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문제로 한국 떠날까 고민…R&D예산 삭감, 축적한 역량 무너져"

박건희 기자 2023. 12. 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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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사이언스 얼라이브…청년과학자들의 직설
2023년 사이언스 얼라이브 오픈토크에 패널로 참가한 김현수 KIST 박사후연구원, 강주혁 KIST 학생연구원, 김승환 포스텍 교수(좌장), 이재훈 IBS 박사후연구원, 김예슬 포스텍 학생연구원. KIST 제공

15일 경북 포항 포스텍에서 열린 '2023 사이언스 얼라이브' 오픈토크의 패널로 참가한 학생연구원, 박사후연구원들은 이제 막 과학자의 길을 시작했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함에서 오는 불안감과 싸우고 있다"며 "이공계가 좀 더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모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초과학연구원(IBS), 포스텍에서 '제1저자'로 활약중이지만 연구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비롯해 연구자로서 느껴지는 일자리의 불안함을 어떻게든 이겨내야하는 상황이다.

김예슬 포스텍 학생연구원은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사회적으로도 유용하고 과학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연구 주제를 찾는 게 어렵다"고 입을 뗐다. 김 학생연구원은 메타물질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노준석 포스텍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교수의 연구실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최고의 교수 아래서 고등학생 때부터 관심있어했던 주제를 연구하고 있지만 어떻게해야 더 좋은 연구자로 거듭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KIST 생체재료연구센터에서 파견학생제도를 이용해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강주혁 학생연구원은 "공학자라는 직업을 평생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연구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런 그에게도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불안함은 크다. "박사 과정을 졸업하고 박사후연구원이 되면 어느 연구실에 갈지, 그 이후엔 잘 할 수 있을지, 무엇보다 졸업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등 막연한 미래에서 오는 불안감이 가장 큰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한편 이미 박사후연구원으로서 활발하게 뇌졸중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이재훈 IBS 인지및사회성 연구단 연구원의 고민은 고용의 불안정이다. 어린 두 딸이 있는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자신의 연구를 이끌어가는 한 명의 연구자로서 가족의 행복과 연구 성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규직'이 아닌 연구자로서는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기저에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올 하반기 과학계를 강타한 정부의 연구개발(R&D)비 감축안으로 불안감이 더욱 극대화됐다고 말했다. 

KIST 첨단소재본부에서 폐에너지를 재활용하는 기술인 '에너지 하베스팅'을 연구하는 김현수 박사후연구원은 예산 감축안으로 자신이 속한 본부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며 "가장 많은 타격을 받는 사람은 박사후연구원"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김 연구원의 연구실만해도 김 연구원을 제외한 모든 박사후연구원이 내년 당장 KIST를 떠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선임·책임연구원이 전체 연구를 총괄하고 이끄는 직책이라면 박사후연구원은 최전선에 일하는 '중대장'역할과 같다"이라며 "박사후연구원이 모두 빠져나가면 그들 밑에서 지도받던 학생들도 방황하게 되면서 연구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IBS에서 연구할 날이 약 1년 정도 남았다. R&D 예산 감축안 이후 그는 "미국으로 연구를 하기 위해 떠나야할 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애초 좀 더 좋은 연구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날 계획이었던 이 연구원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유학 계획을 접었다. 그러다 만난 IBS에서의 연구는 기대 이상이었다. 꿈꿔오던 연구를 한국에서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단순히 1년 예산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과학계가 조금씩 쌓아온 연구가 무너지는 것 같다"고 뒤바뀐 상황을 표현했다. 이 연구원은 "생계를 걱정하는 건 모든 박사후연구원이 비슷할 것"이라며  "지금 상황이 불가항력처럼 느껴지고, 외국으로 나가야할지를 고민하게 된 상황이 슬프다"고 토로했다.

김예슬, 강주혁 학생연구원은 이번 삭감안으로 "이공계로 진학하려는 중고등학생의 의지가 꺾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 학생연구원은 "이공계에서도 의학 계열 진학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는 상황에서 과학자·공학자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중고등학생의 진로 고민에 그 노력이 반영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 학생연구원은 "안정적인 전문직을 원하는 사회보다 이공계 학생이 좀 더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좌장을 맡은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과학적 성과의 기저에는 제1저자로 참여하고 있는 청년 과학자의 창의적인 도전이 있다"며 "젊은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에 자부심을 갖고 다양한 연구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건희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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