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감축 풍선효과, 대체재 늘어 쓰레기만 더 쌓여
오락가락 일회용품 규제책
‘일회용품 규제 완화’ 한 달째다. 13일 찾은 중구의 A카페 카운터엔 종이 빨대와 플라스틱 빨대를 나란히 비치해뒀다. 매장 직원 윤기영(가명·29)씨는 “지금은 (종이빨대) 추가 발주는 안 하고 재고를 소진하고 있다”며 “더러워진 종이빨대는 재활용도 잘 안 되고 딱히 환경에 도움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근 B카페엔 플라스틱 빨대만 있었다. 직원 이규언(23)씨는 “계도기간에도 딱히 종이빨대를 안 썼다”며 “플라스틱 빨대를 필요할 때만 드리는 게 훨씬 덜 쓰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간 일회용품 규제가 근본 목적을 잊은 채 시행돼 왔단 얘기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버려지는 일회용품 총량을 줄이는 게 목적인데, 특정 품목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한 건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치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바다거북이를 발견하자 ‘빨대 사용을 줄이자’고 한 것과 같다. 정작 빨대는 바다쓰레기의 0.03%에 불과하다. 되레 46%는 폐그물망인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근본적인 고민이 없다보니 본말이 전도되기 쉽다는 얘기다.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총량 줄이기 목표치를 두고 정확한 통계로 규제의 효과를 입증해야 하는데, 근본 질문을 잊다보니 정책이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말했다.
잘못된 시그널 탓에 대체재 소비도 늘어난다. 홍수열 소장은 “대체재를 찾고 사후처리 고민도 없다보니, 쓰레기 양만 늘어나는 규제의 풍선효과만 나타났다”며 “정말 일회용품 소비를 줄이려 했다면 대체재 소비도 함께 줄이는 대안을 고민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다윤(28)씨는 “텀블러를 3개씩 돌려쓰고 있는데, 이외에도 집에 시즌별로 나오는 리유저블컵이나 사은품, 선물받은 것까지 합치면 새것만 5개는 된다”고 말했다. 대체재도 환경보호 효과를 거두려면 애초에 사용하지 않거나, 오래 사용해야 효과가 있다. 영국 환경청에 따르면 종이봉투는 비닐봉지보다 3번은 더 사용해야 환경에 도움이 된다. 이외에 에코백은 7100회를, 텀블러는 최소 220회는 사용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일회용품의 ‘생산-소비-폐기’ 전과정이 잘 돌아가는지 재검토 없이 무작정 만든 규제는 헛바퀴를 돌 가능성이 크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가령 플라스틱만 해도 분리수거부터 점검하고, 불필요한 플라스틱 과다생산을 제한하는 등 관리 시스템만 제대로 정립해도 총량 관리가 가능한데, 규제부터 만들어 혼란만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이상훈 계명대 환경학부 교수는 “타국 대비 자영업, 서비스업 종사자가 많은 상황에서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여러 업종, 상품 중 일회용 비닐, 빨대 등만 집중 규제하는 건 정책적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일회용품의 생산~폐기 전과정상 환경영향 정도를 평가해 업체, 소비자, 시민이 납득할만한 규제 품목을 정해야 일관적으로 환경정책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대체로 공감한다. 장용철 교수는 “일종의 일회용품 소비를 줄여가자는 시그널이란 측면에서 필요한 규제를 초지일관 이어가야 한다”며 “정책에 신뢰도가 있어야 생산-소비-폐기 전 단계의 당사자들이 기술투자 등 믿고 대비할 수 있고, 그게 순환경제를 만드는 추진력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중요한 건 근본 목적, 방향성이다.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원은 “환경 규제는 늘 총량 줄이기를 선행과제로 둬야 하고, 소비 단계에서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보다 일회용품 전생애주기 단위로 총량을 줄여가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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