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가자 작전 변경 '총력 압박'…이스라엘 변화 이끌까

바이든 공개 비판 이어 외교안보 수장·국방장관 연이어 이스라엘 방문

미국이 이스라엘에 외교안보 수장을 보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를 더 정밀한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도 이스라엘을 찾을 예정으로 미국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 백악관은 14일(이하 현지시각)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쟁 내각,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 차치 하네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 등을 만나 하마스 격퇴,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설리번 보좌관이 이번 방문에서 "고강도 소탕 작전을 하마스 잔당에 대한 저강도 정밀 작전으로 전환을 위한 목표, 단계, 설정 조건"을 포함해 이스라엘 군사 작전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관련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저강도 작전으로의 전환이 "가까운 미래"에 이뤄질 가능성이 논의됐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시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같은 날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을 요구한 미 당국자 4명을 인용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이스라엘이 약 3주 안에 더 정밀한 전술로 전환하길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스라엘 쪽이 제시한 일정은 미국이 원하는 것보다 늦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와 <로이터> 통신을 보면 이틀 전 이스라엘이 "무차별 폭격"으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잃고 있다고 경고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 메릴랜드주 국립보건원(NIH)을 방문해 이스라엘이 연말까지 가자지구 공격 규모를 축소하길 원하냐는 질문을 받고 이스라엘이 "민간인의 생명을 구하는 방법에 집중하길 바란다. 하마스를 쫓는 것을 멈추지 않되 더 조심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주문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군사 전략 변경 관련 압박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 지난달 말 임시 휴전 기간 동안엔 익명의 미 당국자들을 인용한 미국이 이스라엘에 휴전 종료 뒤 더 정밀한 전략을 촉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물밑에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전투 재개 뒤에도 대규모 폭격이 이어지며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자 이달 초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이 공개적으로 민간인 보호 촉구 발언에 나섰다.

이번주 들어선 바이든 대통령의 이례적 경고에 이어 설리번 보좌관이 네타냐후 총리를 만났고 다음주엔 오스틴 장관과 찰스 브라운 미 합참의장이 이스라엘을 방문할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이스라엘에 이 지역 분쟁 마무리를 시작하게 하기 위한 총력 압박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4일 설리번 보좌관과의 회담 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가 제거되고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을 어느 때보다 굳건히 했다"고 밝혀 특별한 입장 변화를 드러내지 않았다.

미 CNN 방송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방부는 이날 갈란트 장관이 설리번 보좌관과의 회담에서 가자지구 전쟁이 "몇 달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하마스 습격 관련 네타냐후 총리 책임론이 팽배한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현재 여론의 지지가 높은 전쟁 수행 방식을 변경할 국내 정치적 유인이 적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지원하는 무기 등 군사적 지원 제한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민주당 내부와 인권단체 사이에서도 이스라엘이 민간인 보호를 위한 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무기 제공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13일 CNN은 미 당국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에 조건을 붙일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무기 제공에 관한 제한을 설정할 경우 이스라엘의 하마스를 추격하는 능력이 약화될 뿐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이 친이스라엘 로비 단체와 충돌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미 당국자들이 저강도 작전으로 전환 뒤에도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추격하려는 노력은 몇 달 간 지속될 것이라며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 쪽 의견이 미국과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습격해 주로 민간인인 1200명을 죽이고 240명을 인질로 납치한 뒤 가자지구 전면 봉쇄에 들어갔던 이스라엘이 이후 인도주의적 통로 개방에 동의한 점 등을 들어 미 당국자들은 이스라엘이 결국 미국의 설득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기도 하다.

설사 이스라엘이 미국의 설득으로 작전을 변경하더라도 국제사회가 촉구 중인 휴전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미 가자지구에서 분쟁이 시작된 10월7일부터 이달 14일까지 1만8787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자지구 인구의 85%인 190만 명이 난민 생활 중인 상황에서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이 구호 트럭을 덮쳐 음식을 탈취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필립 라짜리니 집행위원장은 1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틀 전까지 머문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이 구호 트럭을 멈춰 세우고 음식을 탈취"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이틀, 사흘 굶은 사람들을 점점 더 많이 만난다. 이것이 주민들이 종종 (구호) 트럭을 세워 음식을 내려 그 자리에서 먹는 이유"라며 가자지구에 기아가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도주의적 휴전 및 가자지구에 대한 포위 해제를 촉구했다. 라짜리니 집행위원장은 "현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구호 트럭 100대, 200대가 아니다. 가자지구에 대규모의 중단 없는 무조건적인 생필품 유입이 필요하다. 이것이 포위의 부정적 영향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호소했다.

▲14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을 방문한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 이스라엘 총리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