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비리 온상’ 오명 벗으려 기술 개발, 전화위복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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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준장 출신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장
“무기는 설령 100년 동안 쓸 일이 없다 해도, 단 하루라도 갖추지 않을 수 없다.”(兵可百年不用, 不可一日無備)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병전편에서 군사력 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군사력은 곧 병력과 무기를 뜻한다. 전 세계 무기시장에서 요즘 한국이 인기다. 이른바 ‘K-방산’은 수출 효자 상품으로 등극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호주와 3조원대 장갑차 수출계약을 체결했는데, 올해 방산 수출 규모는 지난해 사상 최대 기록(173억 달러)을 뛰어넘는 200억 달러로 예상된다.
율곡 비리 등 관련자 대부분 무혐의 처분
Q : 현역시절 업무는 어떠했나.
A : “국방부 조달본부 외자구매과장 보직에 있으면서 외국 무기를 사는 역할을 맡았다. 우리가 무기를 사는 입장인데도 ‘을’이 되기 일쑤였다. 자체 기술력이 없으니 물건이 설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대안이 없었다. 아쉬운 건 우리 쪽이니 협상력이 떨어질 뿐더러 원가도 알 수 없어 바가지를 쓰는 건 예사였다. 그래서 초대 연구개발국장으로 장군에 진급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국방기술기획서』를 발간한 것이다. 무기 기술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획득 방법을 명시해 무기 구입의 기준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Q : 과거 우리 방위산업은 어떤 수준이었나.
A : “우리나라 방산은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3차 경제개발 5개년이 끝나는 1976년 말까지 최소한 이스라엘 정도의 자주국방태세를 갖추는 걸 목표로 하고 방산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총·박격포·수류탄과 같은 기본병기에 대한 기술도 전무했다. 박 대통령은 1971년 11월 당시 오원철 차관보를 경제제2비서실 수석비서관에 임명하고, 청와대 안에 설계실을 만들어 연내에 시제품을 완성하라고 지시했다. 일명 ‘번개사업’이다. 도면이랄 것도 없으니 해외 무기를 분해해 부품 실물을 스케치해 역설계하는 수밖에 없었다. 국방과학연구소 직원들이 밤낮없이 청계천을 드나들며 주물을 제작해 한 달 만에 국산 소총과 박격포의 1차 시제품이 탄생했다. 박 대통령은 ‘이제 우리 손으로도 무기를 만들 수 있다’며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1968년 1·21 사태를 시작으로 푸에블로함 피랍과 정찰기 피격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북한 도발이 계속될수록 자주국방의 의지가 커졌다. 설상가상 1970년대 들어 주한미군 철수가 가시화되면서 시작된 기본병기의 국산화 작업은 20여 년간 계속됐다. 1974년부터 1991년에 걸친 ‘전력증강계획’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율곡 이이 사상을 담아 ‘율곡사업’으로 불렸다. 그 결과 M16 소총과 K1 전차, KF-16 전투기 등 우리 군의 핵심 장비가 개발, 생산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고도정밀무기 개발에 착수했는데 K9 자주포와 K1A1 전차 등이 탄생했다. 채 회장은 “현재 우리 방산 기술력은 선진국의 90% 수준”이라며 “스텔스기나 이지스함과 같은 최신 첨단무기도 결국 전자제품인데, IT·반도체 강국인 우리의 기술이 미국·유럽 등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냉전 종식 후 방산 선진국이 지속적으로 생산 규모를 줄이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대량생산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기회가 됐다. 미·중 갈등을 비롯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국제 정세가 급변하자 각국의 무기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언제든 무기를 생산할 준비가 된 우리나라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Q : 휴전국이기 때문에 방산이 발전했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들린다.
A : “우리나라는 전시에 대비해 늘 적정 수준의 생산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평상시 가동률이 60%에 불과해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을 계기로 세계 각국의 무기와 장비 수요가 급증했고, 우리의 유휴시설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실제로 방산업체 공장 가동률이 방산 수출이 증가한 2021년 이후 줄곧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50만명이 넘는 우리 군이 실전 훈련에서 사용하고 있어 품질 검증이 가능한 점도 신뢰를 더한다. 또 우리는 무기를 단순히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후속군수지원, 교육훈련, 기술이전, 현지생산시설 구축 등 구매국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충족하는 패키지 방식으로 수출해 선호도가 높다.”
개도국 보유 자원과 무기 수출 연계 필요
Q : 국산 무기의 강점은 무엇인가.
A :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좋다. 성능은 선진국 무기와 비슷한 수준인데 가격이 저렴하다. 사실 모든 국가가 고가의 최첨단 장비를 갖고 싸우는 건 아니다. 우리 무기가 가격이 낮으면서도 기술력과 생산성이 뛰어나다 보니 글로벌 수요에 오히려 적합한 선택지가 된 것이다. 대량생산체제로 적기에 납품할 수 있는 점도 강점이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국민성 덕분에 폴란드와 계약했던 K-2전차와 K-9 자주포의 초도 물량은 납기일보다 무려 6개월 앞서 납품됐다. 무기가 너무 일찍 도착하자 놀란 폴란드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항구에 직접 나와 열렬한 환영 행사를 펼쳤을 정도니 K-방산의 경쟁력을 제대로 증명한 셈이다.”
방산은 한때 비리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1993년 율곡 비리 사건, 1996년 린다 김 로비 사건, 2014년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 사건 등 사업 과정에서 군 장성과 업체 간 뇌물이 오간 것이 밝혀지며 논란을 빚었다. 채 회장은 “2014년 대대적인 방산 비리 수사가 벌어졌지만 검찰에 기소된 인사 대부분이 무혐의 처분으로 결론 났다”며 “마치 비리의 온상인 듯 세간의 비난을 받았지만 방산은 사실상 비리를 저지르기 어려운 분야”라고 말했다. 그는 2018년 낸 저서 『황금알을 낳는 최첨단 방위산업, 삼성은 왜 포기했나』에서 그간 우리 방산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삼성그룹은 각종 항공기용 엔진과 K-9 자주포 등 첨단 제품을 생산하던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지분 전량을 2015년 한화그룹에 매각하며 방위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Q : 저서에서 방위산업을 고비용·저효율 산업이라고 했다.
A : “대한민국에서 원가를 공개하는 기업이 있나. 그런데 국내 방산업체들은 방위사업법에 따라 매년 말 원가를 방사청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방사청은 이를 검토해 허위사실이 밝혀지면 부정당 제재 처분을 내리고, 투입금액을 환수하는 등 엄격히 관리한다. 감사원이 다시 한 번 점검하는데다 국정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보안기관도 수시로 감찰한다. 방위사업법에 의해 업체 마진율도 9%로 정해져있다. 그러나 각종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실제 마진율은 대기업 기준 3~5%에 불과하다. 그러니 업체 입장에선 ‘애국심으로 철수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혹여 신기술을 개발하다 실패하면 지체보상금 등 각종 패널티를 물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서기도 어렵다. 엄청난 기술력과 자본력을 지닌 삼성이 유일하게 넘지 못한 산(山)이 방산(防産)이 아닐까.”
Q : ‘방산 특화 종합상사’를 육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A : “폴란드 사례에서 보듯이 무기 수출 시 금융지원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각국 정권이 바뀌면 기존 계약 이행이 어렵게 되거나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있다. 현재 우리 무기에 관심을 보이는 동남아·아프리카·중남미 등 개발도상국의 경우 현금은 부족하더라도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있다. 우리는 자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지 않나. 이런 경우에는 금융지원보다는 그 나라의 보유 자원으로 대체해 무기를 수출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듯 방산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종합상사가 필요하다. 동시에 대통령실에 역량 있는 방산비서관을 임명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채우석 회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비리의 온상처럼 여겨지던 방산이 이제는 K-방산으로 불리니, 당시 오명을 벗으려 기술 개발에 매진한 게 전화위복이 됐다”면서도 “향후 2~3년 동안 수출 호조가 이어지겠지만 기술 개발과 성능 개량을 게을리 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기 수출은 단순히 경제 교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안보 시스템을 우리 식으로 표준화하는 중요한 작업”이라며 “한국 무기를 수입하는 나라가 늘수록 우리 국방력도 강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전쟁 참전국에 대해서는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수출 협력을 해나가야 한다는 게 채 회장의 지론이다. “우리 무기가 무기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군사 태세를 갖추는 데 평생을 바친 노장의 눈이 빛났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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