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사건’, 허점 많았지만 돌이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윤석열 사단과 대립한 신성식 검사 첫 언론 인터뷰
‘삼바 사건’ ‘이재명 대표 수사’ 등을 통해 경험한 검찰 특별수사 문제점
육군 내 사조직 ‘하나회’가 전두환씨를 필두로 군사반란을 일으킨 과정을 담은 영화 <서울의 봄>. 개봉 이후 ‘쿠데타’라는 소재를 넘어 현실을 떠올리게 한 영화였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영화에 보면 ‘하나회’가 있잖아요. 검찰에는 ‘사단’이 있고. 단순히 영화가 12·12 사태만 다뤘다기보다 더 심오한 뜻이 있는 것 같았어요.” 2023년 12월6일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난 신성식(58·사법연수원 27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공감을 표했다. 그가 사표를 남기며 한 말이다. “검찰은 사유화할 수도 없고, 사유화해서도 안 된다.”
‘특수부’ 검사가 ‘○○사단’이 되기까지
2001년 울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신성식 위원은 창원지검 특수부장, 서울중앙지검 3차장 등을 거쳐 2020년 8월 검사장으로 승진하며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 부임했다. 이후 수원지검장을 했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좌천돼 광주고검 차장검사를 거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재직했다. 그는 한국방송(KBS)에 허위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법무부는 현행 국가공무원법상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공무원의 경우 퇴직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규정에 따라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상태다. 2023년 12월11일 그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23년간 재직하며 느낀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신 위원에게 검찰 내 특정 ‘사단’이 거론되는 문제부터 물었다. 그는 ‘특수부' 이야기를 꺼냈다.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 이목을 끄는 사건을 맡으면 좋은 보직이나 승진이 보장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많은 검사가 특수부로 가기를 열망해요.” 그렇게 기를 쓰고 들어간 특수부는 ‘사단’의 시작이 된다. “특수부에서 일해보면 잘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같이 일했을 때 일도 잘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데려다 쓰거든요. ‘사단'이라 불리는 건 이런 밀고 당기는 게 더 심한 거고요.”
신 위원은 검찰 내 대표적 ‘특수통'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처음부터 달랐다고 기억한다. “대검 중수부(중앙수사부)에 들어가려면 최소 3학년(5∼6년차)은 돼야 가능한데, (한 장관은) 1학년 때 파견 형식으로 바로 들어갔을 거예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능력도 발휘 못하고 사라져간 사람이 많거든요. 처음에 기회를 줬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큰 혜택이죠.”
신 위원 자신도 언론에 ‘추미애 사단’으로 분류된다. 2020년 12월 추미애 장관이 검찰총장 징계를 제청한 뒤, 징계위원회에 현직 검사로는 유일하게 위원으로 참석한 게 계기였다. 이용구 당시 법무부 차관과 외부 위원 2명 등 3명이 만장일치로 정직 2개월을 의결했을 때, 그는 기권표를 냈다. 신 위원은 당시 대검 반부패부장으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참모였다. 그는 자신이 ‘추미애 사단’으로 분류되는 것과 흔히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이들은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분(추미애)이 계실 때 검사장이 됐죠. (그해 여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던 신 위원은 당시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신고식 할 때 처음 뵀어요. 연락처도 없고 같이 밥 한번 먹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럼 모든 검사가 검사장 승진할 때의 장관이 사단장이 되는 건가요? 그건 말이 안 되죠. (최소한) 개인적 친분이나 다른 게 있어야 하는데 인사도 딱 한 번 했어요.”
‘삼바’ 사건, 수사팀과 이견 생긴 이유
검찰 특수부는 ‘사단'의 문제만 낳는 것이 아니다. ‘먼지털기’식 별건수사나 기획수사도 검찰 특별수사의 고질적 문제라고 신 위원은 지적한다. 이런 특별수사는 압수수색과 구속영장 청구라는 과정을 거쳐 대부분 기소에 이르게 된다. 그는 무리한 수사의 예로, 자신이 2020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에 수사를 지휘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등에 대한 사건(‘삼바’ 사건)을 들었다.
“제가 갔을 때 이미 1년 넘게 수사가 진행됐고, 기록만 20만 쪽 가까이 됐거든요. 당시 수사를 진행한 사람들이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들이었어요. 저는 혐의 유무는 문제가 없고 (수사해온 대로) 따라가면 되겠구나 생각했죠.” 그러나 그가 언론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과 달랐다. “훨씬 사안이 경미했어요. 비유하자면 처음엔 위암인 것 같아 배를 갈랐는데 위암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폐로 전이된 것 같아서 폐도 갈랐어요. 여기는 확실히 있겠다 싶었는데 뭔가 이상한 것은 있지만 암은 없었죠.”
이 사건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한동훈 3차장검사 시절에 수사에 착수했다.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 쪽은 2020년 6월2일 검찰의 기소 타당성을 판단해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는데, 검찰은 이틀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신 위원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허점이 너무 많았다”며 “하지만 정해진 방향이 있어 돌이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수사팀장 격인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은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이다.
수사팀이 ‘암’이 아닌 것을 ‘암’처럼 여기며 무리한 수사를 한 배경엔 언론 보도도 있었다고 신 위원은 말했다. “언론은 양날의 칼이에요. 처음 수사에 착수할 때는 언론 보도가 상당히 도움을 줍니다. 압수수색을 하려면 근거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없단 말이에요. 그럴 때 언론 자료(기사)가 필요한 거죠. 대대적으로 보도되면 이런 것이 수사 기록에 첨부되고, 여론도 뭔가 있는 것처럼 (형성되고) 그러면 영장이 굉장히 잘 나와요.”
그러나 언론을 이용해 수사를 진행하다 진척이 없으면 되레 공격받게 된다. “수사 과정에서 뭔가 나오면 상관이 없어요. 근데 뭐가 나오지 않으면 언론에서 공격을 시작하죠. 이미 (언론 입장에선) 의혹 제기부터 결론까지 다 내놨으니. 언론이 붙기 시작하면 수사하는 검사들의 운신 폭도 좁아지죠.”
신 위원 자신도 수원지검장 시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 수사를 거치며 정치권과 검찰 내부로부터 비판받았다. 이 사건은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던 2018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위해 선임한 여러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들의 비용이 쌍방울그룹의 전환사채 등으로 대납됐다는 의혹이다. 이 대표는 변호사비로 3억원을 썼다고 밝혔는데, 한 시민단체는 이 대표가 특정 변호사에게 현금과 주식 등 20억여원을 준 의혹이 있다며 2021년 10월 고발했다.
당시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서 신 위원이 있는 수원지검으로 이송됐는데, 이것부터 대검에서 일부러 이 대표의 중앙대 후배인 신 위원이 있는 곳으로 사건을 보낸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신 위원은 “당시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겉으로는 엄정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구했지만 실상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결론이 나길 원하고 언론도 마찬가지였다”며 “정말 빈틈없이 조사했고, 확인할 것은 모두 확인했다고 자신한다. 내가 수사한 바로는 이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강조했다.
“대납했다고 하면 누군가 줬다고 한 내역이 있어야 하거든요. 계좌 추적도 할 만큼 다 했는데 없었어요. 수사팀과 의견 대립도 없었고 정말 공정하고 투명하게 수사했어요. 그래도 저보고 정치검사라고 한다면, 정치검사를 부끄럽게 생각 안 할 것 같아요.” 검찰은 신 위원이 2022년 5월 광주고검으로 떠난 뒤인 2022년 9월 이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무리한 수사 검사 대상 손배소 특별법 만들어야
신 위원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나 정치적 수사를 막기 위해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우선 검사가 자신의 잘못된 수사에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저는 무리한 수사나 기소를 했던 검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특별법을 마련한다면 주춤할 것 같아요. (무리한 수사를) 안 하는 명분이 있는 거죠.”
지금의 법체계에선 검사가 부당한 기소를 남용해도 문제 삼거나 견제할 방법이 거의 없다. 지난 2021년 대법원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공소권 남용했다고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보복성 추가 기소에 관여했던 안동완 검사는 오히려 보복기소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이후 2023년 9월, 국회 본회의에서 안 검사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신 위원은 “검사도 어떤 방식으로든 견제받아야 하고 잘못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며 “특별법도 그런(검사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검찰 수사권 축소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본적으로 수사권을 분리할 필요가 있어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조금 기능을 확대하고, 마약이나 범죄조직은 마약청같이 검경이 협업하는 조직을 만들어서 독립시키는 거죠. 검찰이 직접 수사를 전부 진행하다보면 견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수사청도 만들 필요가 있어요. 이미 여건은 조성됐거든요.”
신 위원은 제도 차원에서 △별건수사를 제한하는 규정 신설 △정치적 사건 수사시 총선이나 대선 전에는 일정 기간 수사 중단 법제화 △시민단체 등이 언론기사 외에 별다른 근거 없이 의혹만 갖고 고발한 경우 각하할 수 있는 규정 마련 등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검찰 사유화를 막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사표를 낸 신 위원의 다음 행선지는 정치권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현재 상태로는 좀 힘들어 보여요. 어떤 제도라든지 이런 걸 통해 되돌릴 수 있다면 정치를 포함해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볼 생각입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신 위원이 재판 중인 사건이란
2020년 7월18일, 한국방송(KBS)은 한동훈 검사장(현 법무부 장관)과 이동재 전 채널에이(A) 기자가 그해 2월13일 부산고검에서 나눈 대화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부산고검 만남 때 이 전 기자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취재 필요성을 언급했고, 한 장관은 돕겠다는 의미의 말과 독려성 언급을 했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KBS는 이튿날 오보였다며 정정하고 사과했다.
검찰은 2023년 1월 신성식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채널A 이동재 기자 취재윤리 위반’ 사건을 취재하던 KBS 기자들에게 허위사실을 수차례 제보했다는 혐의다. 신 위원은 기소 당시 “사실관계나 법리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한 전 검사장이 검찰권을 사적으로 남용한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된다”고 입장문을 냈다. 그러나 KBS 사과와 검찰 기소에 이르는 동안, 그는 이미 없는 사실을 만들어 한 장관을 매도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신 위원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자신이 받는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그는 2월13일치 (부산고검) 녹취록에 관해 “잘 모르고, 보지도 않았다”며 다만 “채널A 진상보고서 내용을 보면 한동훈 검사장이 적극적으로 취재를 독려하는 내용이 언급됐고, 공개가 됐다”고 말했다. 다른 대화를 언급한 것인데 KBS가 부산 녹취록에서 나온 이야기로 못박아 보도했고, 검찰도 신 위원이 부산 녹취록에 해당 내용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고 판단해 기소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KBS 기자와 나눈 다른 발언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입장이나 법리를 설명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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