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온탕 오가는 엔화값 …"지금이 엔테크 적기"
"여행 가려고 엔화를 환전했는데 이렇게 빨리 반등할 줄 알았으면 더 사둘 걸 그랬어요." 40대 A씨는 내년 초 일본 여행을 가기 위해 지난달 1000만원을 엔화로 환전했다. 여느 때였다면 일주일 전쯤 현지 통화로 환전했겠지만 15년 만에 원·엔 환율이 최저치까지 떨어졌다는 소식에 서둘러 엔화를 매입했다. A씨는 "여행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투자 기회로 활용하지 못해 아쉽다"며 "지금도 엔화가 여전히 싸 보이는데, 850원대까지 원·엔 환율이 내려갔던 걸 생각하면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엔화값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엔화를 사거나 엔화 관련 금융 상품에 투자하려는 재테크족의 눈치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불과 한 달 전 달러당 엔화 가치가 3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100엔당 원화값도 850원대까지 급등하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뚫어냈다. 전 세계가 숨 가쁘게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나 홀로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온 일본 통화 정책의 결과다.
재테크족은 15년 만에 찾아온 '엔테크(엔화 재테크)' 기회에 쾌재를 불렀다. 다만 이달 들어 일본 중앙은행(BOJ)을 중심으로 마이너스 금리 탈출을 뜻하는 '통화 정책 정상화'에 대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지난 7일 원·엔 환율은 900원대로 상승 전환했다. 세계 주요 투자은행(IB)들은 내년 봄 이후 일본의 통화 정책이 변경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지만, 급등락을 거듭하는 엔화 변동성에 방향을 쉽사리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엔화가 상승세에 시동을 걸었지만 예년 평균 가격에 비춰보면 여전히 '엔저'가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10년(2013년 12월 13일~2023년 12월 12일)간 100엔당 원화값 평균치는 1014.3원이다. 지난 14일 기준 100엔당 원화값이 913.7원인 것을 감안하면 원화 대비 엔화값은 10년 평균치보다 10%가량 떨어졌다.
정상진 하나은행 도곡금융센터 PB팀장은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 정상화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이너스 금리에서 올라온다면 엔화가 추가 상승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그동안 엔화 가치가 '시계제로'에 놓여 있었다면, 지금은 상승 가능성에 대한 징후가 뚜렷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850원에서 원·엔 환율이 바닥을 찍고 올라왔지만 900원대 초반에서는 엔화 투자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고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화 대비 엔화값 약세에 시중은행 엔화 예금과 환전 창구도 북적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 엔화 예금 잔액은 이달 12일 기준 1조1136억엔(약 10조62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7023억엔 대비 1년 새 4000억엔(약 3조7000억원)이 넘는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4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올해 1분기 말에는 6005억엔으로 지난해 말 대비 줄어들었지만 올해 하반기 이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엔화 예금 중 상당수는 기업 예금으로 추정되지만 엔저에 따른 단기 환차익을 기대하는 개인투자자 수요도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체 엔화 예금 증가분을 엔저에 따른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수요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근 들어 영업점에 엔화 예금 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것은 맞는다"며 "여행 목적으로 엔화를 바꾸거나 투자를 위해 엔화를 직접 사들이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에게 엔화 예금을 추천하지 않는다. 주요 시중은행 엔화 예금의 1년 정기예금 평균 이자가 0%이기 때문이다. 만기를 다르게 설정해도 금리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 은행이 엔화 예금에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엔화로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엔화는 국내 기업들의 대출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은행이 이자이익을 올리기 어려운 데다 일본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현지 은행에 돈을 맡기면 오히려 보관료를 내야 한다.
실제 엔화 예금은 다른 해외 통화 관련 예금과 비교해서도 차이를 보인다. 1년 정기예금 기준으로 달러화는 연 5%대 초반, 유로화는 연 3%대 중반 정도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연 4%대 후반의 금리를 제시하는 영국 파운드화 예금과 연 1.2~1.3%인 스위스 프랑화·중국 위안화 예금 금리와 비교해도 엔화 예금 금리는 온도 차가 크게 난다.
외환을 직접 매입하는 것도 재테크족이 많이 찾는 엔화 투자 방식 중 하나다. 엔화 가치가 하락했을 때 원화를 엔화로 바꿨다가 엔화가치가 오를 때 되팔면 환차익을 얻을 수 있고, 이때 차액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다만 통상 은행들은 외환을 사고팔 때 거래금액의 1.75%가량을 수수료로 매기기 때문에 이를 우회하는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각 은행은 모바일 앱에서 환전할 경우 수수료를 우대해주는데,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등은 최대 우대율이 90%까지 올라간다. 환전 수수료가 1.75%였는데 90% 할인되면 실제 내야 하는 수수료는 0.175%까지 떨어진다.
보다 큰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자라면 원화로 국내에 상장된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수하는 것도 방법이다. 환차익과 ETF 운용 수익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대표 지수인 닛케이225와 토픽스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ETF 상품으로는 KODEX 일본TOPIX100,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일본니케이225 등이 있다. ETF를 포함한 일본 주식형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23.4%로 해외 주식형 펀드의 전체 수익률 15.5%를 웃돌았다.
원화로 국내에 상장된 엔화 ETF에 직접 투자해도 좋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일본엔선물 ETF'는 원·엔 환율이 기초가 되는 '엔선물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엔화 가치 전망에 따라 지수가 오르내리기 때문에 엔화를 직접 보유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펀드를 고를 때는 환헤지가 되는 상품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엔화가 싸고 나중에 더 비싸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면 환헤지하지 않고 노출하는 상품을 고르는 편이 좋다. 환헤지가 안 돼 있는 상품은 엔화가 시간이 지나 오를 경우 토픽스와 닛케이지수 등이 오르는 것에 더해 엔화 가치가 상승하는 것까지 이익으로 가져갈 수 있다. 다만 투자로 이익이 나면 배당소득세로 이익의 15.4%를 내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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