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XSF①] 이정후, 韓 역사 깨뜨리며 SF 입단 확정… 전문가들 비웃었다, 4년 뒤 또 역사 쓰나

김태우 기자 2023. 12. 1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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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시스코와 6년 계약에 합의한 이정후 ⓒ샌프란시스코 구단 SNS
▲ 한글로 이정후의 입단을 축하한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 구단 SNS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이정후(25‧키움)와 샌프란시스코의 6년 계약은 단순히 이정후 개인의 성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 야구의 역사를 바꿔놓은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류현진의 포스팅 역사를 바꿨고, 추신수의 최대 규모 계약에도 근접했다. 4년 뒤에는 더 기대를 걸 만한 구석도 있다. 시작이 기가 막히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 중 하나이자 내년 도약을 벼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보도자료를 통해 “외야수 이정후와 6년 계약에 합의했다”고 15일(한국시간) 공식 발표했다. 현지 언론은 지난 13일 이정후와 샌프란시스코의 계약 소식을 알렸고, 신체검사를 통과한 끝에 15일 계약이 공식 발표됐다.

구단이 공식 발표한 금액은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약 1465억 원) 규모다. 세부적으로는 우선 계약금 500만 달러(약 65억 원)를 받는다. 전체 금액을 연수에 나눠 받는 계약과는 조금 다르다. 구단 사정에 따라 매년 지급되는 연봉이 조금 다르다. 2024년은 700만 달러(약 91억 원)를 받고, 2025년부터는 1600만 달러(약 207억 원)를 받아 본격적인 고액 연봉자 대열에 오른다. 2026년과 2027년은 각각 2200만 달러(약 285억 원)를 수령한다.

구단과 이정후는 4년 뒤 옵트아웃(잔여계약을 포기하고 FA 자격을 획득) 조항에 합의했다. 만약 이정후가 4년 뒤 더 좋은 대우를 기대하며 시장에 나간다면 양자는 4년간 7200만 달러(약 933억 원)로 계약을 종료한다. 만약 2년의 남은 계약을 더 실행하면 2028년과 2029년은 각각 2050만 달러(약 266억 원)씩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6년간 1억1300만 달러(약 1465억 원)가 완성된다. 4년 7200만 달러가 될 수도, 6년 1억1300만 달러가 될 수도 있는데 모두 보장 금액이다.

이정후는 여기에 구단을 통해 기부도 하기로 했다. 2024년은 6만 달러(약 7776만 원), 2025년은 8만 달러(약 1억368만 원), 2026년과 2027년은 연간 11만 달러(약 1억4256만 원), 2028년과 2029년은 연간 10만2500달러(약 1억3284만 원)를 기부한다. 기부금 총액은 6년간 56만5000달러(약 7억3224만 원)다. 연봉에 따라 기부액도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여기에 숨은 금액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이정후의 포스팅 금액이다. 한미 선수협정에 따라 포스팅시스템(비공개경쟁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로 가는 선수들은 원 소속팀이 소정의 포스팅 금액을 받을 수 있다. 총액 5000만 달러 이상의 포스팅 선수의 경우 기본 금액인 937만5000달러에 5000만 달러의 초과분 15%를 더 받는다. 이정후의 포스팅 금액은 6년 1억1300만 달러 기준으로 총 1882만5000달러(약 244억 원)에 이른다.

1억1300만 달러에 포스팅 금액을 더한 수치가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실제 투자액’이다. 합쳐 1억3182만5000달러(약 1708억 원)가 된다. 앞으로 이정후의 계약은 6년 1억1300만 달러라는 꼬리표가 붙겠지만, 실질적인 계약 규모는 이 정도 수준으로 봐야 한다. 어쨌든 샌프란시스코의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기 때문이다.

▲ 이정후 영입 효과에 기대가 큰 미국 언론들 ⓒFOX스포츠
▲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를 외야의 구세주로 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구단 SNS

이는 이정후의 역사를 상징한다. 기본적으로 한국인 포스팅 역사를 새로 썼다. 기존 KBO리그에서 뛰던 한국인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나갈 때 최고액을 기록한 사례는 2013년 류현진이다. 10년 전 일인데 깨지지 않고 있었다. 당시와 지금의 포스팅 규정이 달라 명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다저스는 류현진에게 포스팅 금액과 연봉을 합쳐 총 약 6174만 달러 수준을 투자했다. 포스팅 금액이 약 2574만 달러였고, 6년 연봉이 3600만 달러였다.

류현진의 포스팅 금액 자체는 깨지 못했지만 같은 6년 계약임에도 차이는 적지 않게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류현진이 지금과 같은 제도였다면 연봉에서도 더 이득을 봐 규모가 이것보다 더 컸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중론이지만, 그래도 1억 달러에 도달했을지는 의문 부호가 남는다.

샌프란시스코의 총 투자액인 1억3182만5000달러는 추신수가 2014년 시즌을 앞두고 텍사스로 이적했을 당시 세운 한국인 선수 계약 총액 신기록(7년 1억3000만 달러)도 넘는다. 시차가 있어 단순 비교는 어렵다고 해도, 이정후의 계약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추신수는 당시 메이저리그에서도 인정받는 야수였던 반면, 이정후는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당초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이정후가 연 평균 1500만 달러 수준, 그러니까 4년 총액 6000만 달러 안팎의 계약을 할 것이라 전망하는 게 대체적인 시선이었다. 기량은 인정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검증이 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5000만 달러에서 6000만 달러 사이가 전체적인 예상이었다. 그런데 이정후는 이보다 더 큰 계약을 따냈고, 4년으로 봐도 7200만 달러로 시장 예상치를 훨씬 웃돌았다.

이렇게 이정후가 올해 이적시장에서 대박을 친 것은 몇 가지 이유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선수의 기본적인 기량이다. 이정후는 KBO리그 최고 타자다. 2022년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MVP를 수상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올해는 발목 부상으로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했으나 이미 지난해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정후의 가치는 환하게 빛났다. 메이저리그로 갈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단지 얼마나 좋은 대우를 받고 가느냐가 관건이었다.

두 번째는 나이다. 이정후는 내년이 만 26세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스타급 선수가 26세에 FA에 나오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마이너리그를 3~4년을 거쳐 메이저리그에서도 보통 6년을 더 뛰어야 FA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보통 20대 후반에만 나와도 FA 시점이 빠르다고 한다. 하지만 이정후는 그보다 훨씬 더 젊다. 이는 부상 위험과 신체 노쇠화 위험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대개 2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전성기를 맞이한 뒤 30대부터는 그래프가 꺾이는 곡선을 보여주는데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의 전성기 전부를 다 뽑아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이가 큰 무기였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 번째는 호의적인 포지션 상황이었다. 이정후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올해 메이저리그 FA 시장은 유독 쓸 만한 외야수가 부족했다. 공격이 좋으면 수비가 부족하고, 수비가 좋으면 공격이 부족한 반쪽 선수들만 많았다. 게다가 나이대도 전체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특히 많은 팀들이 목마른 좌타 외야수가 부족했는데 이정후는 이 조건에 수비까지 된다는 확실한 스펙도 가지고 있었다. 이정후가 일찌감치 코디 벨린저에 이은 외야수 랭킹 No.2로 뽑힌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네 번째는 시장 과열이었다. 올해 FA 시장은 상대적으로 특급 매물이 적었다. 반대로 전력 보강에 대한 수요는 항상 있는 법이다. 생각보다 별로일 것 같았던 선발 시장이 시작부터 타오른 것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최대어였던 오타니 쇼헤이가 예상보다도 더 높은 10년 총액 7억 달러에 계약을 하며 정점을 찍었다. 물론 오타니의 계약은 상당 금액이 지불 유예지만, 이런 상징적인 금액에 많은 이들이 인플레이션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오타니를 놓친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로 선회해 도장을 받아냈다.

▲ 기념비적인 계약 속에 해외로 진출하는 이정후 ⓒ곽혜미 기자
▲ 김하성의 성공은 이정후의 계약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다섯 번째는 김하성(28‧샌디에이고)의 존재다. 사실 김하성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같은 팀에서 뛰는 이정후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에 들어온 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이정후는 프로 입단부터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오래 기간 신뢰할 만한 리포트가 쌓였고, 호의적인 평가로 이어졌다. 여기에 김하성이 최근 뚜렷한 공격력 향상에 걸출한 수비력까지 선보이며 한국인 야수들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시선이 또 바뀌었다. 이런 긍정적인 흐름들이 모두 모여 이정후의 대박을 이끌었다 봐야 한다.

기대가 되는 건 4년 뒤다. 이정후는 4년 뒤라고 해봐야 서른에 다시 FA 시장에 나올 수 있다. 만약 이정후가 4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만한 좋은 중견수라는 평가를 받을 경우, 4년 뒤에는 이보다 더 큰 계약을 기대할 만하다는 이야기다. 나이 서른이면 웬만한 선수들은 첫 FA 자격을 얻는 시기다. 결코 많은 나이는 아니다. 여기에 실적까지 뒷받침되고, 메이저리그의 연봉 인플레이션이 현재처럼 가속화될 경우 연 평균 금액은 지금보다 더 올라갈 것도 유력하다. 4년 옵트아웃 조항을 넣은 것이 이정후 측의 승리로 보이는 이유다.

게다가 샌프란시스코는 현재 외야, 특히 중견수 사정이 좋지 않다. 1억3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 이정후를 쓸 수밖에 없고, 쓰려고 데려왔다. 부상이 아니라면 기회는 굳건할 것으로 전망된다. 샌프란시스코가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고, 한인 커뮤니티가 작지 않다는 점도 적응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이정후는 이제 야구장에 나가 잘하는 일만 남았다. 걸리적 걸리는 외부 요소가 별로 없다. 이정후의 성공 시대가 이제 메이저리그에서도 그 문을 열었다.

▲ 메이저리그라는 큰 무대를 향해 뛰는 이정후 ⓒ곽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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