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황정민이 군사반란을 사과하는 초현실주의 풍경[MD칼럼]
[곽명동의 씨네톡]
영화 ‘서울의 봄’ 기세가 무섭다. 14일까지 772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범죄도시3’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천만영화에 등극한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MZ세대의 ‘역사의식’을 일깨웠다. CGV 통계에 따르면, 관객의 절반 이상인 56%가 2030세대로 나타났다. 이들은 스트레스 지수, 혈압, 심박수 등이 보이는 스마트워치나 애플리케이션 기록을 찍어 SNS에 공유하는 ‘심박수 챌린지’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서울의 봄’이 침체된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는 배우들의 적극적인 무대인사도 한몫했다. 넷플릭스 등 OTT을 즐겨보는 관객은 비싼 티켓값에 엄격한 기준으로 영화를 신중하게 선택한다. 감독, 배우들은 오래간만에 극장을 찾은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인사하고 응원을 당부한다. 좋은 영화는 관객을 부르고, 늘어난 관객이 매출을 끌어 올리면 제작사는 다시 관객에게 사랑받을만한 영화를 만든다. 선순환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서울의 봄’은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계를 살렸다.
‘서울의 봄’ 배우들이 가는 극장마다 환호성이 터진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배우들이 군사반란을 사과하는 것이다. 황정민은 "일단 죄송합니다. 모든 욕은 저한테 다 해주세요. 욕받이가 되겠습니다. 얼마든지 욕을 해주세요"라고 했다. 반란군 패거리인 문일평 역의 박훈은 "도청해서 죄송하다"며 "밤마다 지인에게 '널 손절하겠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얘기 많이 듣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왜 배우들이 사과 해야하는가. 황정민은 픽션 속의 반란군 수괴 전두광을 연기했다. 실제 인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버리고 민주주의를 무참하게 짓밟은 쿠데타를 사과하는 초현실주의적인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황정민 등 배우들의 몰입감 넘치는 뛰어난 열연이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역사 속 인물들이 그날의 반란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있다. 실제 수많은 친일파들은 일제에 빌붙은 이후 떵떵거리며 살았고, 목숨 걸고 풍찬노숙하며 독립운동을 했던 의인들은 가난을 면치 못했다. 이 불운한 역사는 현재까지도 반복된다. 12·12 군사반란의 주역들은 쿠데타 성공 이후 대통령을 비롯해 온갖 요직을 독식하며 살아온 반면, 반란군에 맞섰던 진압군은 목숨을 잃었고, 직위를 박탈 당했으며, 곤궁한 삶을 이어갔다. 우리는 언제까지 ‘역사의 아이러니’를 반복해야 하는가. 배우들의 군사반란 사과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의 봄’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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