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올해 최고의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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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정어머니가 벌에 쏘이는 사건이 있었다.
칠십 해 넘게 살아오면서 벌에 쏘이는 일이야 수차례 있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어머니는 혀를 내두르셨다.
이 모든 과정을 당사자에게 과거형으로 전해 들으면서 나는 놀라 나자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물론 사건 자체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어머니의 묘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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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어머니의 기억은 띄엄띄엄 끊어진다. 당신은 산길 한가운데 혼절해 있다가, 맨발로 기듯이 산을 내려오다가, 웬 세탁소 앞에 넋 놓고 앉아 있다가, 119 구급차를 탔다가, 병원에서 수액을 맞다가, 다시 눈을 뜨니 집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당사자에게 과거형으로 전해 들으면서 나는 놀라 나자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물론 사건 자체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어머니의 묘사 때문이었다.
발바닥 국소 부위의 통증이 어떻게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지는지, 정신이 어떤 식으로 혼미해지며 시야가 왜곡되는지, 환각 상태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어떻고 그 세상을 감각하는 자신의 몸 상태가 얼마나 낯선지 등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어느새 맨발로 그 산길에 서 있었다. 낙엽 사이에 숨어 있던 벌인지 무엇인지 모를 곤충의 독침이 발바닥을 찌르고 나는 몇 걸음 비척거리다가 주저앉았다. 하늘이 이지러지고 키 큰 나무들이 가지를 구부려 내 몸을 휘감고 춥고 덥고 나는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눈을 끔벅거리며 생각했다. 소설은 내가 아니라 엄마가 썼어야 하는데.
정말이지 독충에 쏘인 사람이 겪는 심신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그보다 더 현장감 넘치고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동시에 독창적인 묘사는 어떤 문학 작품에서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더더욱 아닌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실로 올해 최고의 묘사가 아닌가. 아니, 그보다도 나는 어머니가 죽느냐 사느냐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겼다는데 그것을 걱정하기보다 어머니의 뜻밖의 묘사력에 감탄만 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래저래 기가 막힌 일이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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