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와 데이트했다 ‘성추행범’ 몰릴 뻔…‘기사 회생’한 공기업 간부

벌금 500만 원 약식명령에 불복, 국민참여재판 청구…당연퇴직될 뻔
대전지법, ‘강제추행 혐의’ 무죄 선고… “피해자 진술 신빙성에 의심”

법정 내부에 설치된 법원 상징물. 연합뉴스 자료 사진

부하 직원의 소개로 만난 유부녀의 손을 잡았다가 강제추행 혐의로 피소된 공기업 간부가 국민참여재판을 받은 끝에 혐의를 벗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형사13부(부장 하세용)는 지난 11일 열린 A 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 7명도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했다.

대전의 한 공기업 간부인 40대 A 씨는 지난 2021년 8월 9일 오후 세종 시내 한 영화관에서 유부녀인 40대 B 씨를 같은 회사 부하의 소개로 만났다. B 씨가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며 남자를 소개해 달라고 부하 직원에게 부탁했고, 서로 기혼자라는 것을 알고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B 씨의 집 인근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은 뒤, 영화를 보고 집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데이트를 마쳤다. 하지만 금방 B 씨의 남편에게 발각돼 연락이 끊겼고, 당시가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됐다. 하지만 이듬해 4월, A 씨는 B 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피소됐다. 영화를 보던 중 B 씨의 손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고, 엉덩이 부근을 만져 추행한 혐의가 적용됐다.

재판부는 "영화관부터 피해자의 집까지는 걸어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도 피해자는 피고인의 차를 타고 집으로 이동했고, 이후에도 일상적인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며 "피해자의 남편은 당시 추행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 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다섯 달 넘게 지나 고소가 이뤄진 사정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의심이 간다"고 밝혔다. B 씨가 도중에 영화관을 나가거나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끝까지 영화를 함께 본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 씨는 재판에서 "유부녀와 만난 것은 제 잘못이지만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며 "식당에서 손금을 봐줬을 때 왼손도 내미시기에 저한테 호감이 있다고 생각했고, 영화관에서 손을 잡으려 했으나 손을 빼시기에 멈췄을 뿐 추행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했다. 애초 이 사건은 벌금 500만 원의 약식명령 처분이 내려졌으나, A 씨가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공공기관 직원은 벌금 5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연퇴직 처리된다.

A 씨의 법률 대리인은 "피고인은 이름과 주소, 직장 등이 배심원단에 다 공개됐는데 피해자는 아예 법정에도 나오지 않은 채 음성으로만 진술했다"며 정보의 비대칭 문제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성범죄 피해자 보호 원칙에 따라 당연히 가명을 쓰고 차폐막을 설치할 수는 있지만, 모자이크 영상조차도 중계되지 않아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수 있는 간접적인 근거가 되는 피해자의 몸짓이나 제스처 등을 볼 수 없었다"면서 "성범죄 재판에서도 피고인에 대해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기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