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기는 지구…그럼에도 인간은[책과 삶]

김한솔 기자 2023. 12. 15.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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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지구를 걷다
에린 스완 지음·김소정 옮김
아르테 | 536쪽 | 2만3800원

<사라진 지구를 걷다>는 태풍으로 지구의 대부분이 물에 잠겨버린 상황을 배경으로 한 SF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7대 가족이다. 물에 잠기기 전 풍요로운 지구에서 물소를 잡으며 살던 사냥꾼 삼손, 미래를 예견하는 듯하지만 조현병을 앓으며 그림으로만 생각을 표현하는 삼손의 손녀 비, 물에 잠길 당시의 지구에 살던 비의 아들 폴, 한때 지구였던 행성에서 두 명의 삼촌과 함께 살고 있는 소녀 달의 이야기가 200년에 걸쳐 느리게 전개된다. 긴 시간만큼 소설의 공간적 배경도 1873년의 캔자스 대평원에서 1975년의 캔자스시티로, 2027년의 뉴올리언스 수상도시에서 2073년의 화성으로 쉴 새 없이 바뀐다.

소설에서 지구가 수차례의 태풍으로 물에 잠기는 시점은 2017년이다. 비의 아들인 폴은 아내 에바, 딸 케이와 함께 살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지구 모든 대륙의 가장자리가 물에 잠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오키나와, 홍콩, 방글라데시 남부 해안, 캘리포니아 해변 등이 사라진다.

소설은 재난 상황을 극적인 사건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출근하는 자동차 안에서 뉴스를 들은 폴은 어머니 비가 남긴 “홍수인 것처럼 소용돌이치는 파란색” 그림을 떠올리며 불안해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동안 인류가 겪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 쓰나미 같은 대형 재난들을 예로 들며 이번에도 인간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10년 뒤, 인간은 수상도시에서 살아가고, 그로부터 다시 36년 뒤에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다.

친절한 소설은 아니다. 여러 시공간을 오가며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서사는 복잡하다. 세상이 종말을 맞은 상황에서조차 인간은 ‘생존’ 외 다른 것을 두고 고민하는 존재라는 것이 시적인 문체로 담겨 있다. 에린 스완의 장편 데뷔작이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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