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人] 누구나 꿈꾸는 드림카 ‘페라리’의 디자인 수장 ‘플라비오 만조니’

김동진 2023. 12. 1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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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품질의 상향 평준화로 디자인은 브랜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내·외관 디자인이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면, 제품 성능이 좋더라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에 각 제조사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가치를 다양한 라인업에 일관적이고 창의적으로 전달할 디자이너 영입에 필사적입니다.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뛰어난 디자이너들은 이같은 고민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지 월간 연재 코너인 [자동차 디자人]을 통해 살펴봅니다.

페라리 SF90 스트라달레 스케치 / 출처=페라리

[IT동아 김동진 기자]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Fererari)’는 엔초 페라리(Enzo Ferrari)가 이탈리아 마라넬로(Maranello)에 설립한 자동차 제조 회사다. 그는 1929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 레이싱 팀의 명칭을 1947년에 페라리 S.p.A 바꿔 자동차 제조 회사로 등록했다. 같은 해 페라리의 이름을 단 첫 번째 차량인 ‘페라리 125 스포츠’로 브랜드 시작을 알린 이후 최근 발표한 브랜드 최초 4도어 4인승 차량, 페라리 푸로산게(Ferrari Purosangue)까지, 슈퍼카 브랜드로 인지도를 높였다. 이 자동차 제조사는 1950년 포뮬러1(F1) 탄생 이래 매년 출전하며 최다 우승을 기록, 스포츠카뿐만 아니라 레이싱으로도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소유하고 싶은 드림카 '페라리'의 디자인 수장, '플라비오 만조니(Flavio Manzoni)' 최고 디자인 책임자(Chief Design Officer, 이하 CDO)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페라리 812 GTS를 스케치하는 플라비오 만조니의 모습 / 출처=페라리

건축가 아버지의 영향으로 다양성과 조화의 원칙 배운 유년시절

1965년 1월 이탈리아 누오로에서 출생한 플라비오 만조니는 건축가이자 란치아(Lancia) 자동차의 열혈 팬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년시절 조화의 원칙과 다양성을 배웠다고 회상한다. 가구부터 고급 주택까지 매일매일 떠오르는 영감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점토와 플라스틱 등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활용한 것이 그 예다. 특히 스케치 능력이 뛰어난 아버지 덕분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그리면서 성장했다고 전했다.

플라비오 만조니는 유년시절 새로운 자동차를 상상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그리는 것을 즐겼다. 역시 풀비아(Fulvia) 세단과 쿠페를 소유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해당 차량을 동경하며 그 조형미와 실내에서 나는 냄새까지 사랑했다고 덧붙였다.

플라비오 만조니의 아버지 / 출처=플라비오 만조니

아버지의 선물로 이탈리아 가르잔티(Garzanti) 출판사에서 출간한 어린이용 교육 시리즈 “I Cinqueci(The Five라는 뜻)”를 접했던 경험도 그가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책에 등장한 디자이너 ‘시드 미드(Syd Mead)’의 삽화뿐만 아니라 진보와 혁신을 다룬 내용에 감명받아 책을 외울 정도로 여러 번 읽었다고 한다. 책에서 묘사된 초현대적 기계들이 곧 우리에게 다가올 현실처럼 보였던 그에게 1970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페라리 512S 모듈로(Modulo) 컨셉트카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페라리 512S 모듈로(Modulo) 컨셉트카 / 출처=페라리
플라비오 만조니가 16살이던 당시 그렸던 자동차 스케치 / 출처=플라비오 만조니

성인이 된 그는 피렌체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다. 플라비오 만조니는 전공을 결정해 진학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자동차 마니아이자 디자이너가 되려는 이들과는 매우 다른 전공과 접근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동차 디자인에 집착하면, 그 형태와 클리쉐(진부함)에 갇힐 위험이 있다고 판단, 가장 총체적이면서도 다른 학문과의 접목으로 다양한 비전과 연구방향을 지닐 수 있는 건축학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대학시절 킬레 카스틸리오니(Achille Castiglioni), 지오반니 클라우스 코닉(Giovanni Klaus Koenig), 로베르토 세고니(Roberto Segoni), 레모 부티(Remo Buti), 아돌포 나탈리니(Adolfo Natalini) 등 이탈리아 디자인과 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이들과 만나 다양한 분야를 지속해서 탐구하고 자동차 외에 다른 영역에서도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란치아 입사 후 폭스바겐그룹 거쳐 페라리 입사...페라리 스타일링 센터 창립 주도

플라비오 만조니는 대학 졸업 후 1993년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사 ‘란치아’에 입사했다. 이후 1999년, 바르셀로나에서 세아트의 인테리어 디자인 책임자로 일하면서 콘셉트카 살사 에모시온(Salsa Emoción)과 탱고(Tango)의 인테리어, 양산차인 알테아(Altea)와 레온(León)의 인테리어를 디자인했다.

2001년에는 란치아의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돼 그란투리스모(Granturismo), 스틸노보(Stilnovo), 풀비아 쿠페(Fulvia Coupé)의 연구 콘셉트를 이끌었다. 양산차 입실론(Ypsilon)과 무사(Musa)의 개발 또한 지휘했다. 2004년에는 피아트, 란치아 및 LCV 디자인 디렉터로서 그란데 푼토(Grande Punto), 누오바 500(Nuova 500), 피오리노(Fiorino), 쿠보(Cubo) 프로젝트를 책임지기도 했다.

플라비오 만조니가 란치아 재직 당시 그렸던 스케치 / 출처=플라비오 만조니
플라비오 만조니가 란치아 재직 당시 그렸던 스케치 / 출처=플라비오 만조니

플라비오 만조니는 2006년, 폭스바겐그룹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디렉터로 자리를 옮기면서 피아트 그룹을 떠났다. 이후 그는 폭스바겐그룹에서 스코다, 벤틀리, 부가티의 디자인 작업뿐만 아니라 폭스바겐 브랜드의 새로운 비전과 새로운 형태적 언어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이 때 콘셉트카 ‘업!’, ‘스페이스 업!’, ‘스페이스 업! 블루’, ‘E-Up!’뿐만 아니라 블루스포츠 로드스터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룹 디자인 총괄 책임자인 발터 드 실바(Walter de Silva)의 지휘에 따라 시로코(Scirocco), 골프 MK VI 및 VII, 폴로 MK VI, 비틀 MK II, 투아렉 MK II 등 일부 폭스바겐 모델의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5년 레드닷 어워드를 수상한 플라비오 만조니 / 출처=페라리

플라비오 만조니는 그간의 작업으로 유럽 자동차 디자인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업적을 남긴 후 매력적인 기회를 얻는다. 페라리 최초의 인하우스 스타일링 센터 설립을 주도해달라는 루카 디 몬테제몰로(Luca di Montezemolo)의 제안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자동차 업체로부터 받은, 아주 도전적인 제안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제안을 수락한 플라비오 만조니는 2010년 페라리로 이직, 스타일링 센터 디렉터로 임명됐다. 새로운 인하우스 디자인센터 설립과 모델 제작 공간, 가상 디자인 랩, 고급 전문가 및 전문 디자이너 채용 등을 포함, 페라리 디자인 부서를 종합적으로 조직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페라리 스타일링 센터 스케치 / 출처=페라리

페라리 스타일링 센터는 페라리의 모든 양산차를 비롯해 라페라리 하이퍼카의 스페셜 ‘XX 프로그램’ 버전인 ‘FXX-K’와 ‘F12 TRS’, ‘458 MM’, ‘J50’, ‘P80/C’, ‘오몰로가타’, 최근의 ‘KC23’ 등 수많은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한정판 ‘몬자 SP1’과 ‘SP2’, ‘데이토나 SP3’ 등 새로운 ‘아이코나’ 시리즈도 그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 이처럼 특별한 페라리 모델의 디자인은 슈퍼카이자 레이싱 선두주자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공고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자랑스러운 모델 라페라리…트랙 버전 디자인 강렬한 인상 남겨

플라비오 만조니는 디자인한 수많은 차량 중 가장 가장 자랑스러운 모델로 ‘2013 라페라리’를 꼽았다. 그가 페라리로 자리를 옮긴 직후 팀이 백지상태에서 시작한 첫 번째 신규 프로젝트이므로, 애착을 가진 모델이라고 전했다.

페라리 라페라리 아페르타 / 출처=페라리
플라비오 만조니가 페라리 입사 후 그린 첫 스케치 / 출처=페라리

그는 라페라리를 기반으로 제작한 트랙 버전 차량 ‘페라리 FXX-K’도 언급했다. 그간 도로 인증 규정으로 인해 라페라리에서 제한받았던 창의적 자유를 XX 프로그램을 위한 트랙 버전인 페라리 FXX-K에서 펼쳤던 기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페라리 FXX-K를 살펴보는 플라비오 만조니와 디자인팀 / 출처=페라리

플라비오 만조니는 FXX-K를 작업하며 스타일링 센터와 기술 부서의 엔지니어 및 공기역학 전문가들 간 유기적인 협업을 경험했다. 트랙 버전 차량에 필요한 모든 공기역학적 성능을 충족하면서도 매혹적인 형태를 디자인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해당 프로젝트로 2016년, ‘황금콤파스상’을 수상했다.

“기술과 혁신에 대한 연구 선행해야 지속 가능하고 좋은 디자인 탄생”

플라비오 만조니는 오래 지속되는 동시에 시간이 지나도 좋은 디자인은 기술과 혁신에 관한 연구를 선행해야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기본적인 디자인 원칙, 즉 조화의 원칙에서 모든 작업은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디자이너의 업무란 단순한 스타일링이 아니라 모든 새로운 프로젝트의 기초가 되는 비율과 균형, 볼륨과 모양의 조화에 관한 연구라고 규정한다.

이는 페라리의 디자인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플라비오 만조니는 새로운 페라리 디자인이 탄생할 때마다 창의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주도하는 정신이 항상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혁신에 대한 깊은 탐구, 모든 요소의 세련미, 진부한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 엄격함 등이 그 예다.

페라리 탑 디자인 스쿨 챌린지에서 심사 중인 플라비오 만조니 / 출처=페라리

그는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자율주행 시대로 넘어가면서 날로 복잡해지는 자동차를 작업하는 디자이너는 기술과 혁신에 대한 지식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기역학부터 열 관리, 트랙 성능에 이르기까지 전반에 걸친 개선을 항상 고려하며 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자동차 디자이너는 거의 완전한 창작의 자유를 누렸기 때문에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으며, 특히 페라리처럼 복잡한 기술을 담아내는 자동차 제조사의 디자이너는 모든 설계의 기반이 되는 기술적 측면에 대한 지식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페라리 296 GTB 목업을 살펴보는 플라비오 만조니와 디자인 팀 / 출처=페라리
페라리 296 GTB 실내 / 출처=페라리
페라리 296 GTB에 탑승한 플라비오 만조니 / 출처=페라리

플라비오 만조니는 자동차 디자인의 시작이란 엔지니어링 접근 방식을 완전히 이해한 후, 그것을 프로젝트의 본질을 함축하는 형태로 변환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그는 2019 ‘SF90 스트라달레’를 그 예로 꼽았다. 비율 측면에서 보면, 미드리어에 탑재된 V8 엔진과 하이브리드 구성 요소 덕분에 ‘캡-포워드’ 효과(엔진이 운전석 뒤에 있는 미드십 레이아웃을 강조하는 형태)와 길고 건축적 형상을 지닌 후면 부위를 디자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2019 SF90 스트라달레를 스케치하는 플라비오 만조니의 모습 / 출처=페라리

페라리는 급변하는 시장에 맞춰 2025년에 출시할 전기차에 집중하고 있다. 플라비오 만조니는 새로운 세대의 페라리를 만드는 일을 브랜드만의 스타일 언어를 재정의할 기회로 여긴다. 그는 지금의 변화를 완전히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심지어는 예상치 못한 형태를 디자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기회로 보고 있다.

기존의 것을 모두 흔들어버리는 기술 혁신이 일어날 때, 특히 현재와 같은 중대한 기술 전환기에는 기술뿐만 아니라 형태와 유형학적 측면에서도 혁신을 이룰 특별한 기회가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플라비오 만조니는 형태와 기능 간 일관성이라는 페라리의 기본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이전 모델과는 확연히 다른 개체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신차를 디자인할 계획이다. 그러면서 예술적이고 조형적인 접근방식을 계속 유지해 모든 신차가 페라리임을 즉시 알아볼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플라비오 만조니 페라리 최고 디자인 책임자 / 출처=페라리

끝으로 플라비오 만조니는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제언을 남겼다.

그는 “호기심을 키우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해 시야를 계속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씨앗인 영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얻을 수 있다. 한 분야에서 개발되고 있는 솔루션이나 혁신이 다른 분야에서 적용돼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 뜻밖의 재미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어 “미적 분야에서 어떤 기준을 뛰어넘는 탁월함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큰 노력과 끈기 있는 세심함,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박차를 가해야 한다. 끈기, 결단력, 의지력, 그리고 워커홀릭이 되는 것, 이 모두가 이 길을 추구하는 데 필수적”이라며 “결과에 겸손하고 그것에 완전히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겸손하고 단정한 사람만이 탁월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완벽이란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창조의 과정 중에는 언제나 불가피하게 타협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더 높은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글 / IT동아 김동진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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