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리더의 소통] 연말에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는 이유

2023. 12. 1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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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모임도 '돈과 인맥' 위주로
부와 허세 좇는 서울의 풍경은
100년 전 뉴욕의 모습과 닮았다

송년회로 시끌벅적한 연말이 되면 습관적으로 한 권의 책을 꺼내 다시 읽는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바로 그 책이다. 미국 문학의 한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듣는 소설인데, 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마무리 가운데 하나라는 마지막 문장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로버트 레드퍼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당대 최고의 배우가 주연으로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소설 원작은 훔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킬 정도로 매력적인 문장들로 가득하다. 개츠비에게 집착의 대상이 된 미모의 여성 데이지를 파티장에서 만났을 때 그녀가 던지는 영혼이 없는 립서비스 장면은 뛰어난 관찰력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문장이다. "'너무 행복해서 몸이 다 마비될 지경이에요.' 그녀는 마치 뭔가 아주 재치 있는 말이라도 한 듯이 다시 웃고는 잠시 내 손을 잡고 이 세상에 당신만큼 보고 싶었던 사람은 없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늘 이런 식이었다."

밤마다 개츠비의 집에서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샴페인을 사이에 두고 부나비처럼 오고 가며, 어딘지 굶주린 듯한 표정으로 "적어도 눈먼 돈이 가까이 있음을 꿰뚫어 보고 말만 어떻게 잘하면 그 돈이 자신의 것이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라는 대목은 인맥과 돈 되는 곳만 찾아다니는 가성비 위주의 송년회 풍경을 꼬집는 것 같다. 파티장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작은 단추를 200번만 누르면 30분 안에 200잔의 오렌지 주스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묘사는 이후 후배 작가들에게 적지 않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모임이나 파티가 불편한 사람들의 심리를 겨냥한 문구도 종종 만난다. "난 성대한 파티가 좋아요.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잖아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친구이기도 한 피츠제럴드를 가리켜 재즈 시대의 작가라 부르는데 그것은 과도함의 시대, 풍요의 시대, 풍자의 시대를 말하는 것으로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한 시대정신을 비꼬는 표현이기도 하다. 주인공 제이 개츠비는 '은빛 후춧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을 바라보는' 이상주의자였지만, 물질적 성공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과 좌절도 크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질된 미국의 꿈의 상징으로 전락한다. 그런 그의 모습은 '개츠비적인(Gatsbyesque)'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근면하고 성실하고 정직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전통적 미국의 꿈이 아니라 변질된 이상과 욕망을 의미한다.

소설의 시대와 공간적 배경은 1922년 뉴욕과 롱아일랜드지만, 100년 뒤인 지금 서울 한복판의 상황과 기가 막힐 정도로 오버랩돼 겹친다. 전통 부자와 신흥 부자의 대비, 허세와 위선, 방향감각을 상실한 리더들, 도덕적 혼란과 무책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롱아일랜드와 뉴욕 맨해튼에서 맞는 황혼 장면 묘사가 유독 많다. "매혹적인 대도시의 황혼 녘에 때때로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고독감을 느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마음에도 없는 송년회 참석을 위해 한강을 건널 때마다 갖는 한국 리더들의 고독한 심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소설 속 미국 동부와 중서부의 대조는 서울과 지방, 강남과 강북의 대비 같은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미국인의 삶에는 오직 1막만이 있을 뿐 2막은 없다"는 명언을 남긴 이도 피츠제럴드였다. 그건 지금 퇴직을 앞둔 한국 직장인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 속에서 용기와 위로를 발견하게 되는데, 위대한 파이널 라인(final line) 즉 마지막 문장의 힘이다.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살아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손관승 리더십과 자기 계발 전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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