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서야 임금체불 인정받은 택시노동자···노동부 ‘부실 조사’
해성운수 소속 택시노동자 방영환씨(55)는 지난 2월 회사가 최저임금법을 위반했다며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주 40시간 기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줬기 때문에 임금체불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지난 5월 ‘법 위반 없음’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임금체불 해결, 완전월급제를 요구하며 227일간 1인시위를 했던 방씨는 지난 9월26일 분신했고, 10월6일 끝내 숨졌다. 노동부는 방씨 분신 이후 2개월간 해성운수에 대한 근로감독을 진행했다. 감독 결과 회사가 방씨에게 1565만원(체불임금 915만원, 퇴직금 미지급분 650만원)을 체불했다는 점이 뒤늦게 확인됐다. 앞서 지난 5월 노동부는 임금체불이 아니라고 판단했었다.
노동부는 해성운수 취업규칙이 변경된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처음 진정이 접수됐을 때 근로감독관이 취업규칙 변경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살아 있는 사납금제
방씨는 2020년 2월29일 해고됐다. 회사는 방씨가 새로운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했다는 점을 해고 근거로 들었다. 왜 방씨는 계약을 거부했을까.
2019년 8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 개정되면서 2020년 1월부터 택시업계 병폐였던 사납금제가 완전히 폐지되고 전액관리제가 도입됐다. 사납금제는 법인 택시기사가 하루 운송수입의 일정액을 회사에 내고 남은 돈을 가져가는 제도로 탑승거부·난폭운전 등의 원인으로 꼽혔다. 전액관리제는 법인택시 기사가 운송수입 전액을 회사에 내고 월급을 받는 제도다. 법인 택시기사에게 1주 노동시간을 40시간 이상 보장하는 개정 택시발전법도 2021년 1월부터 서울시에서 시행됐다.
방씨가 해고 전 근로계약을 거부한 이유는 근로계약서 내용이 변형된 사납금제였기 때문이다. 그는 “해고가 무효”라는 대법원판결에 따라 지난해 11월 복직했다. 복직 이후 회사가 내민 근로계약서에도 변형된 사납금제 요소가 있었다.
근로계약서를 보면 소정근로시간은 월 203시간(주 6일, 1일 6시간40분)이지만 손님을 태운 시간(택시요금미터 작동시간)이 5시간 30분 이상인 경우에만 승무수당을 지급하고, 주 1회 이상 손님을 태운 시간이 5시간 30분 미만이면 회사는 승무정지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손님을 태운 시간이 5시간 30분을 넘지 못했을 때 택시기사가 합당한 이유를 서면으로 제출하지 않으면 소정근로시간을 일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조항도 있다. 회사가 정한 기준 운송수입금(월 462만8000원)을 납부하지 않으면 불성실 근로로 간주한다는 조항도 변형된 사납금제 요소 중 하나다.
방씨는 복직 이후에도 근로계약서 서명을 거부하고 싸움을 이어갔다. 회사는 복직한 방씨에게 월 100만원가량의 임금만 지급했다. 방씨는 1일 6시간40분을 근무했지만 2019년 체결한 근로계약서(1일 3.5시간, 월 109시간)에 따라 임금을 받았다.
노동부, 뒤늦게 임금체불 인정 뒤 옹색한 변명
노동부는 지난 2월 방씨의 진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진정 제기 전 해고무효소송에서 법원은 해고 무효를 인정하면서도 임금 상당액은 2019년 체결된 근로계약(1일 3.5시간)에 따라 지급하라고 판단했고, 사측도 이에 따라 임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2019년 체결된 근로계약서를 기준으로 하면 임금체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판단은 방씨 사망 뒤 근로감독 과정에서 뒤집혔다. 노동부는 “방씨가 지난 9월22일 고소장에서 취업규칙 변경 사실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변경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고, 사업주의 최저임금법 위반(임금체불)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해성운수 취업규칙은 지난해 11월 변경됐으며 월 소정근로시간은 203시간(주 6일, 1일 6시간40분)으로 돼 있다. 근로기준법 97조를 보면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계약은 무효이며 무효로 된 부분은 취업규칙에 따른다. 방씨가 체결한 2019년 근로계약서는 1일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정하고 있지만 변경된 취업규칙은 1일 노동시간을 6시간40분으로 정했기 때문에 후자를 기준으로 방씨 임금을 계산해야 한다.
‘방영환 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노동부 설명이 “옹색한 변명”이라고 지적했다. 방씨가 지난 2월 노동부에 제출한 진정서에 ‘1일 소정근로시간을 6시간 40분으로 정하고 있다’는 내용을 적었던 만큼 근로감독관이 임금체불 판단 시 당연히 취업규칙을 확인했어야 한다는 게 공대위 주장이다.
이삼형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정책위원장은 “노동부는 취업규칙 변경이라는 새 증거가 뒤늦게 발견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이 임금체불 조사 시 처음부터 근로계약서, 취업규칙을 확보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노동부가 부실조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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