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올해 최고의 묘사

2023. 12. 15. 22:3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얼마 전 친정어머니가 벌에 쏘이는 사건이 있었다.

칠십 해 넘게 살아오면서 벌에 쏘이는 일이야 수차례 있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어머니는 혀를 내두르셨다.

이 모든 과정을 당사자에게 과거형으로 전해 들으면서 나는 놀라 나자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물론 사건 자체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어머니의 묘사 때문이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친정어머니가 벌에 쏘이는 사건이 있었다. 칠십 해 넘게 살아오면서 벌에 쏘이는 일이야 수차례 있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어머니는 혀를 내두르셨다. 말도 마라. 죽다 살아났다니까. 겨울답지 않게 기온이 높고 대기도 맑던 지난주 어느 날 어머니는 혼자 집 뒷산에 올랐다. 요즘 유행인 맨발 걷기를 당신도 해보고 싶으셨단다. 경사가 가파른 지점을 벗어났을 무렵 운동화를 벗고 양말을 벗었다. 젖은 낙엽이 깔린 흙바닥은 촉촉하고 폭신폭신하고 기분 좋게 차가웠다. 십 분쯤 걸었을 때였다. 발바닥이 따끔했다. 걸음을 멈추고 발을 살펴보았지만 별 이상 없었다. 잔돌이라도 밟았겠지 하고 다시 걸었다.

여기서부터 어머니의 기억은 띄엄띄엄 끊어진다. 당신은 산길 한가운데 혼절해 있다가, 맨발로 기듯이 산을 내려오다가, 웬 세탁소 앞에 넋 놓고 앉아 있다가, 119 구급차를 탔다가, 병원에서 수액을 맞다가, 다시 눈을 뜨니 집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당사자에게 과거형으로 전해 들으면서 나는 놀라 나자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물론 사건 자체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어머니의 묘사 때문이었다.

발바닥 국소 부위의 통증이 어떻게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지는지, 정신이 어떤 식으로 혼미해지며 시야가 왜곡되는지, 환각 상태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어떻고 그 세상을 감각하는 자신의 몸 상태가 얼마나 낯선지 등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어느새 맨발로 그 산길에 서 있었다. 낙엽 사이에 숨어 있던 벌인지 무엇인지 모를 곤충의 독침이 발바닥을 찌르고 나는 몇 걸음 비척거리다가 주저앉았다. 하늘이 이지러지고 키 큰 나무들이 가지를 구부려 내 몸을 휘감고 춥고 덥고 나는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눈을 끔벅거리며 생각했다. 소설은 내가 아니라 엄마가 썼어야 하는데.

정말이지 독충에 쏘인 사람이 겪는 심신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그보다 더 현장감 넘치고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동시에 독창적인 묘사는 어떤 문학 작품에서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더더욱 아닌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실로 올해 최고의 묘사가 아닌가. 아니, 그보다도 나는 어머니가 죽느냐 사느냐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겼다는데 그것을 걱정하기보다 어머니의 뜻밖의 묘사력에 감탄만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래저래 기가 막힌 일이다.

김미월 소설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