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최악의 사법 불신 속 조희대 대법원장이 할 일 [쓴소리 곧은 소리]
국민 고통 심각한 재판 지연 문제 신속히 해결하고 전문법원제 도입하길
(시사저널=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현재 대한민국의 사법 불신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최고조에 달해 있다고 평가된다. 이렇게 사법 불신이 계속될 경우에는 자칫 사법 마비 사태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국가 전체에 심각한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마치 축구경기장에서 심판이 사라진 것처럼, 아니 선수들이 심판을 믿지 못하고 쫓아버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취임한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것은 조 대법원장의 과거 경력에 대한 기대감 못지않게 과연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 사법 불신 심화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이었다. 장기간에 걸친 수사와 재판에도 그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관련자들이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국민의 사법 불신이 해소될 수 없다는 점이 딜레마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의혹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법 불신이 또 다른 불신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 것은 김명수 사법부의 탓이 크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재임 6년 동안 가장 심각했던 것이 사법부 코드인사였다. 코드인사는 그 자체로서 사법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불신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법원의 판결에 대해 그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다.
정시 퇴근 일상화된 '직업적 판사' 문제 없나
몇몇 판사의 정치적 판결들이 더해짐으로써 사법 불신은 더욱 심각해졌고, 더욱이 일부 판사의 도덕적 해이로 인한 각종 비위와 이에 대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은 여러 차례 언론보도에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조 대법원장이 취임사에서 언급했던 재판 지연 문제의 심각성을 법원이 제일 늦게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법언(法諺)이 있음에도 워라밸을 추구하는 판사들이 오히려 다수가 된 현실에서 국민이 어떻게 판사들을 믿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 재판 지연으로 국민이 받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이 문제는 딱히 어디 다른 기관에 호소할 곳이 없다는 점에서 이중의 고통이 가중되는 것이다.
그 근본 원인이 판사 수의 부족에 있으며, 판사들이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려 왔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판사 수의 부족으로 재판이 지연되는 것을 판사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이 국민의 탓인가? 오히려 판사 충원을 서두르지 않은 법원 탓이 아닌가? 이른바 법조일원화 이후 유능하고 때 묻지 않은 판사 충원의 어려움이 더 커졌다는 점은 알지만, 그 역시 국민 탓은 아니다.
더욱이 법관근무평정의 변화 이후로 판사들의 정시퇴근은 일상이 되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판사가 아닌, 직업인으로서의 판사를 보면서 판사에 대한 국민의 존경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판사를 성직자와 비교하던 것은 과거의 일이 되었고, 단지 똑똑하고 공부 잘해서 판사가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사법을 신뢰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법원 내에서도 이른바 MZ세대와 그 이전 세대 사이에 갈등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을 국민이 이해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그런 식의 갈등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법원만의 특수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법원의 구성원 대부분이 납득할 수 있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사법의 발전 방향과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의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사법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으며, 국민은 사법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외면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 조직에 비효율적인 부분은 없는지, 판사 임용 방식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없는지, 재판과 관련해 판사들의 불필요한 부담을 줄일 방법은 없는지, 재판의 진행 및 결과와 관련해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할 적절한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은 무수히 많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들이 모여 커다란 변화를 낳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단기간에 국민의 사법 불신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공정한 재판, 신속한 재판을 위해 법원이 해야 하는 역할과 그에 따른 법원의 부담, 그리고 법원의 노력에 대한 국민의 공감을 구해야 한다. 또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한 노력들이 축적되었을 때, 국민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소송 당사자 위에 군림하는 판사상도 바꿔야
판사들의 권위 의식, 엘리트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대통령도 그렇고, 국회의원도 그러하듯이 판사들도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무원이며, 소송 당사자 위에 군림하는 위치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판사의 막말이 문제가 되는가 하면, 변호사들이 특정 판사에 대해 불신을 표출하는 사례까지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법제도 자체의 개혁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판사들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전문법원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능력 있고 열심히 일하는 판사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왜 대한민국의 다른 분야에서는 당연시되는 것이 법원 내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일까?
사법의 정치적 중립성은 사법의 공정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그동안 판사들의 발언이나 행동으로 인해 정치적 중립성이 문제가 된 사례가 적지 않다. 그로 인해 판사들의 SNS 이용과 관련한 구체적 지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법원 내부에서도 나왔다. 이 문제도 세대 간 갈등의 측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판사들의 자기 이해에 차이가 있다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서 볼 수 있다.
이제는 법원 내부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다. 과연 판사는 재판을 담당하는 공무원일 뿐, 여타의 점에서는 다른 국민과 똑같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려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판사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특별한 제약이 있는 것인지. 교사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조차 엄격하게 요구되는 상황에서 판사의 정치적 중립성은 어디까지 요구되는 것이 적절한지….
그동안 쌓인 과제가 많은 탓에 조 대법원장이 이런 일들을 어떻게 현명하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높다. 바라건대, 김병로 대법원장 이후로 가장 훌륭한 대법원장이라고 평가받는, 법조삼성 이후 우리 시대의 존경받는 법관상(法官像)의 상징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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