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기권 속 ‘우크라 EU 가입’ 길 열렸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14일(현지 시각)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러시아에 항전 중인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협상 개시를 결정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현안인 우크라이나 재정 지원은 불발됐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표결 기권으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길은 터주고, 재정 지원 문제에선 반대 의견을 고수해 타결을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EU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면서도 노골적으로 러시아 편을 들어 온 오르반의 양다리 행태에 혹한기로 접어든 우크라이나에 그림자가 드리웠다는 우려가 나온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저녁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우크라이나, 몰도바의 EU 가입 협상 개시가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몰도바는 우크라이나 서남부에 접한 구소련 국가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다음 표적으로 거론되면서, 친서방 정부가 EU 가입을 적극 추진해 왔다.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협상 개시는 “헝가리의 반대로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뛰어넘은 ‘깜짝 결과’였다. 오르반이 전날까지만 해도 “러시아와 EU 대결 구도를 더욱 악화시켜, EU 전체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헝가리에도 심각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EU의 중요 사안은 회원국들의 만장일치로 결정되기 때문에 한 회원국이라도 반대할 경우 좌초될 수밖에 없다.
오르반 총리는 그러나 이날 표결 직전 회의장을 잠시 비웠고, 그새 나머지 26국 정상들이 이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는 이후 페이스북에 “잘못된 결정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며 기권했음을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신속한 EU 가입에 길을 터준 셈이 됐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끔 오르반에게 회의장 퇴장을 권한 사람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였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반면 오르반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재정 지원 안건에 대해서는 자리를 지키며 반대 입장을 고수, 결국 무산시켰다. 유로뉴스 등 유럽 매체들은 “정상들이 자정을 넘겨 15일 새벽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500억유로(약 71조원) 지원 패키지 통과 문제를 논의했으나 오르반이 철저히 반대 의견을 고수했다”고 보도했다. 미셸 상임의장도 기자회견에서 오르반을 겨냥해 “한 지도자가 우크라이나 지원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EU 정상들은 이르면 다음 달 초 정상회의를 소집해 우크라이나 재정 지원안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회의를 통해 오르반은 일부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EU의 합의에 확실한 반기를 드는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헝가리가 러시아와 EU 양쪽에 모두 메시지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푸틴에겐 “내가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 이렇게 노력한다”며 친러 노선을 부각하면서, EU에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추가적 ‘거래’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르반은 이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언론 탄압과 사법부 장악을 시도하며 EU 정신에 어긋나는 행보를 해왔다는 이유로 지급이 보류됐던 EU의 경제 지원금 총 300억유로의 일부인 102억유로 지급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나머지 198억유로를 놓고 EU와 헝가리가 치열한 ‘협상’을 벌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뿐 아니라, 스웨덴의 나토 가입 절차에도 제동을 걸어놓은 상태다.
스웨덴은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핀란드와 함께 중립국 노선을 포기하고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이에 튀르키예가 스웨덴이 반튀르키예 테러 단체를 비호한다며 반대 입장을 보이자 헝가리도 튀르키예 편에 섰다. 유로뉴스는 “헝가리는 이처럼 유럽의 핵심 사안에 계속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록 재정 지원은 무산됐지만, 우크라이나의 가입 협상 개시가 결정된 것은 우크라이나 안보를 위한 큰 성과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주요 외신들은 “전쟁 장기화로 서방이 우크라이나 지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 나온 매우 고무적 결과”라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X에 “우크라이나의 승리이자, 유럽 전체를 위한 승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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