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세계서 현대까지… 중국의 혼을 찾아 떠나다
김용출 2023. 12. 15. 23:02
갑골문 학자 천멍자 죽음부터
톈안먼 광장의 혁명정신까지
대륙 다니며 격변의 역사 고찰
北과 접한 단둥 방문 여정 ‘눈길’
톈안먼 광장의 혁명정신까지
대륙 다니며 격변의 역사 고찰
北과 접한 단둥 방문 여정 ‘눈길’
갑골문자:중국의 시간을 찾아서/피터 헤슬러/조성환·조재희 옮김/글항아리/3만6000원
청나라가 몰락으로 치닫던 1899년, 베이징에서 관리이자 금석문 학자 왕의영의 친척 한 사람이 학질에 걸렸다. 친척 가족은 의사로부터 한약을 처방받았는데, 약재에는 ‘용골’이라고 불리는 ‘부패된 거북 껍질’이 포함돼 있었다. 친척 사람들은 약방에서 옛날 귀갑을 구입해 빻으려다가 귀갑의 표면에 뭔가 새겨져 있는 것을 알아챘다. 중국 고대문자 같았다. 왕의영이 살펴보니 귀갑에 새겨진 것은 고대문자가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까 상나라 사람들은 왕이나 점쟁이에게 제물을 바치며 장차 발생할 일에 대한 조언을 구하곤 했다. 왕이나 점쟁이들은 평평한 거북의 흉갑 뒤에 작은 홈을 뚫어 약하게 만든 뒤, 표면에 균열이 생길 때까지 불로 그슬렸다. 표면에 균열이 생기면 이 균열을 해독하고, 결과를 갑골 위에 새기곤 했다.
왕의영은 베이징의 약방에서 귀갑을 모두 사들였다. 시국은 불안하게 흘러갔지만, 그는 서둘러 귀갑 표면의 문자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귀갑의 문자가 중국 역사를, 당시에는 허구로 여겨지고 있던 상 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중국학자들은 이것을 ‘갑골문’이라고 불렀다.
…왕이 점괘를 보고 말했다. ‘재앙이 있다. 재난이 닥쳐오리라.’/ 우리가 3000명을 모아 공방을 공격하면 도움을 받을 것이다./ 열흘 동안 재앙이 없을 것이다./ 소 세 마리를 잡고 산록 30마리, 양 30마리를 바쳐 부을에게 제사를 지냈다…
의화단 사태로 모든 것이 빗나갔다. 청나라는 의화단 편에 서서 외국 연합군과 전쟁을 벌였고, 관리였던 왕의영 역시 의지와 무관하게 군대 지휘관으로 의화단을 이끌게 됐다. 연합군에 의해 베이징이 함락하자 그는 독을 마시고 우물에 몸을 던졌다.
왕의영이 죽은 뒤 친구 유악이 대략 1000여 편의 갑골을 넘겨받았다. 의사이자 학자였던 유악은 왕의영의 갑골을 빠르게 공부를 했다. 그리하여 1903년 최초의 갑골문 탁본 서적을 출간했다. 아쉽게도 그 역시 곡식을 외국인에게 밀매했다는 날조된 혐의를 받고 1908년 신장으로 유배된 뒤 그곳에서 숨졌다.
이처럼 재앙이 갑골문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1911년 청나라 군사를 이끌고 반란 진압에 나섰다가 쓰촨에서 목이 잘린 순무이자 갑골문 수집가 단방, 갑골문을 해석해 상나라 왕조의 족보를 만들었지만 쿤밍호에 몸을 던졌던 학자 앙궈웨이, 미국이 약탈한 중국 고대문화재 도록을 펴냈다가 문화대혁명 때 우파로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한 갑골문 학자 천멍자….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상나라 갑골문과 은허 유적을 찾아다니며 전문가와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갑골문의 역사와 의미, 한문 역사 등을 살펴보는 한편, 신장웨이우얼 자치구를 비롯해 홍콩, 대만, 미국 등지를 오가며 중국 고대부터 급변하는 현대까지 복잡다기한 역사적 흐름과 표징을 살펴본다.
책의 구성은 크게 두 줄기로 이뤄졌다. 한 줄기는 갑골문을 중심으로 상나라 은허 유적 발굴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발굴 대장이나 고고학자 등을 인터뷰하면서 갑골문과 한자의 역사를 살피는 한편, 갑골문 학자 천멍자의 비극적인 삶과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각 장과 장 사이에 삽입된 ‘유물 A’부터 ‘유물 Z’까지의 글로 갑골문을 중심으로 역사의 현장과 상처를 헤집는다.
또 다른 줄기는 20세기와 21세기가 교차하는 경계 선상의 시기에 신장웨이우얼 자치구를 비롯해 중국 대륙 각지와 홍콩, 대만, 미국 등지를 찾아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제1장부터 24장까지의 내용이다. 톈안먼 사건 10주년 기념일 취재, 톈안먼 광장의 파룬궁 시위, 푸저우 연해의 밀입국 브로커, 불야성의 도시 선전, 창춘의 전분 제조 공장 탐방, 빌 게이츠가 신혼여행으로 베이징에 와서 마오쩌둥의 개인 기차를 전세 내어 우루무치로 갔다가 미라를 참관했던 일, 난징대학살 기념관의 비둘기 관리인 인터뷰 등등.
특히 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 보는 단둥을 방문한 여정은 흥미진진. 그는 열려진 창으로 도둑을 맞기도 하고 백두산을 유람하기도 한다. 여행기에서 엿보이는 북한의 모습은 아련하다.
“저녁이 되자 개발구는 화려한 조명을 밝혔다. 식당, 가라오케 바, 핀란드식 목욕 휴식 센터로부터 나오는 네온사인과 형광등 불빛이 압록강을 뚫고 지나갔다. 맞은편 북한 국경은 빛 한 점 없는 암흑천지였고, 북한 사람들도 밤에는 수영을 하지 않았다.”
저자는 왜 과거 속으로 더 멀어짐으로써 역사적 의미를 만들려고 했을까. 선과 악, 전통과 현대를 하나로만 해석할 수 있는 것일까. 모든 경계와 정의가 때론 유동적이듯, 시간 역시 유동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이 답해줄 것이다. 원제는 ‘오라클 본(Oracle Bones: A Journey Between China’s Past and Present)’.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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