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위험 몰랐다고 사업주 용서하는 시대 끝나야
누구는 쉽게 죽는다.
여러 활동을 하다보니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형사 재판에 넘겨진 사건들을 유심히 따라가게 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들은 자세히 볼수록 참담한 경우가 많다. 사람이 너무나 어이없는 이유로 죽는다. 11m 아파트 4층 높이에 안전걸이를 걸 안전대가 설치되지 않아 노동자가 추락해 죽었다. 또 다른 노동자는 안전난간대가 부식된 선박에서 일하다 10m 높이에서 추락해 죽었다.
1t 중량물을 들어 올리는 섬유벨트가 적정하중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낡아도 그냥 사용한다. 그러다 벨트가 끊어져 노동자 다리를 덮쳤다. 노동자는 그 자리에서 출혈성 쇼크로 죽었다. 기계의 자동 멈춤 장치가 고장 난 것을 알면서도 노동자더러 쓰게 한다. 노동자 머리가 기계 사이에 끼여 두개골 파열로 죽었다.
충분히 ‘죽음’이 예상되는 장소에서…
이런 사건들을 보다보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사업장에 부담을 가져올 것이라는 말은 도무지 믿지 못하게 된다. 안전대가 없는 10m 높이 작업장, 다 낡아 해진 섬유벨트 밑, 안전장치가 고장 난 기계 앞. 언제든 누군가의 목숨을 잡아먹을 것이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장소들이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죽을 수 있는 자리에 다시 사람을 몰아넣었고 언제든 발생할 수밖에 없던 일이 일어났다.
안전대를 설치하는 것이, 섬유벨트를 교체하는 것이, 고장 난 기계를 쓰지 않는 것이 부담일까? 현장에 이런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 있는지 확인하라는 것이 정말 큰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일까? 언제까지 노동자는 ‘이번 죽음의 장소에서 잡아먹히는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바라는 죽음의 룰렛을 해야 할까?
중대재해처벌법이 2024년 1월26일부터 50명 미만 사업장, 그리고 50억원 미만 공사에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법은 2021년 1월27일 제정됐으니 3년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찾아온 시간이다.
그런데 정세가 심상치 않다. 2023년 9월에는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발의한 50명 미만 사업장, 50억원 미만 공사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미루는 법안이 국회에 올라가더니, 이제 법 적용이 목전에 오자 정부와 여당은 50명 미만 사업장, 50억원 미만 공사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미루는 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힘을 보탰고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더불어민주당도 어째서인지 말이 없다. 그 와중에 중대재해처벌법 소규모 사업장 적용 유예가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거래 대상이 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그 소문이 사실이 될까 두렵다. 이제 겨우 한 달 조금 넘게 남았으니 간절히 중대재해처벌법이 이 고비를 넘기길 바란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사고 사망자 수는 874명이다. 그중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재 적용되지 않는 50명 미만 사업장 소속 사망자는 707명(5명 미만 사업장 제외하면 365명)이다. 고용노동부 통계는 유족급여 승인자를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이 중에서 유족급여를 받을 가족이 없는 사람, 합의 등의 이유로 유족급여 신청이 되지 않은 사람, 사망과 업무 사이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못한 사람, 일하다 죽었지만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 아닌 사람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2023년 벌써 9월 말까지 50명 미만 사업장의 사고 사망자가 466명(5명 미만 사업장 제외하면 264명)이다.
50억원 미만 사업장의 의무, 대규모 사업장과 달라
다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미루면 2024년에 또 2023년만큼 사람이 죽을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추진하는 이유가 50명(억원) 미만 사업장의 준비와 여력 부족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실상 사업주 등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사람이 죽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있거나, 직업상 질병자가 1년 동안 3명 이상 발생해야만 적용된다. 모든 산업재해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사고가 다수에게 반복해서 일어나야 겨우 적용된다.
사업을 진행하며 사람 목숨을 지킬 여력이 없다면 해당 사업은 더는 진행해서는 안 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40년 넘게 존재했지만 항상 이윤에 밀리는 이빨 빠진 법으로 존재했다. 안전보다는 이윤이, 목숨보다는 경영이 중요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어떤 이윤보다 어떤 필요보다 목숨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을 우선으로 두겠다는 염원을 담은 법이다. 입법자인 국민의 의사를 국회의원이 대리해서 제정하는 ‘법’은 무엇을 우선시하고 무엇을 지킬지에 대한 우리의 선택을 반영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최소한의 안전은, 목숨만큼은 지키자는 선택이었다.
정부1여당은 50명(억원) 미만 사업장의 법 적용 유예를 논의하며 ‘사업장에 경영 부담을 준다’는 이유를 든다. 그러나 50명(억원)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의무는 결코 대규모 사업장과 같지 않다. 위험을 확인해야 할 사업 규모도, 이행해야 하는 의무 수준도 분명한 차등이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복잡하고 새로운 의무를 사업장에 부과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칙적으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이미 사업장 규모별로 규정된 의무를 사업주 등이 위반해 노동자 사망 같은 중대한 사고(중대재해)가 일어난 경우 경영책임자를 처벌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의무들에 더해 안전에 관한 종사자의 의견을 듣고 안전에 대한 사업장의 목표 정도를 정하길 요구한다. 이미 여러 사람이 누누이 말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과하다는 주장은 사실 40년 넘게 존재했던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자인하는 것이다.
40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자인하는가
중대재해처벌법이 부담스럽다고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궁극적으로 법이 그 누구도 아닌 경영책임자, 사장이 자기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이 지켜지는지 확인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영책임자가 현장 말단 관리자에게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의 안전 책임을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을 ‘경영상의 부담’을 이유로 이해한 것이 우리 사회였다.
대법원은 2023년 12월7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사망한 김용균씨의 죽음에 원청 대표의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청 대표는 작업장의 위험을 몰랐으므로 고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판결은 왜 중대재해처벌법이 중요한지 보여준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없다면 경영책임자는 안전을 모를수록, 현장에서 멀어질수록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사업장 규모가 어떻든 사업을 운영한다면 자기 사업장에서 죽음이 도사리는 것을 모르는 게 용서되는 시대는 그만 끝내야 한다. 이제 살았어야 하는 사람이 죽는 상황은 그만 끝내야 한다.
강은희 변호사·중대재해학자전문가네트워크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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