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소고기 밀매는 공개 처형인 나라

이용수 논설위원 2023. 12. 1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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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일본인이 소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1872년 메이지 유신 이후다. 불교에 심취한 덴무 천황이 675년 선포한 육식 금지령 탓에 1200년간 소뿐 아니라 모든 고기 맛을 모르고 살았다. 불교와 함께 농업에 필수적인 소를 지키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일본인의 왜소한 체격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있다. 스키야키, 돈가스, 규동은 근대의 산물이다.

▶조선 시대에도 소를 도축하는 게 불법이었다. 이를 우금(牛禁)이라 했다. 농업에 생사가 걸린 나라에서 소는 없어선 안 되는 생산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엔 모든 임금 대에 걸쳐 우금령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몰래 도살하는 일이 빈번했다. 적발되면 일가족 전부가 변방으로 유배 가는 전가사변(全家徙邊)이란 벌을 받았다. 이것이 갑오개혁 때까지 계속됐다.

▶북한의 농촌은 조선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협동농장별로 농기계가 보급되긴 했지만 기름도 부족하고 작동하는 기계도 드물다. 교체할 부속품이 없다. 비료가 없으니 갈탄을 태우고 남은 재를 뿌린다. 매년 1월이 되면 지방 당에 퇴비를 상납하기 위해 온 가족이 아침마다 동네 변소를 뒤져 인분을 찾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변소를 지키는 당번도 있다. 21세기에 이런 농업을 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런 북에서 소는 과거 조선이나 일본과 같이 필수적 생산 수단이다.

▶그러니 북한에는 당연히 우금령이 있다. 그런데 조선 시대보다 처벌이 더 가혹하다. 소를 몰래 잡아먹었다간 경제사범이 아니라 정치범 취급을 받는다. 죄질에 따라 처형당하기도 한다. 북엔 소를 도축·유통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다. 정육점에도 ‘국내산’ 소고기는 없다. 부유층이 사 먹는 중국산 수입 소고기만 있다. 식용 소는 호위총국이 운영하는 1호 농장에서 길러 고위 당 간부 등 특권층에만 공급된다. 그 나머지 소들은 모두 협동농장에서 영농 목적으로 기른다. 이 소가 병들거나 죽으면 농장 간부들 차지가 된다.

▶몇 달 전 북한에서 소를 대규모로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로 9명이 공개 처형당했다고 북한 전문 매체들이 보도했다. 멀쩡한 소가 아니라 병들어 죽은 소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도 자연사한 소는 관아의 허가를 받아 도축·매매가 가능했다. 우금령 자체도 농번기가 아닐 땐 탄력적으로 적용했다. 소 한 마리를 몰래 도축해 팔았다가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가고 주범은 처형됐다는 탈북민 증언도 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선 사람보다 소 목숨이 더 귀하다”고 말한다. 기막힌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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