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학자금에 쓸 돈인데 반토막”… 홍콩 ELS 투자자들 여의도 금감원 집결
은행 판매 잔액 절반 이상 손실 구간
“불완전판매한 은행들 책임져라”
“ELS 원금 전액 보상하라” 촉구
“저는 주부입니다.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 2021년 2월 가입했고 3500만원을 투자했습니다. 통장도 들고 왔어요. 내년 2월 만기예요. 저는 투자자 성향 분석 결과 1차에 가입이 거절됐었어요. 은행 직원이 전화 오더니 다시 본사에서 전화 오면 ‘네, 네’만 하라고 하더라고요. 주식, 펀드랑은 완전 다른 거고 안전하다고 했어요. 아이 학자금에 쓸 돈인데 원금 절반이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잠이 안 옵니다.”
“저는 ELS에 처음 가입한 투자자는 아닙니다. 은행이 재투자자에 대해 갈라치기를 하는데, 재투자자라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수십 년 거래하던 은행에서 ‘예금만큼 안전한 투자 상품이다’라고 추천해 처음 가입하고 6개월, 1년 만기가 오면 상환하라고 전화가 와 사인하러 가서 또 다른 상품 추천받아 가입하고… 은행 직원들이 안전하다고 하니까 믿고 계속 투자한 거예요. 그런데 재투자자는 마치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나오는데, 너무 화가 나 집회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15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모인 홍콩H지수를 연계 ELS 투자자 임모(48)씨, 정모(50)씨는 분통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약 50~60여명의 투자자들은 검은색 우비를 입고 ‘불완전판매’라고 적힌 빨간색 머리띠를 두른 채 서 있었다. 투자자들은 ‘ELS 원금 전액 보상하라’ ‘나라 안 망하면 괜찮다더니 이제 와서 발뺌이냐’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불완전판매로 인한 피해를 보상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 주가로 구성된 홍콩H지수는 지난 3년여간 1만2000대에서 5600대로 반 토막이 났다. 홍콩H지수에 연계된 ELS 상당수는 손실을 볼 수 있는 녹인(Knock-in·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약 16조원)의 절반인 8조3000억원어치가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온다. 이 중 손실 영향권에 진입한 물량이 약 4조7000억원(56%)에 달한다.
투자자들은 이날 결의문을 통해 “이번 사태는 은행이 홍콩 H지수가 2016년 녹인을 찍은 적이 있는 위험한 상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고의로 고객에게 설명하지 않는 등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어기고 부당하게 권유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는 전적으로 실적을 올리는 데만 급급한 시중은행권의 치졸한 욕심 때문에 발생했다”며 “불완전판매로 인해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 금액에 대해 원금 전액을 보상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또 “금융 당국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일으킨 시중은행을 관리·감독함은 물론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다시는 동일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조치해 달라”고 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투자자 다수는 고령자인 것으로 보였다. 집회에 참석한 67세 투자자 김모씨는 “퇴직금을 모두 넣었다”며 “예금보다 수익률은 높은데 안전하다고 해 믿고 맡겼는데 이렇게 반 토막이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고 일단 투자자들이 모인다기에 힘을 보태기 위해 왔다”고 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시중은행이 60대 이상에게 홍콩H지수 ELS 편입 주가연계신탁(ELT)·주가연계펀드(ELF)를 판매한 잔액은 6조4539억원으로, 전체 판매잔액의 44.1%에 해당한다.
지방에서 올라온 투자자들도 여럿 있었다. 충남 천안에서 올라왔다고 소개한 정씨는 “은행 직원이 10년간 원금 손실이 단 한번도 난 적 없다고 안심시켜서 믿고 가입했는데,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안 됐다. 위험성을 꼭 알렸어야 했다”며 “불완전판매가 분명하다”고 했다.
금감원은 내년에 손실이 난 사례를 바탕으로 불완전판매 여부를 검사하고, 이를 토대로 금융사들이 참고할 보상 기준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금감원은 은행권의 홍콩H지수 ELS 판매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또 상황에 따라 현장검사를 조기에 착수하기로 했다. 조사와 달리 검사는 징계 등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치 등이 동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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