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밥 먹인다" 협박했지만, 학교는 외면…28살 딸 죽음 불렀다
'교사 개인번호' 학부모에 알린 학교, 고인에게는 별다른 도움 없어
오열한 아버지 "국가에 의무 다했는데, 왜 못 지켜주나"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국가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다했는데, 왜 국가는 우리 가족을 지켜주지 못하나"
1시간 넘게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아버지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북받치는 감정을 누르려고 해도 눈물을 멈출 수 없는 듯했다.
그의 딸은 지난 1월 15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서울 상명대사범대부속초등학교 오모 교사이다. 올해 나이 28살이다.
아버지 오재근 씨는 딸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지난 7월 24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이초 교사 사망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를 찾아 진상 규명을 강력히 요구했다. 조용히 묻히는 듯했던 오 교사의 죽음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15일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가 오 교사의 사망과 관련한 진상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는 과도한 민원과 협박을 일삼는 학부모, 이를 방치하고 교사 보호에는 전혀 관심 없는 학교, 기간제 교사에 대한 차별 등 우리 교육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학교가 알려준 '교사 개인번호'…넉달 동안 학부모 연락 1천500건 넘어
기간제 교사이던 고인은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상명대부속초교의 2학년 담임으로 근무했다.
원래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은 경험 많은 정규직 교사가 맡는 것이 관례다. 학부모 민원과 업무 부담이 많은 탓이다. 하지만 담임 맡기를 꺼리는 풍조 탓에 요즘에는 기간제 교사도 많이 맡는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오 교사는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고 업무를 처리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시간 외 근무는 일상이었다.
더구나 상명대부속초는 교사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학부모에게 공개했다. 그 결과 오 교사는 상상을 초월하는 학부모 연락에 시달려야 했다.
학부모들은 수업 교재를 챙겨야 하는지, 교재비 입금이 확인됐는지,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어떠한지 등 사소한 일로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그의 휴대전화로 끊임없이 연락했다.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학부모가 오 교사에 연락한 건수는 1천500건이 넘는다. 하루에 10건 넘는 학부모 연락에 시달렸다는 얘기다.
6월 초에는 학생들 간의 갈등이 발생했다. 점심시간에 3명의 학생이 1명의 학생에 피해를 준 사건이었다. 서울시교육청 공익제보센터에 따르면 심하게 다투거나 상해를 입지는 않아 학교폭력 사안으로는 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럼에도 학생 학부모는 과도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유족 측 법률 대리인에 따르면 가해자 학부모 측의 폭언이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이 학부모는 고인에게 전화를 걸어 "교사를 못 하게 하겠다", "가만두지 않겠다", "콩밥을 먹게 하겠다", "경찰에 고발하러 가고 있다" 등 고성을 질렀다고 유족 측은 전했다.
"내가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보호받지 못한 기간제 교사
학부모의 폭언과 협박, 과도한 민원은 결국 오 교사의 '마음의 병'으로 이어졌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과를 찾았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오 교사가 이처럼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학교 측은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았다. 정교사 1명이 가해학생 어머니에게 전화한 것 외에 별다른 도움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상명대부속초가 공립이 아닌 사립초등학교였고, 고인이 기간제 교사였기 때문에 더욱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 교사는 지난해 6월 9일 이뤄진 정신과 상담에서 "초반에 선생님들이 도움을 안 줘서 민원도 더 많이 받고, 학교에 너무 화가 난다. 학기 초부터 심장이 꽉 조인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장대진 서울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사립초등학교의 경우 임명권자가 이사장이다. 업무적 고충이 있을 때 조직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풀기 어렵다"며 "또한 사립초교는 임의 배정이 아니라, 학부모가 지원하는 곳이기 때문에 민원에 더욱 민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힘들어하는 교사에게 도움을 못 주면서도 규율은 엄격했다. 이 학교는 고인을 포함해 담임 교사를 출근 시간보다 50분∼1시간 일찍 출근시켰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측에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민종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은 "학교 측이 제대로 한 것인지 교권 보호 이야기도 나올 수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 정확한 매뉴얼이 없어 어디까지 학교가 조치해야 하는지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학교 측에서 의도적으로 방치하거나 악화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방치와 무관심 속에서 오 교사의 마음의 병은 깊어져 갔다.
지난해 12월 7일 일기에서 고인은 "내가 힘이 없는 게 당연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너 대단해. 봄날이 올 거야. 넌 유능한 초등교사야"라고 적었다.
고모와의 메신저 대화에서는 '내가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해야 하냐'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1월 15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폭언한 학부모는 조사를 거부했다. 교육청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조사할 권한이 없어 다른 학부모들의 진술만 들을 수 있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 등을 조사하고 처벌할 때 경찰과 교육 당국에 더욱 강력한 권한이 요구되는 이유다.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 오재근 씨는 "서이초 교사 유가족이 대책본부를 만들어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이런 선한 노력이 쌓여서 선한 결과들을 가져와 선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f@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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