔 종이 빨대와 플라스틱 빨대를 나란히 비치해뒀다. 매장 직원 윤기영(가명·29)씨는 “지금은 (종이빨대) 추가 발주는 안 하고 재고를 소진하고 있다”며 “더러워진 종이빨대는 재활용도 잘 안 되고 딱히 환경에 도움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근 B카페엔 플라스틱 빨대만 있었다. 직원 이규언(23)씨는 “계도기간에도 딱히 종이빨대를 안 썼다”며 “플라스틱 빨대를 필요할 때만 드리는 게 훨씬 덜 쓰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간 일회용품 규제가 근본 목적을 잊은 채 시행돼 왔단 얘기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버려지는 일회용품 총량을 줄이는 게 목적인데, 특정 품목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한 건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치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바다거북이를 발견하자 ‘빨대 사용을 줄이자’고 한 것과 같다. 정작 빨대는 바다쓰레기의 0.03%에 불과하다. 되레 46%는 폐그물망인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근본적인 고민이 없다보니 본말이 전도되기 쉽다는 얘기다.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총량 줄이기 목표치를 두고 정확한 통계로 규제의 효과를 입증해야 하는데, 근본 질문을 잊다보니 정책이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난 20년간 일회용품 규제책은 오락가락 하기를 반복했다. 2003년 패스트푸드점에서 시작된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5년 뒤 폐지됐다. 2018년 카페 등 식품접객업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금지 규제가 시작됐지만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불가피하게 지자체별 자율 하에 한시 허용했다. 지난해엔 다시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등 규제 품목이 추가됐으나 지난 11월 계도기간은 무기한 연장됐다. 종이컵 사용 규제는 폐지됐다. 그 사이 일회용품 소비, 그중 플라스틱 소비량은 매년 늘었다. 시장에 ‘일회용품 감축’이란 시그널이 닿지 못한 셈이다. 2017년 전체 플라스틱 소비량은 798만t에서 2021년 1193만t으로 1.5배 증가했다. 11년 전인 2010년과 비교해도 2.5배 증가했다. 그중 가정, 일상생활 속 생활계 폐플라스틱은 11년 새 177만t에서 468만t으로 2.6배 늘면서 가장 많이 증가했다.

잘못된 시그널 탓에 대체재 소비도 늘어난다. 홍수열 소장은 “대체재를 찾고 사후처리 고민도 없다보니, 쓰레기 양만 늘어나는 규제의 풍선효과만 나타났다”며 “정말 일회용품 소비를 줄이려 했다면 대체재 소비도 함께 줄이는 대안을 고민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다윤(28)씨는 “텀블러를 3개씩 돌려쓰고 있는데, 이외에도 집에 시즌별로 나오는 리유저블컵이나 사은품, 선물받은 것까지 합치면 새것만 5개는 된다”고 말했다. 대체재도 환경보호 효과를 거두려면 애초에 사용하지 않거나, 오래 사용해야 효과가 있다. 영국 환경청에 따르면 종이봉투는 비닐봉지보다 3번은 더 사용해야 환경에 도움이 된다. 이외에 에코백은 7100회를, 텀블러는 최소 220회는 사용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일회용품의 ‘생산-소비-폐기’ 전과정이 잘 돌아가는지 재검토 없이 무작정 만든 규제는 헛바퀴를 돌 가능성이 크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가령 플라스틱만 해도 분리수거부터 점검하고, 불필요한 플라스틱 과다생산을 제한하는 등 관리 시스템만 제대로 정립해도 총량 관리가 가능한데, 규제부터 만들어 혼란만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이상훈 계명대 환경학부 교수는 “타국 대비 자영업, 서비스업 종사자가 많은 상황에서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여러 업종, 상품 중 일회용 비닐, 빨대 등만 집중 규제하는 건 정책적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일회용품의 생산~폐기 전과정상 환경영향 정도를 평가해 업체, 소비자, 시민이 납득할만한 규제 품목을 정해야 일관적으로 환경정책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실제 폐플라스틱의 국내 실질 재활용률은 20%대에 그친다. 통상 폐플라스틱은 재활용, 소각, 매립 방식으로 처리된다. 이 과정 중 소각해 물질을 변화시켜 에너지를 회수하는 걸 제외하고, 물질 그대로 재활용한 비율은 27%에 그친다. 폐기처리 기술 개발도 더디다.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별 연구개발 건수를 보면 선별 등 물리적 재활용 기술은 162건인 데 반해 화학적 기술은 3건(1.4%)이다.

규제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대체로 공감한다. 장용철 교수는 “일종의 일회용품 소비를 줄여가자는 시그널이란 측면에서 필요한 규제를 초지일관 이어가야 한다”며 “정책에 신뢰도가 있어야 생산-소비-폐기 전 단계의 당사자들이 기술투자 등 믿고 대비할 수 있고, 그게 순환경제를 만드는 추진력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중요한 건 근본 목적, 방향성이다.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원은 “환경 규제는 늘 총량 줄이기를 선행과제로 둬야 하고, 소비 단계에서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보다 일회용품 전생애주기 단위로 총량을 줄여가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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