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프리즘] 80 나이에
내 나이 이제 내년이면 배안엣나이로 쳐서 80이다. ‘고로롱 80’이란 말이 있는데 정말로 그 80 나이가 되는 것이다. 왜 고로롱 80인가? 건강을 자랑하는 사람도 80 이전에 세상을 떠나는데 병약한 사람이 고롱고롱 앓으면서 80까지 버티며 산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나야말로 그 고로롱 80에 이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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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아닌 10년 단위로 살다 보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 거의 없을 것
」
또 이런 말도 있다. 할망구란 말. 우리가 알기로 그 말은 ‘늙은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인데 정작 그 말은 ‘망구’란 말에서 비롯된 것이란다. 망구(望九)란 ‘90살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81세’를 가리키는 말이란다.
이것도 실은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에게서 들어서 안 말이다. 그렇다면 나도 앞으로 한 해만 잘 버티면 망구의 나이, 81세가 된다. 사람이 모르고 사는 것이 참으로 많거니와 숙연한 마음이면서 고마운 마음이 아닐 수 없겠다.
정작 한 해가 가고 다시금 새해가 온다고 그런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은 젊은이들만이 문제가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말이 또 있지만 어떻게 옛것을 버리고 어떻게 새것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10년 인생을 생각하면서 살았다. 젊은 나이부터 그랬다. 1년, 1년, 단발로 생각하면서 살지 말고 10년을 한 묶음으로 살아 보자. 그 10년 안에 변화되는 나 자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지며 살았다.
참으로 10년이란 시간은 대단한 시간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만큼 10년은 충분히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세월이란 것이다.
내가 시인을 꿈꾼 것은 1960년 고등학교 1학년, 15세 나이였는데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이 된 것은 1971년으로 시에 뜻을 둔 지 11년 만의 일이었다. 그 뒤로도 나는 10년 간격으로 무언가 중요한 일을 겪으며 살았다.
내가 운영하는 ‘풀꽃문학관’만 해도 그렇다. 적산 가옥 한 채를 구매해 시작한 것이 2014년인데 10년 만인 내년에 300평 규모의 건물을 지어 새로운 문학관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내 생각은 그렇다. 사람이 무엇이든 결심하고 그 결심을 10년 동안 실천하다 보면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일이 거의 없노라고. 문제는 지속적인 노력과 실천이다. 그러기에 『그릿(GRIT)』이란 책을 쓴 앤젤라 더크워스 교수도 성공의 인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열정’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새해를 맞아 젊은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한 해 한 해 단발로 생각하면서 살지 말고 앞으로 10년을 한 묶음으로 보면서 살아 보라고. 그것은 짧게 쉬는 호흡이 아니고 길게 쉬는 호흡이 될 것이고 상당히 인내심을 요구하는 삶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매우 눈부신 것이고 매우 만족스런 것이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든 과잉과 졸속에 있다. 속도 과잉. 비교 과잉. 성취 과잉. 소비 과잉. 화분의 화초를 죽이는 것은 물 부족이 아니라 물 과잉이란 걸 우리는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나에게는 이제 그 10년이란 것이 어렵다. 품을 수 있다면 5년쯤 가능할 것이다. 그 안에 정리할 것들을 차분히 정리하면서 미루었던 자잘한 소망들을 이루고 싶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 80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 품고 살아갈 10년이 멀리 부럽다.
나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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