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곱창 3인분이 고작 '주먹 한 줌'···회 덜고 야채로 채우기도 [외식 슈링크플레이션]

박시진 기자 2023. 12. 1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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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끊길까봐 꼼수로 가격 인상
정량 줄이고 값싼 재료로 대체도
원부자재 부담 소비자 전가 우려
"정부, 외식업체 점검도 고민해야"
이달 14일 서울 중구의 한 김밥 전문점 앞에 주요 메뉴의 가격이 표시돼 있다. 15일 한국소비자원 가격 정보 종합 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서울 지역 김밥 평균 가격은 올 1월 3100원에서 11월 3292원으로 6.2% 올랐다.
[서울경제]

회사원 최 모 씨는 얼마 전 퇴근 후 동료들과 저녁을 먹기 위해 서울 마포의 소곱창집을 찾았다가 테이블 위에 나온 음식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메뉴판에는 1인분에 250g이라고 표기돼 있었지만 실제로 제공된 3인분은 주먹 한 줌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눈대중으로도 기존에 제공되던 양의 3분의 1 수준이었다”며 “식당 종업원에게 항의했지만 조리 과정을 거치면서 곱창이 쪼그라들어 그렇다는 어이없는 변명만 들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변 모 씨도 친구들과 오랜만에 학교 앞 프랜차이즈 맥주 가게를 찾았다가 불쾌한 경험을 했다. ‘가성비’가 좋아 수년 동안 종종 찾았던 곳인데 이날 제공된 500㏄ 맥주는 거품을 포함해도 400㏄가 되지 않았다. 평소 즐겨 주문했던 떡볶이·돈까스 등 대표 메뉴도 모두 양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변 씨는 “예전과 달리 배부르게 먹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고물가 장기화로 식품 업계에서 나타난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이 외식 업계로까지 번지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을 줄이는 ‘슈링크’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용량을 줄여 가격을 올린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일종의 꼼수다. 주로 식품 기업들이 가공식품 가격을 책정할 때 소비자들의 눈을 피해 몰래 양을 줄이는 식으로 원·부자재 비용 상승 부담을 상쇄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13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영천시장을 방문해 물가 동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기획재정부

이를 알아챈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는 대기업의 가공식품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직접 제재를 하겠다고 칼을 뽑아 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3일 용량 변경 미표시 업체에 과태료 등의 ‘제재’를 가하겠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시중 음식점들까지 가격 인상 대신 양을 줄이는 방식으로 물가 상승에 대응하고 있어 소비자들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물론 음식점을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입장도 절박하다. 지난해부터 음식의 주재료인 농수축산물은 물론 전기요금·인건비 등이 계속 오르자 메뉴 가격 인상으로 대응해왔지만 이제는 메뉴판 가격을 바꾸면 소비자들이 아예 발길을 끊을 가능성이 커 가격을 유지한 채 양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외식물가 상승률은 2020년 0.8%, 2021년 2.8% 수준이었으나 2022년에는 7.7%까지 뛰어올랐다. 올 들어 상승 폭이 둔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난달 기준 5%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기준 서울 지역의 11월 자장면 평균 가격은 7069원으로 2년 전의 5615원 대비 25.9%(1454원) 올랐다.

이에 음식점주들은 가격을 올리는 대신 양을 줄이거나 재료를 바꾸는 식으로 영업 방식을 바꾸고 있다. 회·보쌈·족발의 경우 ‘중량(g)’를 적지 않고 ‘대·중·소’ 사이즈로 판매하거나 기존에 제공되던 고기나 회를 덜어내고 야채 등으로 접시를 채우는 식이다. 일부 음식점주들은 국내산 김치 대신 중국산 김치, 제철 딸기 대신 냉동 딸기로 대체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13일 서울 시내의 한 마트에 식품류가 진열돼 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 정보 종합 포털 사이트 참가격, 정부가 설치한 슈링크플레이션신고센터,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최근 1년간 9개 품목 37개 상품의 용량이 실제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연합뉴스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정부의 가격통제 압박에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본사는 가격 동결을 선언했다. 하지만 부담은 고스란히 점주들의 몫이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재료의 양이나 데커레이션 등 가이드라인을 주고는 있지만 관리·감독이 엄격하게 되지 않다 보니 점포마다 맛이나 크기가 다르다는 불만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한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점주는 “본사에서 원하는 빵이나 케이크 기준을 맞추다 보면 사실상 적자를 내게 된다”며 “본사 눈치를 보지 않고 가격이나 크기를 바꿀 수 있는 동네 빵집들이 부럽다”고 하소연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작 슈링크플레이션은 가공식품 업체보다 외식 업체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며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외식 업계도 한 번 점검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시진 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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