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안 닮아도 ‘존엄한 삶’ 권리 있다
마사 누스바움 지음
이영래 옮김
알레
반려동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동물 생명·생존·복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영향력 있는 법철학자·정치철학자·윤리학자·고전학자·여성학자인 지은이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여전히 정의와 거리가 있다며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새로운 책임과 윤리 의식을 강조한다.
지은이는 인간의 부당한 지배로 온 세상 동물이 곤경에 처하고 있으며, 동물학대가 갈수록 새로운 형식과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밀렵과 사냥’ ‘한때 코끼리와 곰이 어슬렁거리던 서식지에 대한 인간의 침입과 파괴’ ‘동물이 비좁고 격리된 환경에서 일생을 살다가 도살되는 공장 축산 산업의 야만적 잔혹함’은 이미 고전이다. 여기에 더해 ‘일회용 플라스틱에 의한 해양 오염’ ‘청각을 소통수단으로 쓰는 동물에 대한 원유 시추 등 소음공해 피해’ ‘빛에 이끌린 철새의 고층건물 유리창 충돌 사고’ ‘대기 오염 피해’ 등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이 아낀다는 반려동물조차 드물지 않게 방치와 유기의 피해자가 된다.
검은 버크셔 암퇘지는 무리와 함께 지내는 사회적 동물이자 깔끔한 게 특징인데 일생을 걸을 수도, 몸을 돌릴 수도, 누울 수도 없는 철제 도구인 ‘임신 상자’에 갇혀 오물 속에서 새끼를 낳으며 살아야 했다. 노래하는 새로 유명한 핀치새 한 마리가 어느 날 오염된 공기로 호흡기가 손상돼 나무 아래에 쓰러졌다. 북미에서만 매년 수천 마리 철새가 이런 운명을 맞는다고 한다.
지은이는 동물 생존 위기를 유발하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공범이며, 윤리적 부채가 있다고 강조한다. 일회용 플라스틱과 화석연료와 육류를 소비하고, 고층건물에 산다는 것 자체가 동물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선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태계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 연구에 따르면 현재의 멸종률은 자연적 멸종률의 1000~1만 배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포유류의 4분의 1, 양서류의 40% 이상이 멸종 위급이나 위기 상태다. 지은이는 지금 필요한 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실질적 해결책을 찾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자신의 정치철학 이론인 ‘역량 접근법’을 동물에 적용한다. 역량 접근법은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지구적 공간에서 모두가 존엄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소외되거나 주변부로 밀려난 집단을 다양한 잠재력과 역량을 바탕으로 재검토해 정의의 주체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쾌고감수능력(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모든 생물은 지능 등 인간과의 유사성과 무관하게 나름의 삶이 존중받아야 하며, 각각 특유의 형태로 번영하는 삶을 누릴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동물을 위한 정의라는 대의를 받아들이고 윤리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식하면서 다양한 법률과 제도·교육을 여기에 맞춰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을 하등의 도구가 아닌, 인간과 공존·공생하는 존재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문제해결의 길이 열린다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동물법률단체 변호사이던 딸 레이철이 장기이식 뒤 약물내성 곰팡이 감염으로 47세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헌신을 잇는다는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원제 Justice for Animals: Our Collective Responsibility.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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